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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22회 충칭 어렵사리 찾은 임시정부 건물 깨진 유리창이 슬프다


 


충칭시는 1997년 중국에서 4번째이자 서부지역을 대표하는 직할시가 된다. 충칭의 약자를 위(渝)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수 나라 문제가 이곳에 유주(渝州)를 설치한 이래 오랫동안 불렸기 때문이다.


지금의 충칭이란 이름은 송나라 광종이 이곳을 봉읍으로 다스리다가 황제로 즉위하면서 겹경사(雙重喜慶)라는 뜻으로 충칭부를 설치하면서부터라고 한다. 20세기에 와서 일본제국주의자의 난징학살 이후 장제스가 충칭 정부를 세운 곳이다. 1945년 내전이 시작될 무렵 미국의 중재로 마오쩌둥과 장제스의 담판이 이뤄진 곳이기도 하다.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이후 충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머물던 곳이다.


창장(長江) 상류에 위치하며 후베이, 후난, 쓰촨, 산시와 잇닿아 있다. 창장을 비롯 강을 끼고 있는 도시라 예부터 미인들이 많이 나타났다고 한다. 충칭의 야경은 중국에서도 가장 멋진 풍광으로 알려져 있다.


1)   충칭 重慶 어렵사리 찾은 임시정부 건물의 깨진 유리창이 슬프다


충칭대한민국임시정부를 찾아갈 예정이다. 인터넷을 뒤져 지명을 적어 바깥으로 나왔다. 그런데, 문제는 서두른 탓에 ‘롄화츠’라고 한글로 적은 것이 탈이었다. 깜박 해서 간자체를 생각지 못했던 것인데 한국인터넷만 보고 찾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마도 중국과 관련되지 않은 우리 역사였기에 중국인터넷 찾을 생각을 못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택시를 타기 전에 운전사에게 ‘롄화츠’라고 정확한 성조 없이 대충 말했더니 역시 모르겠다고 한다. ‘한국임시정부 가자’, ‘193-40년대 항일운동 하던 한국정부’. 다 소용 없다. 다 모른다.


지도를 한 장 샀다. 도대체 어디 붙었는지 알 수가 없다. 마치 어릴 때 동생이랑 지도에 있는 글자 찾기 하는 듯 온 사방을 다 둘러봐도 눈만 아프다. 심호흡 한번 하고 다시 지도를 꼼꼼하게 살폈다. 깨알 같은 글씨로 ‘대한민국임시정부’라는 표시를 겨우 찾았다. 그리고 그 옆 도로 이름이 롄화츠(莲花池)라는 것도 확인했다.


택시 운전사에게 물으니 또 모른다고 한다. ‘여기 지도에 있어’ 하니 한참을 들여다보더니만 잘 모르지만 가보자고 한다. 잘 모르지만 일단 가보자고? 그래 부근이라도 가면 되겠다 싶었다. 신민제(新民街)가 가장 가까우니 내려서 알아서 찾아가라고 하더니 가버린다.


10여분을 헤맨 끝에 한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웃으면서 어제도 너 같은 한국사람 혼자서 와서 똑같이 길을 물었다고 한다. 그 한국사람도 몇 번 왔다 갔다 헤맸을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온다.


골목길을 지나 큰 도로가 나오고 다시 아래 쪽으로 50미터 내려가니 길 옆에 드디어 간판이 보인다. 정말 힘들게 찾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진열관이다. 중국에서 AA급 관광지이다. A가 두 개면 지방 동네 유물이라 보면 된다. 복원이라도 된 것이 다행이겠지만 좀 서운했다.


큰 길에서 조금 들어가니 고층 건물 안에 파묻힌 듯 아담한 집 하나가 나타난다. 평범한 가정 집 문 안으로 들어서니 화분들이 가지런하게 놓여있고 깨끗하게 청소가 된 상태. 가운데 계단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모두 임시정부가 쓰던 건물이다.


