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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24회 시짱 1 이다지도 파란 하늘 두고 달라이라마는 어디로 갔을까



시짱 장족(藏族)자치구는 기원전 강족 등의 원주민이 있었는데 인도 왕자가 부족국가를 통일하기도 했으며 서기 7세기에 이르러 쏭첸깐뽀가 강력한 통일국가인 토번을 세운다. 당나라와 송나라와 대등한 우호관계를 유지하며 쓰촨과 칭하이를 아우르는 방대한 영토를 경영했다.


13세기에 이르러 몽골족 원나라에 의해 복속된다. 이를 근거로 중국사람들은 ‘13세기 이래 중국 땅’이라고 주장한다. 티베트 고원을 무대로 살아온 티베트민족은 청나라 강희제 시대에 이르러 장족이라 일컫게 된다.


티베트민족은 지속적으로 독립국가를 지향했지만 1950년 10월 중국 정부군이 티베트를 침공하고 1951년 5월 17개 조항에 이르는 협정이 강제적으로 체결되면서 중국의 소수민족 자치구로 전락된다.


중국의 변강(邊疆) 정책 중 하나인 서남공정(西南工程)은 시짱 장족자치구, 윈난(雲南) 성, 광시(廣西) 좡족(壯族)자치구에 있는 소수민족의 이탈을 방지하고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역사와 문화를 한족 중심으로 평가하고 왜곡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티베트 독립문제는 세계 외교사에서도 굉장히 민감한 문제이고 중국정부도 그 기조가 대단히 강경하다. 그래서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며 자주적으로 살아가려는 티베트 민족에게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티베트, 시짱 장족자치구의 수도 라싸와 가장 오래된 라마사원이 있는 쌈예로의 티베트 민족문화체험을 시작한다.


1)   라싸 拉薩 이다지도 푸른 하늘을 두고 달라이라마는 어디로 갔을까


티베트로 들어가려면 외국인은 중국정부로부터 허가서를 받아야 한다. 티베트의 독립을 지지하는 외국인들이 자주 시위를 하기 때문이다. 티베트 독립을 요구하며 중국을 비판하니 당연히 들어가기 까다롭다. 여행 목적 이외에는 허가하지 않겠다며 여행사를 통해서만 허가를 받아야 한다.


쓰촨 청두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서서히 서쪽으로 날아가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티베트의 산천은 아름답다. 산 꼭대기에 하얗게 쌓인 눈이 보인다. 해발고도가 아주 높다. 구름 아래로 산맥을 끼고 흐르는 강을 따라 비행기는 점점 라싸로 향한다. 산봉우리를 휘감고 있는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언뜻 보인다. 비행기가 서서히 착륙준비를 하려는 듯 아래로 내려가니 농촌 마을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비행기가 착륙했다. 길게 뻗은 활주로를 따라 구름들이 새하얗게 따라오는 듯하다. 비행기 트랩에서 내리니 바로 활주로이다. 지평선과 맞닿은 시선에 산 정상이 보이는 것을 보니 산 중턱에 내려선 느낌이다. 활주로에서 본 산과 하늘은 감동 그 자체이다. 정말 하늘이 새파랗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데 이 세상 그 어디보다 달랐다.


공항버스를 타고 1시간 20여 분을 달려야 라싸 시내에 도착한다. 바로 여기가 라싸구나 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거리를 걸었다. 섭씨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인데 숙소를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배낭을 메고 이리저리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


처음 버스에서 내렸을 때는 중국의 여느 도시와 비교해 낯설다는 인상은 없었는데 전통복장을 입은 티베트 사람들을 하나 둘 만나면서부터 뭔가 특별한 느낌이 생기기 시작했다.


티베트 문자가 적힌 간판이나 자주색 라마승들의 옷, 차길 양 옆으로 선명한 색깔의 창문 그리고 무엇보다도 볼수록 눈 부신 파란 하늘이 색다른 호감이다. 한 건물 옥상에 티베트 문자가 적힌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도 하늘을 그냥 보통 하늘이 아닌 듯 느껴진다.


