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27회 구이저우 2 만돌린 연주 모리화 들으며 누각 야경에 취해



4)   안순 安順 잔잔한 폭포에서 물오리와 함께 나타난 아가씨


구이저우 안순에 있는 황궈수풍경구에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폭포가 있다. 이름의 뜻을 풀어보니 ‘가파르고 비탈진 둑’이라는 더우포탕(陡坡塘) 폭포. 이름만 그렇지 그다지 가파르지는 않고 살짝 비탈진 폭포다.


폭포 입구에 조성된 공원에 공작새가 있다. 어슬렁거리면서 걸어 다니는 모습이 의젓한 동작이다. 화려한 날개 짓을 언제 할 지 한참 기다렸건만 끝까지 그저 한발 두발 걸음만 옮길 뿐이다.


잔디가 깔린 공원 이곳 저곳에 사람들이 한가롭게 쉬고 있다. 공원을 지나 천천히 폭포 쪽으로 올라갔다. 폭포 앞에 가니 수십 마리의 청둥오리들이 헤엄치며 떠다니고 있다. 물살을 따라 둥실둥실 떠다니는 청둥오리 떼들이 마냥 평화로워 보인다.


이 폭포는 떨어지는 낙차는 그다지 높지 않아 21미터에 그치지만 그 너비는 아주 넓어서 105미터에 이른다. 넓게 떨어지면서 물살이 흘러가는 덕에 그 아래에 있는 물오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떠다니며 놀기 좋다.


이 폭포는 물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사자가 울부짖는 듯한 허우셩(吼声) 소리를 낸다 하여 허우푸(吼瀑)라고도 한다. 이 ‘허우’는 사자후(狮吼)라고 할 때의 ‘후’다. 이렇게 포효하는 폭포 아래 물살을 헤치며 노니는 청둥오리들은 사자가 무섭지 않은 가 보다.


한편 이 폭포는 큰 홍수가 생기기 전에 우르르 쾅쾅 하는 천둥소리를 낸다고 한다. 평소에는 그다지 수량이 많지 않다가 비가 와서 수량이 늘어나면서 물소리가 달라서 그렇게 과장해서 말하는 듯하다. 참으로 재미있는 비유다.


넓은 폭포 사이에 봉긋하게 바위들이 솟아있다. 폭포 사이로 보이는 봉긋한 모양새가 오히려 폭포답지 않은 모습이다. 폭포라고 하기에는 영 밋밋하다.


폭포에서 만난 아가씨(왼쪽), 폭포 배경으로 한가족(오른쪽 위), 폭포 앞 물오리(오른쪽 아래)


청둥오리들이 노는 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청둥오리는 중국어로 뤼터우야(绿头鸭)라고도 부른다. 머리가 녹색인 오리라는 뜻인데 가끔 초록색 머리를 가진 오리도 있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머리카락이 몸통 색과 같은 그저 평범한 갈색이다. 넓은 폭포를 배경으로 헤엄치고 노는 오리 떼들을 바라보며 있으니 오리처럼 둥둥 떠다니는 듯하다.


폭포를 뒤로 하고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특히 소수민족 옷을 입고 있는 아가씨들이 사람들 속에서 좀 튀어 보인다. 이 지역을 거점으로 살아가는 부이족 전통복장이다. 물론 돈을 내고 옷을 빌려 입는 것이다.


그 중 한 아가씨에게 허락을 받고 사진을 찍었다. 그 아가씨는 오히려 저랑 사진을 찍자고 한다. 수염을 기르고 다녔더니 ‘한국예술가’ 라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찍은 사진을 꼭 보내달라면서 연락처를 적어준다. 장쑤(江蘇) 창저우(常州) 시의 초등학교 선생님인데 창저우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한다. 물론 2달 후에 창저우에서 그 아가씨의 남자친구랑 함께 만났다.


더우포탕 폭포를 마지막으로 일일투어가 끝났다. 구이양 시로 돌아오는 길에 여행사가 추천하는 가게에 들렀다. 역시 소수민족의 땅이니 안내하는 아가씨들도 다 이 지역 민족들의 옷을 입고 있다. 아무리 봐도 원색적인 느낌을 잘 살린 소수민족들의 이국적인 옷들이 자꾸 마음에 든다.


5)   구이양 貴陽 엄청나게 큰 팽이를 돌려라


하루 종일 구이양 시내를 돌아다녔다. 밤 12시 기차를 타야 하니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커피도 한잔 하면서 정말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레스토랑도 둘러보고 PC방에서 인터넷도 했다. 인터넷을 살피다가 문득 시내에서 가 볼만 한 곳을 하나 발견했다.


