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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20회 신장 우루무치의 누드 동물 먹어 말어?



신장위구르자치구의 면적은 166만 평방 킬로미터의 면적으로 전 중국의 1/6을 차지하는 방대한 지역이자 지하자원의 보고이다. 1955년 10월 1일 위구르족(維吾爾族) 자치구가 됐으며 카자흐족(哈薩克族)을 합쳐 절반이 넘는다.


춘추전국시대 이전부터 여러 부족국가들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원래 위구르족은 투르크계 유목민족이었다. 서기 8세기경 당시 돌궐제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위구르제국을 건설하기도 했다. 이후 9세기경 서서히 농업을 통한 정착생활에 익숙해진 위구르족은 몽골족에 편입됐다가 다시 청나라 초기에 만주족의 통치를 받게 된다.


청나라 말기인 1884년 위구르족의 독립의지를 꺾고 ‘새로운 강역’이라는 뜻의 신장 성이 설치된다. 중국 신해혁명으로 독립의 기회가 생겼지만 다시 군벌과 중화민국의 통치를 벗어나지 못하다가 신중국이 성립된 후 다시 자치구에 편입된다.


위구르족은 주변의 강성한 민족과 현 신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독자적인 국가수립을 위한 노력하고 있다.


이슬람종교와 페르시아 문화 및 중앙아시아의 여러 민족문화가 융합된 전통을 지닌 위구르족, 이슬람세계와 중국을 잇는 중간자 역할을 수행했던 그들이지만 지금은 중국에 편입돼 독립이 요원해 보인다.


1)   싱싱샤 星星峽 밤 9시가 넘어도 태양이 지지 않는다


간쑤(甘肅) 성 둔황(敦煌)에서 신장 우루무치(烏魯木齊)까지 가는 버스를 탔다. 저녁 6시에 출발해 15시간을 달리는 침대버스. 장장 천 킬로미터를 달려야 한다. 남북으로 뻗은 215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몇 시간 가다가 다시 동서로 뻗은 312번 국도를 타고 줄기차게 가야 한다.


중국에 와서 처음으로 탄 침대버스였는데 나름대로 참 편해 보인다. 침대버스는 1층과 2층으로 구분돼 있으며 한 사람이 누우면 이리저리 움직이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좁다. 층마다 3열로 침대가 놓여있는데 다행히 가운데 열이 아니라 오른쪽 창문 쪽이라 다행이다.


마침 10여명의 민공(民工)들이 버스에 탔는데 모두 웃통을 벗고 돌아다닌다. 민공이란 일용직 노동자와 비슷한데 팀을 짜서 공사가 있거나 특별한 일거리가 있으면 함께 떼를 지어 이동한다.


민공들을 데리고 다니는 팀장이 있어서 나름대로 질서를 잘 지키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청결하지는 않다. 발 냄새가 버스 안을 가득 메워서 처음에 냄새에 적응하느라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제 차림새가 외국인으로 보였는지 신기한 듯 2층에서 쳐다보고 난리이다.


중국 서부지역은 저녁 9시가 넘어야 비로소 어둠이 내린다. 베이징 시간을 기준으로 전 중국이 통일돼 있어 그런 것이다. 직선으로 뻗은 도로, 온 사방은 지평선만 보인다. 스르르 눈을 붙였다.


우루무치 가는 침대버스에서(위쪽), 밤 하늘(왼쪽 아래), 새벽 하늘(오른쪽 아래)


한참을 달렸을까 간쑤 성과 신장자치주의 경계인 싱싱샤 부근 도로에서 잠시 버스가 정차했다. 막 노을이 물들기 시작한다. 가만 보니 모두들 내려 노상 방뇨를 하는 것이 아닌가. 휴게소가 없으니 대신 산을 넘어가는 고개마루를 화장실로 택한 것이다. 볼 일을 보지 않으면 또 언제 정차할 지 모르니 일단 소변을 해결하는 게 좋을 듯해 후다닥 내렸다.