임시정부 요인 사진(위쪽), 건물입구(아래 왼), 태극기(아래 가운데), 지킴이 할아버지(아래 오른)


지킴이 할아버지의 안내를 받았다. 백범 김구선생의 동상과 태극기, 임시정부 인사들 기념사진이 걸려 있는 전시관으로 먼저 들어갔다. 임시정부의 활약상과 이동경로 등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제가 쓴 기사에서 임시정부 인사 기념사진을 보고 자기 할아버지 사진이 있다며 원본 사진을 받았으면 하며 연락한 분이 있었다. 지금은 중국 쿤밍에 살고 있는데 꼭 한번 오라는 것이다. 기회가 되면 꼭 가서 만나보고 싶다.


혼자 배낭 메고 조용히 사진과 영상 찍는 것이 약간 특이해 보였는지 할아버지는 계속 따라 다니며 눈인사를 한다. 자그마한 방으로 들어가니 텔레비전을 틀어준다. 10분 정도니 비디오를 보라고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이라는 제목.


줄줄 흐르는 땀도 닦을 겸 에어컨 앞에서 앉아서 봤다. 당시 임시정부의 모습을 재현한 것인데 차곡차곡 당시 흔적과 자료 화면을 보니 이 먼 곳까지 와서 항일독립운동을 한 분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각 집무실마다 많은 인물사진과 당시 자료사진들이 많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당시 임시정부 인물들이 서명도 하고 글귀도 적어놓은 태극기이다. 당시 군복에 붙은 배지도 눈 여겨 볼 만하다.


다시 할아버지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당신들의 주석’이라는 ‘니먼더주씨’(你们的主席)라고 하면서 문을 열어준 곳은 주석 집무실이다. 잠시 김구 주석이 앉아서 고뇌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차 탁자와 침대도 보이고 집무를 보던 책상도 있다. 국무위원회의실에는 회의 탁자에는 10개의 찻잔이 열을 지어 놓여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지킴이 할아버지의 정성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할아버지를 따라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니 창문 밖으로 고층아파트가 보인다. 그러고 보니 사방이 재개발돼 아파트인데 다행이 임시정부 건물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들어간 방에는 태극기와 오성홍기가 나란히 있으며 책상 위에 방명록 한 권이 있다. 뭔가 글자를 남겨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중경임시정부에서 나라와 민족을 생각했습니다’라고 적었다. 방명록을 넘겨 보니 ‘아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문 밖으로 나가려다 말고 다시 되돌아섰다. 왠지 그냥 갈 발걸음이 아니었다. 좁지만 가파른 계단을 다시 바라본다. 오르고 내리고 하면서 이곳 저곳 임시정부가 주는 역사의 숨결을 되새기니 나라와 민족을 위해 바삐 움직이던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2층 유리창 하나가 깨져 있다. 어디서 돌이라도 날라온 것인지. 굴러온 돌, 미국 앞잡이 이승만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항일투쟁과 망명 독립정부의 정통성을 이어가지 못한 서러운 민족주의자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는 듯하다. 어서 나라의 통일이 되어야만 저 깨진 유리창을 보는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싶다.


이 충칭임시정부 건물은 광복절 50주년이 되는 해인 1995년에 복원됐다고 한다. 한중수교(1992년 8월)가 되고 나서야 복원된 셈이니 참 오랫동안 방치돼 있었던 것이다. 깨끗하고 깔끔하게 단장된 모습이라 마치 고향에 온 듯 포근한 느낌이다. 조용하기도 하고 주변 아파트 숲에 파묻혀 조금 답답한 것만 빼면 이 아담한 옛집이 자꾸 정이 간다.


2)   충칭 重慶 케이블카 타고 노을 지는 창장을 넘어갔다 오다


충칭 시에는 두 개의 강이 흐른다. 시내 중심인 위중취(諭中區)를 남쪽으로 감아 도는 창장(長江)과 북쪽으로 지나가는 자링강(嘉陵江)이 있다. 그래서 충칭량장(重慶兩江)이라 한다.


충칭 시내를 걸어서 창쟝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왕복 4위엔인데 강북과 강남을 잇는 교통수단이기도 하다. 황토색 물줄기가 유유히 흘러 가는 창장 위를 날아가는 기분이 꽤 좋다. 전망도 넓고 강 양쪽 편을 두루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강의 상류와 하류도 모두 볼 수 있다.


강 수면에서 약 100미터 정도 높이이니 꽤 높다. 가끔 정전 등으로 고립되기도 한다는데 약간 불안하기도 하다. 연간 20만 명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지만 관광객들이 대부분 이용한다고 한다. 1987년부터 운행을 시작했다고 하니 꽤 오래된 것이다. 30년이나 지난 케이블카인 것이다.