거리는 사람들과 지나다니는 자전거, 오토바이, 차량들로 뒤섞여 있으며 심지어 개까지 무단횡단을 하니 매우 무질서하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아니니 무질서하지만 한가롭고 평화로운 거리 모습이다. 건물 창문에 놓인 화분들도 반갑다.


거리를 걷다 보니 거리 이름이 베이징루(北京路)이다. 중국 도시마다 거리 이름을 전국의 도시이름을 따서 짓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 라싸까지 베이징이 들어섰다고 생각하니 다소 화가 난다.


라싸 자전거(왼쪽), 라싸 시내(오른쪽 위), 둥춰 유스호스텔(오른쪽 아래)


덥기도 하거니와 배낭이 무거워 자전거 차를 세웠다. 숙소를 찾는다 했더니 100여 미터를 가더니 동춰(東錯) 유스호스텔(青年旅舍) 앞에 내려준다. 이렇게 가까운데 있었다면 그냥 걸을 걸 그랬다 싶다.


동춰는 입구부터 외국인들의 쉼터라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영어와 중국어로 함께 안내문이 적혀 있으며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여행자들도 많다.


숙소 바로 옆에 조선족 동포가 하는 식당이 있어 점심으로 비빔밥을 먹고 거리로 다시 나갔다. 8차선이나 됨직한 큰길 한가운데 서서 양쪽으로 오가는 차들 사이에서 하늘을 바라봤다. 특별히 선이 그어진 횡단보도도 보이지 않고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큰길을 넘나들고 있다.


거리에 오체투지를 하면서 구걸을 하는 사람이 보인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온몸을 엎드렸다가 일어서면서 손을 내미니 또 사람들이 돈을 건넨다. 차길 옆으로 흰색 벽을 따라 한 할머니가 마니룬(瑪尼輪)을 돌리며 걸어가고 있다. 티베트 사람들이 늘 손에 들고 다니는데 라마불교 경전이 동그란 통 속에 들어가 있다. 그래서 중국어로는 좐징퉁(轉經桶)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멀리 포탈라 궁이 보인다. 파란 하늘을 뒤로 하고 산 능선을 따라 건축된 거대한 궁전이 볼수록 신기하다. 어느 위치에서 보더라도 장엄한 궁전의 위상이 그대로 전달된다. 저 높은 산에 저다지 웅장한 궁전을 짓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다지도 파란 하늘이 있는 티베트, 저 멋진 궁전 속에 자리를 잡고 종교지도자이면서 독립된 나라의 리더가 돼야 할 달라이라마는 어디로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달라이라마는 1959년 라싸를 떠나 인도 북부의 다란싸라(達蘭薩拉)에 망명정부를 세웠다. 다란싸라를 샤오라싸(小拉薩)라 부르기도 한다. 달라이라마를 비롯해 망명한 티베트 사람들에게 이 하늘이 어찌 그립지 않을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포탈라 궁을 보느라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더위를 먹었나 보다. 머리가 조금씩 아파온다. 그러고 보니 이게 고산병이 아닐까 싶다. 거리를 다니면서 호흡이 가쁘고 숨이 차 고산지대에 왔더니 영향을 받긴 하는구나 생각하긴 했지만 머리까지 멍해지는 증상이니 큰일이지 싶다.