밤 버스에 익숙하지 않아서 침대 밑에 뒀던 신발을 미처 신지 않고 내렸다. 다른 사람들을 따라 그냥 맨발로 볼일 볼 장소로 갔는데 아스팔트 도로도 울퉁불퉁했지만 길 옆 맨바닥에 까칠한 돌들이 있어서 발바닥 다 까졌다.


이렇게 화장실 없는 버스를 타면 여자들은 어떻게 해결할까. 살짝 궁금해졌다. 슬쩍 보니 버스에서 내려 왼편, 즉 앞쪽으로는 남자들이 볼 일을 보게 되고 여자들은 뒤쪽으로 돌아가 적당한 곳에서 해결한다.


버스가 계속 서쪽 하늘을 향해 달려간다. 노을이 점점 더 붉어지고 있다. 노을이 달려오는 게 성난 황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더 가까이에서 보려고 운전사 옆에 잠시 앉았다. 운전사는 웃기만 할 뿐 아무런 간섭을 않는다.


가도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하늘의 향연을 보니 보면 볼수록 점점 가슴이 뭉클해진다. 뭔지 모를 신비한 자연의 조화가 느껴진다. 길게 뻗은 도로, 한없이 붉은 빛깔을 계속 보고 있자니 몸과 마음이 더욱 빨리 앞으로 달려가는 느낌이다.


차에 타고 있다는 생각보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스크린 앞인 듯 착각에 빠진다. 도대체 언제까지 저 노을은 멈추지 않을까 생각하다 보니 어느덧 30분 동안이나 앉아있었던 가 보다.


다시 침대로 돌아와 창문을 여니 바람이 너무 세차게 들어온다. 다시 버스는 정적에 휩싸이고 졸리기 시작한다.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깼고. 출발하면 다시 자고, 정차를 몇 번 반복하더니 이번에는 주유소이다.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해가 뜨기 시작한다. 멀리서 햇빛이 강렬하게 솟구친다. 노을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햇살을 가로막으며 기름을 가득 실은 유조차가 지나가고 있다. 다른 편 하늘에는 달이 하얗게 머문 채 갈 길을 재촉하고 있다. 서역 새벽 하늘에 해와 달이 함께 떠 있는 모습을 보니 이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버스에 탔던 한 아가씨는 계속 멀미를 하더니 차에서 내려 연신 몸을 다스리는 모습이다. 정말 기나긴 버스여행을 하려면 차멀미에 강해야 한다.


도로 표지판을 보니 165킬로미터를 더 가야 도착한다. 거의 다 온 셈이다. 다시 벌판을 달린다. 해가 뜨는 새벽녘의 모습도 남다르다. 해가 뜨니 사람들도 하나 둘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한다.


우루무치 시내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처음 타는 침대버스에서 처음에 발 냄새로 고생했지만 멋진 노을을 보면서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다. 새벽부터 해가 떠오르는 길을 상쾌한 기분으로 또 달렸다. 그렇게 15시간을 밤새 달려 우루무치에 도착했다.


2)   우루무치 烏魯木齊 투르크 민족의 땅에 있는 민족박물관에 가다


신장위구르자치구 수도 우루무치에 도착해 숙소를 구하고 나서 쉬었다. 호텔 창문을 열고 밖을 보내 비가 살짝 내리는 도시가 매우 산뜻해 보인다. 거리의 과일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과일이 맛있고 저렴하기가 세계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싱싱한 과일 천국 우루무치. 과일을 잔뜩 사서 호텔에 있는 바구니에 담으니 그야말로 과일 한 바구니이다. 수박과 사과, 방울토마토와 싱싱하고 달콤한 망고, 즉 망궈(芒果)를 샀다. 특히 망고는 1근 500그램에 7위엔, 우리나라 돈 1,000원에 4개이다.