구이양 시내 자슈러우(甲秀樓) 앞 광장에 도착했다. 시내에서 가장 갈만한 곳인 이 누각 앞에 사람들이 많다. 갑자기 짝~짝 거리는 소리가 나서 둘러보니 광장 중간에서 엄청나게 큰 팽이가 돌아가고 있다.


중국 곳곳에 많은 사람들이 팽이(퉈뤄, 陀螺)를 돌리는 것을 간혹 보긴 했지만 이렇게 큰 팽이는 처음 본다. 흰 모자를 쓰고 하얀 바지에 런닝셔츠를 입은 한 아저씨가 채찍을 들고 열심히 팽이를 때리고 있다.


중국사람들이 런닝셔츠를 입고 다니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어 다소 놀랐다. 한여름에 맨 살을 다 내놓고 웃통을 훌쩍 벗는 게 일상적인 모습인데 구이양은 다소 생활문화가 다른 듯하다.


하여간 바싹 마른 사람이 팽이를 치는 모습은 그야말로 체력훈련을 하듯 힘차다. 그리고 보니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데 군살 하나 없이 탄탄하다. 오른손으로도 치고 왼손으로 치고 골고루 팽이를 친다.


지나가던 사람이 채찍을 들고 때리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처음 하는 것이라 어설퍼 보인다. 또 다른 사람이 나서 본다. 비록 나무로 만들긴 했지만 크기가 큰 팽이를 혼자서 계속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이 무척 힘들어 보인다. 주변에 있는 사람 누구라도 원하면 언제든지 채찍을 들고 체력훈련을 할 수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빠르게 돌아가는 팽이 윗면을 보니 눈이 핑핑 돈다. 팽이 밑동도 한치의 흩어짐도 없이 균형을 잘 이루고 있다. 채찍을 휘두르던 아저씨가 갑자기 팽이를 휙 잡아 던진다. 팽이가 몇 걸음 훌쩍 끌려 갔는데도 넘어지지 않고 계속 잘 돌아가고 있다.


사람들이 신기한 듯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관심 있게 바라보니 신이 나서 다시 팽이를 돌리기 시작한다.


자슈러우 앞 팽이(왼쪽 위), 멋진 야경(왼쪽 아래), 어둠 속 팽이(오른쪽)


점점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자슈러우에도 조명이 하나 둘 켜진다. 이 누각은 1597년 명나라 때 처음 세워진 것이다. 시내를 흐르는 하천인 난밍허(南明河) 한가운데에 봉긋하게 서 있다. 자슈러우는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호수 같은 하천을 끼고 다리와 누각 그리고 찻집으로 나누어진다.


팽이를 돌리던 광장 옆으로 돌과 나무가 혼합된 패방부터 한비팅(涵碧亭)이 있는 다리인 푸위챠오(浮玉橋)가 먼저 나온다. 정말 푸른 옥돌을 머금고 있는 듯한 정자가 있으니 옥돌이 떠 있는 다리라는 이름도 너무나 잘 어울린다. 다리 한가운데 정자가 있는 것도 드물다.


다리를 지나면 누각의 모습이 보인다. 이 누각은 밤이 되면 그 분위기가 시적 감수성을 자극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누각 처마에 달린 조명에서 뿜어 나오는 불빛은 하천과 하늘 사이에서 더욱 은근한 매력을 풍긴다. 하천 위 다리를 지나면서 한 바퀴 둘러보니 멋진 누각과 달리 좀 부조화인 듯한 시내 빌딩 숲이 보인다.


이 3층 누각은 처마가 셋이고 모서리가 넷인데 이런 구조는 중국 내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높이는 20미터가 넘고 정말 누각이 마음에 와 닿는데 그 모양보다는 멋진 야경 분위기가 서서히 시작되기 때문이다.


꼭대기는 빨간 조명, 처마 사이는 하얀 조명, 그리고 아래 부분은 노란 조명이 서로 잘 조화가 이뤄진 듯 보인다. 게다가 뒤쪽으로 하늘 빛깔이 오후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시간이라 그런지 약간 탁하면서도 짙은 색감이 오히려 조명을 더욱 빛나게 해준다.


밤이 어두워지자 광장에 다시 팽이가 등장한다. 이번에는 장난감 팽이. 초저녁에 커다란 팽이를 때리며 사람들을 끌어 모으던 광장에는 빛을 내는 팽이들이 돌아가는 모습으로 더욱 시끄럽다.


붉고 파랗고 노랗고, 천연색의 빛깔을 뿜으면서 돈다. 빠르게 돌수록 더욱 그 빛이 진하다. 팽이를 중심으로 큰 원을 그리니 더욱 색다르다. 팽이 여러 개가 함께 돌면 약간 혼란스럽지만 그 형형색색 빛깔이 황홀하다.