오른쪽 편에 있는 고층건물들이 케이블카에 부딪힐 정도로 가깝게 보인다. 주거지역 위를 날아서 서서히 강물 위로 다가간다. 강 아래에는 유람선이 정박하는 선착장이 보인다. 반대편에서 오는 케이블카가 빠르게 옆으로 지나간다. 강물 위에 자그마한 화물선 하나가 조용히 강 상류로 올라가고 있다.


어느덧 반대편에 케이블카가 도착한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서서히 해가 지는 있는데 강 수면 위에 노을이 번지는 모습이 아주 아름답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 난빙루(南濱路)를 따라 강변 길을 걸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도 보이고 강을 따라 오르내리는 화물선도 보인다. 창장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고 강 주변을 따라 조성된 건물들도 눈요기하기에 좋다. 강변에서 바라보는 케이블카 날아가는 모습도 색다르다.


창장은 티베트 고원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상하이 앞 바다까지 이어지는 세계에서 3번째로 긴 강이다. 충칭 역시 창장을 물류수단으로 잘 이용하고 있는지 선박들이 강 곳곳에 정박해 있고 이동하기도 한다.


케이블카와 창장(왼쪽), 케이블카 모습(오른쪽 위), 건물과 케이블카(오른쪽 아래)


노을 지는 강은 누런 강물을 불그스레하게 바꿔준다. 색의 조화인지 점점 더 붉은 빛을 띠고 있다. 노을이 있으니 더욱 이 공중여행을 꼭 타볼 만하다는 생각이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케이블카를 기다리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케이블카와 일직선으로 보이는 옥탑 집 마당에서 부부가 저녁을 먹고 있다. 매일 이렇게 창장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니 노을이 멋지다고 하는 감상이 다소 낯뜨겁기도 하다. 한 쪽에서는 촬영 팀이 창장을 찍느라 분주하다.


다시 케이블카가 움직인다. 다시 강북으로 넘어간다. 서서히 1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날아간다. 케이블카를 탄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열심히 창장과 케이블카를 찍고 있다. 10분 이상 걸리는 비행 동안 강 주변을 두루 돌아보니 참으로 멋진 광경이 아닐 수 없다.


강변을 따라 도로가 계속 이어져 있으며 도로 옆에는 비교적 높은 산봉우리가 있다. 케이블카를 만들어 운영하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아마 양쪽으로 높이 솟은 산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한강에는 수많은 다리가 있긴 하지만 이런 케이블카를 굳이 놓을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른다. 우리의 하늘이나 한강도 멋진데 관광코스로 개발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남산과 강남의 고층건물 하나와 연결하면 충분히 멋진 그림이 연상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사이 케이블카는 충칭의 창장을 넘어 돌아왔다.


3)   충칭 重慶 아가씨들 몸매 가장 예쁜 동네라고 했더니


중국 곳곳을 다니며 시내 중심지도 꽤 다녀봤는데, 아마도 충칭 시내가 몸매가 늘씬한 아가씨들이 가장 많지 않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 학생이나 친구들 모두 은근하게 질문하는 것 중에서 ‘어디 아가씨들이 제일 예쁘냐?’는 것인데 단숨에 ‘충칭’ 이라 하면 모두들 ‘충칭이 어디에요? 거기 갈래요’라고 해서 늘 웃는다.


한여름인 7월 중순, 충칭 위중취 번화가를 기분 좋게 걸었다. 인민해방기념비가 있는 제팡베이(解放碑) 거리는 아주 번화하다. 수도 베이징을 비롯해 톈진, 상하이와 함께 중국의 직할시이니 당연하다.


제팡베이 광장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먼저 건물 벽에 설치된 대형화면에 차이나모바일 핸드폰 광고가 반복되고 있다. 어깨에 가방을 둘러메고 반바지 차림으로 걸어 다니는 아가씨들이 많다. 세일을 하는 백화점 주변도 북적거린다. 10층 이상 되는 고층 건물은 백화점이면서 유명 식당들이 입주해 있다.