망고는 처음에는 연두색이다가 점점 누렇게 변하는데,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맛도 좋다. 처음부터 약간 자주색 빛깔이 도는 홍망궈(紅芒果), 레드망고가 있다고도 한다. 그저 오래 두면 서서히 한쪽 면부터 불그레해 지다가 빨갛게 익게 된 것을 말한다. 약간 붉어진 뒤 먹으면 그 상큼한 맛이 더욱 진하고 수박보다도 훨씬 달다. 호텔에서 내려다 보이는 과일가게 때문에 내내 밥 대신 과일로 배를 채웠다.


둔황에서 만나 다시 우루무치에서 만나기로 한 학생을 마중하러 기차 역에 갔다. 우루무치 기차 역 이름 옆에 위구르 문자가 함께 써 있다. 소수민족자치가 이뤄지는 곳에는 다 이렇게 고유문자가 간판에 적혀져 있다. 그렇다고 각 민족의 독자적인 문자를 인정한다는 것과는 다르다. 만약 한 소수민족이 중국어를 사용하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문자만 고집해 사용한다면 아마도 중국에서 살아가기 힘들 지도 모른다.


혼자 배낭 메고 밤새 기차를 타고 온 친구를 내 숙소에서 재워주기로 했다. 짐을 풀고 나더니 과일 앞에서 정말 눈빛이 확 달라진다. 과일만으로 허기를 좀 채운 후 위구르민족박물관을 찾았다.


입구에 위구르족 사람들이 머리에 두건을 쓴 채 앉아있다. 역시 눈매와 몸매가 위구르 민족답게 훤칠하다. 박물관에는 여러 종류의 석기, 청동기, 철기 등 당시 이 지역의 문화재들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에서 본 위구르인(왼쪽 위), 과일바구니(왼쪽 아래), 이슬람 풍 건물(오른쪽)


이 박물관에는 미라가 전시돼 있다. 아쉽게도 촬영이 금지돼 있다. 미라는 찍지 못했지만, 한 아주머니가 차근차근 너무도 상세히 설명해줘서 많은 정보를 얻었다. 모두 21구의 구스(古屍), 즉 오래된 시체가 있으며 4천년 전 신비의 나라이던 러우란(樓蘭) 시대 미녀도 있고, 체형이 남자처럼 키가 큰 3200년 전 하미(哈密) 여인도 있고 토번(吐蕃) 영토이던 쑤베이시(蘇貝希)에서 발견된 장군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어서 연구가치가 높다고 한다.


설명을 다 하더니 자연스럽게 공예품 가게로 데리고 간다. 싸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데 1만위엔 이상 하는 고가품들이다. 어쩐지 부탁하지도 않은 설명을 너무 친절하게 해준다 싶었다.


우리는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다. 음료수를 홍보하는지 무료 시음을 하기도 했다. 그냥 지나치려는데 맑은 목소리로 청량한 음료수를 들이미니 어쩔 수 없다. 식당 앞에서 춤 추며 홍보하는 아가씨들 모습도 재미있다.


밤이 되자 이슬람(伊斯蘭) 건축양식과 야경이 잘 어울리는 광장에 갔다. 옛 실크로드의 번영을 되찾아보려는 듯 낙타 조각이 세워진 광장에는 사람들이 많다.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이슬람 분위기 풍기는 곳에서 쇼핑 나온 위구르 가족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사진을 찍어주면서 자세히 보니 정말 잘 생겼다. 큼직한 눈망울과 부리부리한 눈썹. 정말 위구르족의 눈은 매력적이다.


사람들의 얼굴을 계속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다. 하루 종일 우루무치 시내에서 한족 사이에서 살아가는 위구르족 사람들을 찾아보느라 꽤 돌아다녔다. 중국 다른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얼굴이라 자꾸만 바라보게 된다.


3)   우루무치 烏魯木齊 우루무치의 누드 동물 먹어 말아?


