티스토리 뷰

[중국발품취재16] 정저우에서 뤄양으로

5월 5일. 날씨 더운 것보다 사람들에게 지치면 안 된다. 공식 연휴가 1주일이니 아직 며칠 더 남았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났다. 분명히 인터넷이 된다고 해서 들어온 호텔이다. 저녁 먹기 전에 되더니 나갔다 오니 불통이다. 그래서 '쉬게 하려는 구나' 하며 일찍 잤더니. 눈 뜨자마자 노트북을 켰는데 여전하다. 영상편집 작업 마무리만 1시간가량 했다. 그래 빨리 짐 챙겨서 떠나자. 호텔 아침은 먹어야지. 간단히 죽 한 그릇에 만두, 삶은 달걀로 배를 채우고 나섰다.

▲ 아침
ⓒ 최종명

오전 8시 55분 버스가 있다. 뤄양(洛阳)까지 45위엔(1위엔=약 120원)이다. 생각보다 꽤 멀다.

버스가 서서히 출발하기 시작할 때 '오늘이 어린이날'이구나 떠올랐다. 물론 우리나라. 중국은 1949년 12월에 기존의 4월 4일을 대신해 국제 어린이날인 6월 1일을 얼통지에(儿童节)로 정했다. 아들 녀석 얼굴이 떠오른다. 이제 중학생이니 어린이도 아니건만 어린이날이라니 어린이 시절 기억들이 자연스레 돌아다닌다.

▲ 정저우에서 뤄양 가는 버스표
ⓒ 최종명

뤄양에 도착하니 낮12시가 조금 넘었다. 호텔 한군데를 찾아 들어갔는데 영 결정을 못 하겠다. 대체로 중국호텔은 특급호텔과 4성급호텔의 경우를 빼고는 사전에 방을 보는 것이 좋다. '칸 팡지엔 하오마?(看房间好吗?; 방을 봐도 괜찮습니까?)하면 100% 된다. 가급적 꼼꼼하게 판단하면 탈이 없다. 하룻밤을 묵는데 이왕이면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해야 할 터이니 말이다.

이번에는 여행책자를 꺼냈다. 전 세계인의 여행 필독서라는 '론리플래닛'. 나 역시 한국에서 샀다. 그런데 하나 고려사항이 있다. 우선, 작가들이 다 유럽 및 미국 등 서양인이라는 게 그렇다. 여행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기호와 취향이 다른데 그들의 정서와 문화, 역사가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는데 그들의 평가를 믿기는 어렵다. 겨우 교통정보나 숙박정보를 참고할 정도다. 아니면 관광지 디렉토리나 지도는 그럴 듯하다. 지도야 현지 지도에 동그라미만 치면 되니 틀릴 이유가 별로 없다.

뤄양의 숙박정보를 참고했더니 기차역 남쪽에 있다는 한 호텔이 최근(?)에 생겨 깨끗하고 친절하고 값도 싸다고 한다. 찾아보자. 먼저 길을 잘못 들었다. 기차역 남쪽 방향에는 큰 길이 두 개다. 묻고 물어 씨에팡루(解放路)를 찾았고 그 호텔 데스크 앞에서 힘들어 죽겠으니 빨리 방을 좀 보자고 했다. 그리고 가격을 물었더니 다저(打折; 할인)가 없다고 한다. 이 책에 150위엔이라고 써 있어, 했더니 맞다고 한다. 지금은 연휴기간이라 그렇다고 한다. 100위엔 정도 차이가 난다.

다시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니 고통이다. 일단 방을 보러 올라갔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내리자마자 실망이다. 방문을 열었는데 냄새부터 반긴다. 필독서에 뤄양 편 쓴 작가가 도대체 누구야? 아마 지독하게 더러운 인간일 것이다.

다시 기차역으로 갔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정 붙을 곳이 아니다. 택시를 타고 시내로 가자고 했다. 속는 셈치고 다시 그 책을 참고해 한 호텔 이름을 불러줬다. 아까 그 호텔과 같은 값이면 깨끗해야지 하면서. 30분 정도 가는 동안 택시운전사의 뤄양 관광지 홍보를 내내 들어야 했다. 간혹 처음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친절하게 가이드를 자임하는 착한 기사가 있다.

호텔 입구에 도착하니 좀 분위기가 이상하다. 물론 책에 '편한 방과 훌륭한 수영장 시설을 자랑한다'고 했으니 호텔이 좋긴 하겠지만 너무 좋아 보이니 말이다. 500위엔이 넘는다. 책에는 220위엔이다. 왜 그러냐 했더니 새로 개장했다고 한다. 그래 눈 딱 감고 여기서 묵자. 당연히 인터넷은 되겠지? 했더니 안 된단다. 미치겠다 정말 이런 심정.