조카들을 데리고 늘씬한 몸매의 이모가 지나가기도 하고 연인들은 어깨와 허리를 감싸고 지나가기도 하는데 덥지도 않은가 보다. 중국 여행을 다니다 보면 몸매가 예쁜 아가씨들을 가끔 보게 된다. 물론 다른 나라에 비해 단순 비교하기가 좀 그렇지만, 중국 아가씨들은 늘씬한 다리 하나는 정말 타고난 듯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신화서점 앞을 지나는데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서 있다. 가만히 보니 자자오(家教)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 가정교사를 하려는 학생들이 거리에 나와 학부모와 직접 접촉을 하려는 것이다.


중국의 대부분 도시 중심에는 신화서점(新華書店)이 있다. 참 이상하게도 이름이 다 같은데 지도에서 이 책방을 찾으면 대체로 시 중심이다. 이 서점은 중국 전역에 퍼져있는 연쇄점으로 원래는 1937년 중국공산당이 옌안에 있을 때 처음 만든 것이다. 공산당 당 중앙의 선전부의 통제 아래 있었고 지금도 국영기업인 중국출판집단(中國出版集團)이 관리한다. 전국적으로 16,000여 개의 서점이 있다고 하니 독점적 국영서점이라 할 수 있다.


충칭 번화가 제팡베이 거리 모습들


처음에는 학생들이 팻말을 들고 시내에서 시위를 하는구나 생각할 수도 있는 장면이다. 부모들이 아이들과 시내에 왔다가 가정교사 시장에서 자기 아이들을 위해 물건을 고르듯 협상을 하는 모습이 진지해 보인다. 이런 장면은 처음 보는 것이라 흥미롭게 지켜봤다. 중국에서도 영어가 열풍이어서인지 전공이 영어인지 물어보는 엄마가 많다.


영어도 초급, 고급으로 나누어 소개하며 수학, 물리, 화학도 가능하다고 한다. 가정교사라는 것이 집을 방문해서 아이들에게 자신이 배운 실력을 나누어주면서 학비를 버는 일일 것이다. 가난한 시골에서 충칭으로 온 똑똑한 학생들이 대부분일 나온 것이다. 도시의 돈 많은 부모 밑에서 자라 밤마다 흥청망청 술 마시고 놀고 연애나 하는 학생들에 비해 훨씬 예뻐 보인다.


요즘은 인터넷을 소통수단으로 많이 활용하는데 직접 거리에 나와 일대일 대면을 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직접 말을 주고받아야만이 원하는 가정교사를 잘 고를 수 있다는 생각인 듯하다.


거리마다 상품을 할인하는 행사가 많고 마이크로 홍보하는 멘트로 시끄럽다. 물건을 다 처리해야 하니 값이 싸다는 멘트는 우리나 중국이나 맨 한가지인 듯하다. 제팡베이 거리를 다 지나 한 포장마차에서 간단하게 고기볶음 반찬으로 밥을 먹었다. 시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더니 배가 몹시 고팠는데 허기를 채우니 다시 기운이 생겼다.


충칭의 시내는 고지대이다. 2개의 강을 사이에 두고 한가운데가 시내 중심인데 높이 솟은 산을 따라 조성된 도시이기도 하다. 시내버스가 강변을 향해 산 아래로 빠르게 지나간다.


충칭 거리에 예쁜 아가씨가 많다고 하면 사람들마다 꼭 가보고 싶다고 농담 삼아 말한다. 예쁘다 예쁘지 않다는 기준이 뭐 특별한 것이 있겠는가. 몸매가 늘씬한 것보다는 스스로 학비를 벌기 위해 부모들에게 자신이 잘 가르칠 수 있는 지식을 알리고자 하는 학생들이야말로 더 예뻐 보이는 충칭이었다.


4)   충칭 重慶 강변 야경 정말 전국 최고야!


밤이 오니 강변에 조명이 하나 둘씩 켜진다. 충칭 시내 북쪽을 따라 흐르는 자링장 강변에 서니 중국사람들이 도시 야경 중 최고로 꼽는다는 충칭 야경 앞에서 숨을 멎게 된다.