우루무치 시내의 얼다오챠오(二道橋)에 있는 야시장을 찾아갔다. 국제다바자(國際大巴紮) 부근이다. 바자(巴紮)는 페르시아 말, 즉 이란어로 사람들이 운집한 곳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모여 물건을 주고 받기도 하니 시장이라 해도 무방한데 그것이 꼭 상품 판매를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위구르(維吾爾)라는 말은 ‘단결(團結)’을 의미한다. 위구르족은 바이칼(貝加爾) 호수 남쪽부터 바르카스(巴爾喀什) 호수 일대에 살던 유목민들이 주류라고 한다. 이슬람이 지배한 페르시아 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자기만의 언어와 풍습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티베트의 장족(藏族)과 함께 중국에서 가장 독립 지향적인 민족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티베트민족과는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다바자로 들어가니 온갖 먹거리가 난무한다. 우선, 양고기고치인 양뤄촬(羊肉串) 굽는 곳이 많이 보인다. 양고기를 촬에 꽂아 불에 구워 먹는 것이다. 촬은 자전거 바퀴 살을 뜻한다. 이 양고기고치는 원래부터 서역의 유명한 먹거리인데 지금은 전 중국 어딜 가도 다 흔히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중국동포들이 들어오면서부터 서서히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주로 양고기가 많다. 한쪽 편에 양 머리가 통째로 놓여있다. 이빨까지 드러내고 있는데 정말 리얼하다. 뼈까지 다 그대로 붙어있다 보니 도끼까지 동원해서 분리한다. 도끼로 뼈를 토막 내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니 약간 섬찟하다. 토막 난 것을 저울에 달아 판다. 손님들 주문에 따라 칼로 썰어 팔게 된다.


다바자의 누드동물(왼쪽), 양고기 요리(오른쪽 위), 우루무치 밤거리(오른쪽 아래)


다바자에는 온갖 동물들이 옷을 다 벗고 있다. 포장마차들마다 양고기를 비롯해 닭이나 오리도 모두 털이나 가죽이 다 벗긴 채 걸려 있다. 한 열 살 정도 된 아이가 능숙하게 몸통 속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내장을 꺼낸다. 거꾸로 매달린 고기를 부위별로 잘라내 지지기도 하고 볶기도 해 요리로 만들어 내놓는다.


저 누드동물을 먹을까 말까 고민했다. 사실 이미 한번 구운 바비큐보다는 완전히 발가벗고 고리에 매달려 있는 양고기 중에서 먹고 싶었는데 함께 간 친구가 질려 할까 싶어 참았다.


중국 술 한 병과 양고기 바비큐 요리를 시켰다. 일종의 볶음요리였는데 한 근에 20위엔이다. 두 사람이 먹기에 충분하니 비교적 싼 편입니다. 간혹 어떤 지역은 1킬로그램을 한 근이라 하기도 하지만 500그램이 표준입니다. 저울에 무게를 재더니 빠르게 썰어준다. 막 잡은 고기인지라 신선하고 부드럽다. 마침 배가 몹시 고팠기에 허겁지겁 먹고 마셨다.


요리를 위해 고기를 써는 모습이나 사람들이 요리를 먹는 모습을 보면서 노상에서 먹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갈비가 보이는데 양고기 중에서도 등갈비가 맛있다고 알려져 있다. 군침이 약간 돈다.


배 불리 먹고 다바자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중국 술을 너무 많이 마셨던가 보다. 우루무치에서 우울한 상황이 발생했다. 가방에서 캠코더를 꺼내는데 빼다가 그만 손을 놓치고 만 것이다. 캠코더가 땅바닥에 떨어지더니 또르르 굴러가길래 설마 했는데 다시 주워 들고 보니 고장이 났다. 테이프를 넣고 빼는 곳이 작동을 하지 않는다.


우루무치 다바자에서 싱싱하고 생생한 장면을 잘 보고 그만 캠코더가 작동을 멈추는 바람에 카자흐족이 살아가는 남산목장에서 영상을 담지 못한 것과 서북쪽 끝자락에 있는 싸이리무(塞裡木) 호수를 포기한 것이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쉽다.


언제가 다시 우루무치로 가서 누드 동물의 맛 있는 부위도 먹어보고 미처 담지 못한 곳도 영상으로 담아볼 생각이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