라싸 시내의 효율적인 이동수단인 자전거 삼륜차에 올라탔다. 왼쪽으로 보이는 포탈라 궁 앞 광장을 가로질러 간다. 좀 빨리 가자고 했더니 서두른다. 포탈라 궁 정면을 지나가는데 오른쪽으로 높이 솟은 오성홍기가 보인다. 휘날리는 붉은 깃발이 파란 하늘과 묘한 불균형이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오후부터 아프기 시작한 두통이 거의 24시간 동안 지속됐다. 저녁 먹을 힘도 없이 침대에 누워 꼼짝하지 못했다. 호흡곤란과 함께 두통 역시 고산병의 일종이라 하는데, 심한 경우 비행기로 후송되는 사람도 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한국 학생들 몇 명이 오자마자 술 마시고 까불다가 응급실로 후송돼 고생했다고 한다.


밤새 앓았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티베트에서 누구에게 병간호를 부탁한다는 말인가. 그저 어서 낫길 바랄 뿐이다. 게다가 잠도 오지 않는다. 그렇게 다음날 오전까지 아팠다. 여전히 호흡이 정상이 아니었지만 겨우 세수만 하고 나와서 바람을 약간 쐬니 다소 안정이 된다.


2)   라싸 拉薩 앞에서도 뒤에서도 포탈라 궁은 들어가기 힘들어


세계문화유산인 포탈라(布達拉, Potala) 궁은 라싸 시내 어느 곳에서도 잘 보인다. 아예 산을 통째로 밀어 그 위에 지은 궁전이기 때문이다. 입장료는 100위엔이고 입장허가를 받으면 그 다음날 궁에 들어가서 관람을 할 수 있다. 하루에 들어가는 사람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산병이 채 다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겨우 힘을 내 포탈라 궁으로 다시 갔다. 정문으로 가서 내일 입장권을 사러 왔다고 하니 서쪽에 있는 후문에서 예매 중이라고 한다. 다시 기나긴 광장을 따라 걸어갔더니 오늘 발매할 입장권은 이미 매진됐으니 내일 다시 오라고 한다. 사진과 영상을 찍는데 돈을 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해서 굳이 궁 안을 봐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포탈라 궁은 거의 해발 3,700미터에 위치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세워진 고대 궁전이다. 주 건물의 높이가 110미터에 이르며 길이도 동서로 360미터에 남북으로 200미터에 이른다.


서기 641년 토번왕(吐蕃王) 쏭첸감뽀(松贊干布)가 라싸로 수도를 옮기고 당나라 문성공주와 결혼한 후 공주를 위해 처음 세웠다고 한다. 999칸이라던 초기 건물의 흔적은 이미 사라졌고 지금의 궁전은 청나라 시대에 만든 것이다.


쏭첸감뽀의 '정교합일' 정권의 중심이던 포탈라 궁은 청나라 시대를 거치며 그 원형이 변했으며 신중국이 성립된 후 1985년에 고대문물 보호를 위해 사상 최대규모의 투자라 일컫는 대규모 공사를 거쳤다. 1989년에도 다시 한번 공사를 해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잡았다.


포탈라 궁은 역대 달라이라마(達賴喇嘛)가 거주하며 종교와 정치를 펼치던 곳이다. 신중국이 티베트를 장악한 후 1961년에 전국중점문물로 지정한 상태이다. 세계인들이 한번쯤은 꼭 와보고 싶은 관광지가 된 것이다.


포탈라 궁 뒷문(왼쪽), 포탈라 궁(오른쪽 위), 포탈라 궁 매표소(오른쪽 아래)


다음날 우연히 만난 한국 여학생이 뒷문으로 들어가면 포탈라 궁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궁전 안에 들어가서 사진도 제대로 찍기 힘들고 표를 구하기도 쉽지 않고 비싸기만 할 뿐이니 뒷문으로 한번 가보자는 것이다. 시안에서 만났던 학생과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나게 됐는데 먼저 라싸와 와 있던 사람들이 모여 7명으로 일행이 늘었던 것이다.


예매 장소인 포탈라 궁 후문은 관람을 마친 사람들이 내려오는 곳이다. 그러니 올라가는 것을 막고 있었는데 내려오는 사람들 틈에 끼어 살짝 올라갔다. 언덕을 따라 올라가니 점점 전망이 넓어진다. 사방이 분지처럼 산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하늘과 구름이 모든 시야를 다 수 놓고 있는 멋진 모습이다.