배낭 메고 나왔다. 일단 앉아서 담배를 붙였다. 부근 호텔이 다 비슷하겠구나 생각하고 인터넷만 되면 방황 끝내자. 바로 옆 호텔로 들어섰다. 얼마냐? 인터넷 되냐? 한꺼번에 물었더니 '당연히 되고 할인해서 280위엔이다' 방 보자는 소리도 없이 여권부터 던졌다. 그런데 방이 참 좋다. 씨위엔루에 있는 팡따상우져우디엔(芳大商务酒店)이다. 입구 창문에 별이 4개가 그려져 있는데 이상하다 싶어 물었더니 실제로는 3개라 한다. 이상하네.

씻고 짐 풀고 지도를 꺼내 갈 곳을 찾았다. 마침 광장 옆에 여행사가 있어 룽먼스쿠(龙门石窟; 용문석굴) 가는 길을 물었더니 대꾸도 하지 않는다. 참 오늘 이상한 동네에 왔군. 그 옆은 기차표 예매하는 곳이라 다음 행선지인 핑야오(平遥) 표를 물어봤더니 거기 가는 표는 없다고 한다. 뤄양이 이상한지 내가 이상한지 영 불안하다.

▲ 사천요리에 밥 한공기, 맥주 한 잔, 사천 김치
ⓒ 최종명

밥이나 먹고 기진맥진 상태로 아무것도 못하니 나른한 오후를 호텔에서 보내자. 식당 하나를 찾아 들어갔더니 손님이 아무도 없다. 하기야 오후 2시가 넘었으니. 마침 좋아하는 요리가 가능하다고 한다. 쉐이주위(水煮鱼)라면 밥 한 공기 먹기 딱 좋다.

맥주 한잔으로 목을 축이면 금방 나오겠지. 스촨(四川)요리인 쉐이주위는 말 그대로는 '물에 끓인 생선'이지만 사실 대부분 기름이다. 그런데 맛이 좋다. 게다가 중국요리에는 흔하지 않은 콩나물[豆芽]이 바닥에 깔리니 먹을 만하다. 다 먹고 보니 벽에 금연 표시판이 있다. '처우옌능부능(抽烟能不能)' 담배 필 수 있느냐고 했더니 이상하다는 듯 옌깡(烟缸), 재떨이를 가져다준다.

▲ 낙양목단여자병원
ⓒ 최종명

호텔 바로 앞은 목단광장이다. 여성 전문병원이 하나 있는데 건물색이 약간 연한 보라색이다. 특이한 감각이다. 화장품 광고 콘셉트로 연보라색을 사용하는 것은 간혹 봤지만, 병원이 아무리 여성전용이라 하더라도 좀 이상하다.

▲ 광장 옆에 핀 꽃들
ⓒ 최종명

광장에는 들꽃인지 이름을 잘 모르겠지만 꽃들이 형형색색 피어 있다. 뤄양은 4월 중순 이후 목단 꽃 축제가 열린다. 지금은 이미 다 '메이여우(没有)'라고 아까 택시 운전사가 그랬다. 택시타고 오면서 '어 뤄양도 칭다오처럼 도시 거리 이름이 다 중국이네'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 도로 표지판
ⓒ 최종명

저녁이 되면 사람들 좀 모이겠군 생각하며 호텔에서 쉬었다. 배낭 메고 호텔과 여행책자 때문에 스트레스를 좀 받았더니 영 컨디션이 좋지 않다. 그리고 잠을 좀 잤다.

해가 진 저녁. 광장에 모인 사람들 구경 좀 하려고 했는데 좀 썰렁하다. 도대체 뤄양은 예상과 자꾸 빗나가는 도시다. 광장을 가로질러 길 하나를 건너니 레스토랑이 보인다. 출렁이는 그네 의자에 내부 장식도 나쁘지 않다. 치킨 스테이크에 하이네켄 맥주로 기분 좋게 혼자 놀았다.

▲ 레스토랑에서
ⓒ 최종명

그러고 보니 아침, 점심, 저녁 식단이 다 공개됐네. 홀로 여행의 가장 난감한 부분이 먹는 것이다. 체력은 둘째치고 단조로운 패턴이 걱정이다. 중국 음식 어떤 것이라도 다 먹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그렇지 않다면 6개월 배낭 취재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여간 하루가 또 갔다. 내일 또 하루종일 취재해야 하니 편하게 잠을 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