강변 도로 가로등이 켜지고 강변을 따라 늘어선 빌딩마다 불빛을 내뿜기 시작한다. 창장보다는 약간 좁아 보이는 강 한가운데에는 화물선이 움직이지 않고 멈춰 있다. 그래서인지 강물은 조용히 정적도 없이 흐르는 듯 보이고 건물들이 오히려 활개를 치는 듯하다. 고풍스런 옛날 양식의 건물에 내걸린 홍등도 아주 인상적이다. 저 하나하나의 홍등과 불빛이 모여 전체적으로 활활 불 타는 듯한 야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강변 다리를 건너간다. 자동차들도 조명등을 켜고 가로등 불빛 아래로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다리 옆으로 폭이 좁은 인도를 따라간다. 차 엔진소리가 시끄러워 소음이 심하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뱃고동이 울리면서 배 한 척이 다리 밑을 지나가고 있다.


그런데 배만 있는 게 아니었다. 강변 옆으로 도시철도가 달리고 있다. 건물 사이로 열차가 사라지는 모습이 꽤 분위기가 있다. 그냥 야경만 멋지구나 생각했는데 강에는 유람선도 다니고 강변 철도도 있으니 구색을 두루 잘 갖추고 있다. 다시 열차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이길래 지켜봤더니 다섯 칸 정도인 작은 열차이다.


다리를 건너면서 본 건물 야경은 참으로 휘황찬란하다. 20분도 더 걸리는 긴 다리를 다 건너가서 보니 또한 멋지고 아름답다. 시간이 많이 지나 이제 주위가 더욱 어두워졌으니 조명이 더욱 밝아 보인다.


다리 아래로 난 통로를 따라 강변 길로 가보기로 했다. 강변으로 내려가니 역시 야경이 환상적인데다가 방금 지나왔던 다리에도 환한 조명을 비추고 있으니 더욱 멋지다. 게다가 조명이 강물에 반사돼 다리는 둥근 원을 그리고 있다. 다리 아래에 배 한 척이 조용히 멈춰서 있으니 그 분위기도 볼만하다.


도시 야경을 따라 유람선이 한 척 올라오고 있다. 배에서 내뿜는 조명이 강물 위에 파랗고 초록의 무늬를 풍기고 있다. 유람선의 오묘한 색감을 볼 수 없겠지만 배를 타고 보는 충칭 강변 야경도 정말 멋지다. 한참 동안 배가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눈이 다 시릴 정도이다.


유람선이 지나간 자리로 조그맣게 보이는 작은 배가 한 척 머물러 있다. 야경이 너무 밝아 미처 보지 못했는데 어둠 속에서 저 배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강변에 나와 야경을 구경하며 산보를 하는 사람들이 참 평화롭다. 이렇듯 멋진 모습을 보면서 살아간다면 감성이 풍부해질 것 같다. 음료수도 마시고 간식거리도 먹는데 의외로 술 마시는 사람은 없다.


강변 너머 쌍둥이 빌딩이 하나 보인다. 이 빌딩은 그저 조명을 내비치는 것만 아니라 조명으로 멋진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배가 움직이는 모습도 보이고 1층부터 순서대로 조명이 들어왔다가 꺼졌다 반복한다. 


충칭 시내 북쪽 자링강 야경 모습


이 강변북로를 따라 마냥 걸었는데 다리가 무지 아팠다. 그래도 야경 하나는 실컷 본 셈이다. 하지만 야경에 취해 무작정 다리를 건너게 된 것이 고생의 시작이었다. 사람들 발길 따라 강변 길을 계속 걸었는데 가도가도 끝이 없다.


그나마 건너편 야경을 보면서 참았는데 안 그래도 하루 종일 걸어서인지 서서히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한다. 택시라도 잡으려 하는데 도대체 빈 차가 없다. 그래 멀어야 얼마나 멀까 하면서 강변을 따라 서쪽으로 계속 걸었다.


1시간을 더 걸어가니 또 다른 다리가 나오는데 정말 더 이상은 걷기 힘들 정도이다. 야경은 멋지건만 교통편이 불편하다. 남북을 가르는 도로로 올라가니 차들이 좀 다닌다. 마침 택시 한 대가 반갑게 다가온다. 딴 소리 할까 봐 무조건 탔다. 충칭 야경 때문에 눈은 행복했건만 다리는 품을 팔아도 좀 심하게 팔았나 보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