다소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가니 포탈라 궁의 뒷모습이 나타난다. 아래에서 볼 때 느낀 것이지만 정말 웅장한 궁전인데 그 뒷모습 역시 거대하다. 궁전을 맴도는 뭉게구름 때문에 하얀 궁전 벽이 마치 하늘과 닿아있는 듯 보인다.


돌과 나무가 적절하게 섞여 건축된 궁전이다. 흰색 벽도 있고 홍색 벽도 있다. 창문마다 가림 천이 있는데 바람에 산들산들 휘날리는 모습이 평화로워 보인다. 중간에 몇 그루 나무들도 궁전 풍경의 감초 역할을 하고 있다.


입장권 검사를 하는 곳이 있어서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궁전의 뒷모습과 함께 마을 전체를 다 볼 수 있는 전망에 만족했다.


다시 길을 내려와 매표소를 지났다. 그리고 끝도 없이 마니룬이 걸려 있는 곳을 지나며 슬쩍 만져보기도 했다. 오체투지를 하며 걸어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생활 그 자체라고 하지만 관광지 후문에 나타난다는 것은 관광객들에게 돈을 바라는 것이 더 큰 이유인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돈을 건네준다.


이렇게 라싸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에게 주로 5마오(毛)를 건넨다. 1위엔의 1/2이니 그리 큰 돈은 아니다. 워낙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뿐 아니라 라마승복을 입은 승려들도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서 마음씨 약한 사람들은 아예 5마오 지폐를 많이 들고 다니기도 한다.


왼손에 마니룬을 들고서 오른손으로 벽면에 세워진 마니룬을 돌리며 지나간다. 마니룬이 세워진 담벼락에 예쁜 색깔의 무늬가 눈에 들어온다. 돌 하나 크기 정도 돼 보이는데 흰색, 초록색, 노란색, 하늘색, 붉은색, 검은색으로 티베트 문자 6개가 새겨져 있다.


포탈라 궁으로 들어가려니 미리 하루 전에 아침 일찍 줄을 서서 예매를 해야 한다. 뒷문으로 몰래 들어가면 궁전 내부를 보려니 했더니 그것도 만만하지 않다. 굳이 들어갈 생각은 없었지만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마니룬 도는 소리와 예쁜 색깔의 티베트 문자를 보면서 서운함을 달래본다.


3)   라싸 拉薩 바코르 광장은 티베트의 피와 땀이 얼룩져 있다


라싸 시내에는 꼭 보고 가야 할 조캉(覺康, Jokhang)사원이 있다. 본당인 조캉전의 이름을 따서 일반적으로 조캉사원이라 부르는데 중국어로는 다자오쓰(大昭寺)라고 한다. 이 조캉사원을 보지 않으면 라싸에 다녀갔다고 말할 수 없다 할 정도로 상징적인 사원이다.


조캉사원 앞은 바코르(八角) 광장이다. 바로 이곳이 티베트 사람들에게는 종교 순례지와도 같은 곳이다. 사원을 중심에 놓고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는 순례자의 길이 있으며 티베트 독립을 위한 시위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바코르 광장(왼쪽), 오체투지(오른쪽 위), 조캉사원(오른쪽 아래)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커다란 화로 앞에 나뭇가지를 계속 던져 넣는다. 연기가 광장과 사원을 다 에워쌀 듯 솟아오른다. 그 옆에 티베트 문자가 그려진 헝겊으로 둘둘 묶은 큰 장대 하나가 하늘로 솟아오를 듯 서 있다.


사원 정문 앞 커다란 마니룬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오체투지로 예를 올리고 있다. 사원을 향해 모두 종교적 의식을 치르는데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해야 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조캉사원 안으로 들어가니 아담한 마당이 보이고 2층으로 된 건물인데 장식이 참 예뻐 보인다. 1층 본당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어둡고 좁은 통로를 따라 많은 불상들이 있다. 포탈라 궁과 함께 서기 7세기에 만들어진 조캉사원은 당나라 문성공주가 티베트에 올 때 가져온 석가모니 불상이 있다. 엄격하게 촬영이 금지돼 있어 아쉬웠다. 달라이라마 초상화가 한 장 있어 살짝 사진을 찍었는데 어두운 곳이라 그런지 상태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2층으로 올라가니 화분들이 한가운데 뚫린 공간 주변에 늘어서 있고 건물의 천연색감과 잘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다. 건물을 따라 한 바퀴 둘러보니 대부분 벽에는 붉은 느낌의 단청으로 색칠이 돼 있다. 어떤 건물은 검은 천으로 차양을 친 듯 막아놓기도 했다. 강한 햇살 때문에 밝은 곳과 그늘 진 곳이 흑백의 대비가 분명한 것이 인상적이다.


본당 건물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또 다른 건물들이 포위하고 있는 상태라 사각 모퉁이를 따라 한 바퀴 돌아봤다. 지붕 처마마다 여러 동물들이 조각돼 있고 풍경(風磬)도 걸려 있다.


사원 2층 옥상에서 바라보니 저 멀리 포탈라 궁 모습이 보인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아래에 있는 바코르 광장과 순례자의 길도 한 눈에 보이는 곳이다. 뒤돌아보면 조캉사원도 본당 지붕도 하늘과 닿아있다.


사원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도는 순례자의 길을 따라 걸었다. 티베트 사람들은 늘 이곳에 나와 종교의식을 치르듯 오체투지를 하며 순례자의 길을 돈다. 삼보를 걷고 다시 일배 하면서 온몸을 땅바닥에 밀착시키며 절을 하는 모습이다. 양손에는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나무로 된 판자를 끼고 있다. 앞으로 엎드릴 때마다 나무와 바닥이 닿는 소리가 주르륵 하고 들린다.


순례자의 길을 따라 여행객들이 많다. 관광상품을 파는 가게들도 많다. 대체로 골동품, 민속공예품, 미술품, 책자 등 각양각색이다. 정말 이상한 것은 물을 파는 가게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목이 말라 물 한 병 사느라 꽤 헤맸다.


마니룬을 들고 걸어가는 할머니의 백발 서린 머리카락도 보이고 하얀 모자를 쓴 할아버지도 지나간다. 자꾸 보면 볼수록 빙글빙글 돌아가는 마니룬의 경전 속으로 빨려 들 것 같다. 갑자기 엄마와 함께 오체투지를 하는 아이가 불쑥 나타난다.


하반신이 없는 사람은 그냥 바닥을 기어가면서 투지를 한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렇게 남녀노소, 라마승려는 물론 티베트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바코르 광장 앞을 끊임없이 지나간다.


사원 1층 벽 안쪽으로 수많은 촛불들이 활활 타고 있다. 초 하나마다 티베트 민족의 염원을 담은 듯하다. 저렇게 많은 초를 태우다니 티베트 민족의 소망을 다 담으려는가 보다. 그들의 소망이란 다름 아닌 독립, 진정한 자치가 아닐까 싶다.


이 바코르 광장은 티베트 민족에게 순례자의 길이며 피와 땀이 어린 성지이다. 삼보일배로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은 평소에는 담담한 모습이지만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 앞에서는 눈물을 쏟아내야 한다. 그때마다 상처가 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의 행렬을 보고 있자니 말로 표현하기 힘든 침묵과 불처럼 솟는 심장소리가 느껴진다.


4)   라싸 拉薩 티베트 사모한 천사의 집의 고아들과 만나다


라싸에 머무르는 동안 ‘티베트 천사들’과 행복한 만남을 가졌다. 오체투지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뭔지 모르게 답답하던 어느 날,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고아원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택시를 타고 지금도 찾아가라면 아리송한 동네로 20여분 갔다. 차에서 내려 동네 가게에서 아이들을 위해 과자와 우유를 사고 고아원을 찾아간다고 하니 주인 아주머니가 아주 호의적으로 알려준다.


한 가정 집으로 들어가니 마침 예배 보는 시간이었다. 사라, 모세, 한나 3명으로 문을 열었기에 ‘사모한’ 고아원이라 부르는데 10명의 아이들이 중국어와 티베트어, 가끔 우리 말을 섞어가며 예배를 보고 있다. 티베트 불교의 나라에서 기독교 선교를 한다는 것도 의외였지만 이렇게 고아원을 운영한다는 것도 놀랄 일이다.


예배가 끝나자 참하게 한국 식 절을 하고 ‘곰 세 마리’를 부르며 신나게 춤을 춘다.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풀게 해주려는 것이라고 한다. 귀여운 아이들의 재롱잔치를 보고 있으니 덩달아 흥겹다.


아이들은 고아원 원장 선생님을 빠바라고 부른다. 중국어로 아버지를 그렇게 부른다. 빠바는 기타를 쳐주기도 하고 카세트를 틀어주기도 하면서 아이들이랑 즐겁게 놀아준다.


세상의 모든 아이이 풀어내는 몸짓은 다 귀여운 가 보다. 특히 나오미는 예쁘장한 얼굴과 날씬한 몸매를 뽐내며 세련된 춤 솜씨를 보여준다. 가장 나이 어린 에스더는 천진난만한 미소로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라싸의 선교 고아원의 아이들


티베트 천사들의 합창, 천사들의 날개 짓을 보면서 하나씩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정 이 집을 잃은 천사들을 위해 온몸을 다 바쳐 살아가는 사람을 그 어떤 종교적 이유로 비난할 수 있는가. 그 누가 뭐라 하더라도, 종교와 민족, 국가와 독립, 사랑과 갈등을 논하기 전에 티베트 ‘사모한’에 있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지켜보시기 바란다.


드보라는 혼자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늘 깨끗하게 치우는 일을 즐겨 한다. 그 사이 에스더가 또 따라와서 맑게 웃는다.


아이들과 함께 뒹굴며 놀았다. 우리 아이들처럼 예쁜 인형을 가지고 놀기를 좋아한다. 엄마놀이도 한다. 나오미는 빠바가 선물로 준 인형을 가지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사라도 엄마인형과 아기인형을 나란히 눕혀놓고 있다. 행복한 미소를 짓지만 왠지 우울한 느낌도 살짝 드러난다. 베드로와 요셉도 자기 인형을 가지고 와서 자랑한다. 요셉은 베드로가 너무 신나게 자랑하고 있으니 조금 질투가 나는 가 보다.


이 아이들은 대부분 거리에서 버려졌던 아이들이라고 한다. 한국인 선교사인 빠바가 하나 둘 데려다 키우면서 많이 안정이 됐다. 처음에는 대인기피와 자폐적인 행동 때문에 고생도 많았다고 한다.


아이들이 잠을 자야 할 시간이다. 오랜만에 손님들이 찾아와 신나게 놀았더니 그 여흥이 채 가시지 않는가 보다.


중국 티베트 수도 라싸에서 외국인이 만든 고아원은 당연히 허가 받지 못한다. 선교의 사명으로 온 빠바의 치열한 고생이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얼마 후 공안들이 들이닥쳐 아이들을 모두 데려갔다고 한다. 대부분 흩어져서 아이들 소식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국립고아원으로 많이 보내졌다고 한다. 라싸에서 우연히 알게 된 티베트 아이들, 그 해맑은 눈망울이 잊혀지지 않는다. 부디 티베트의 아이들로 건강하게 자라길 바란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