6)   구이양 貴陽 만돌린 연주 모리화 들으며 누각의 야경에 취해


구이양 자슈러우 안에는 낭만적인 분위기의 찻집이 있다. 이름까지 멋져서 비취색 장미 정원인 추이웨이위엔(翠薇園)이다. 밤이면 사람들이 전통악기 연주를 들으며 차를 마신다. 명나라 청나라 시대에는 시인들의 쉼터였다.


홍등이 걸려 있고 조명이 환한 찻집으로 들어서니 정원 귀퉁이에 정자에도 홍등이 예쁘게 걸려 있다. 새파랗게 물든 밤 하늘이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답다. 어떻게 저런 밤 하늘이 생기는 지 모르겠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왼쪽으로 차위엔(茶苑)이 보인다.


둥근 모양의 입구에 하얀 빛이 강해 연하게 붉은 홍등이 몇 개 걸려 있다. 홍등 하나는 고장이 났는지 불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직원이 전통복장인 치파오(旗袍)를 입은 여직원이 문 앞을 지키고 있다.


찻집은 아주 조용하고 인기척이 별로 없다. 아담한 정원 마당에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초록색 조명을 받아 자태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자세히 보니 대나무 잎이 뾰족하게 조명을 받아 아주 예뻐 보인다. 건물에 걸린 홍등이 밤 풍경을 더욱 은은하게 수놓고 있다. 한참 동안 찻집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차 마시러 오는 손님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한다.


마당에 드디어 한 아가씨가 분위기를 돋우려고 연주를 시작한다. 만돌린, 즉 피파(琵琶)를 켜고 있다. 처음에는 몇 번 연습을 하는 듯 하더니 '모리화'(茉莉花)라는 곡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아주 마음이 편안해지며 손가락의 튕김으로 우러나는 아름다운 곡조를 들으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보통 서너 명이 와서 주문하면 좋은데 잔으로 파는 곳이 아니니 혼자 마시기에 부담스러운 차 값이 안타까울 뿐이다. 풍성한 리듬으로 상쾌한 정서를 담은 만돌린 음색만은 시인이 되고도 남을 만큼 충분하다.


모리화는 중국 남부지방에 많이 피는 식물로 차로도 마시며 순백의 꽃잎이 예뻐 관상용으로도 재배한다. 노래 모리화는 중국 지방민가인데 장쑤 일대에서 전래되던 것이다. 비록 모리화 차는 마시지 못했지만 연주를 들으니 차 마신 것만큼 마음이 산뜻하다.


만돌린(왼쪽), 자슈러우의 찻집(오른쪽 위), 찻집에서 만난 아이(오른쪽 아래)


다시 또 다른 찻집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중국 전통악기인 구정(古箏) 소리가 들린다. 아름답고 편안한 야경을 벗 삼아 연주하고 있는데 만돌린이 음색이 높고 강한데 비해 구정은 가야금처럼 좀더 깊은 맛을 풍긴다.


구정은 기원전 진나라 시대부터 연주되던 현악기이니 역사가 오래됐다. 사마천의 <사기>에도 기록이 나온다. 다양한 형태로 전해오다가 지금은 21줄의 현으로 보편화됐다. 구정을 켜는 아가씨는 외국인이 악기 이름을 아는 체 하니 아주 놀라는 눈치. 베이징에서 공부할 때 많이 본 악기라고 했더니 현을 켜 보이며 소리를 들려준다. 그러더니 곡 하나를 연주해주겠다고 한다. 제목은 모르겠지만 옆에서 한참 들으니 가야금 소리 같기도 하고 만돌린 소리 같기도 하면서도 분명 구정 나름의 자기 음색이 있는 것도 같다.


멋진 야경 속에서 현악기 소리에 푹 빠져 있는데 엄마 아빠를 따라 온 한 꼬마아이가 나타났다. 재롱 피고 춤 추는데 아주 귀엽고 똘똘하다. 처음에 낯을 가리는지 자꾸 도망 다니더니 좀 친해지니 함께 장난도 치려고 한다.


춤 춰 보라고 했더니 춤을 추지 않고 연신 포즈만 잡고 있다. 그러다가 구정 반주가 크게 들리니 갑자기 제멋대로 마구 춤을 추기 시작한다. 자기도 쑥스러운 듯 카메라를 막고 혼자 왔다 갔다 하더니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웃는다.


찻집 구석구석 어둠 속 진한 조명 때문에 눈이 다소 피로하다. 처음에는 아~ 정말 멋지구나 하다가 금방 지루해진다니 사람의 마음이 좀 간사하긴 하다.


밖으로 나오니 멀리 도심의 빌딩들도 휘황찬란하다. 호수 위에 불빛이 반사돼 더욱 화려한 분위기다. 호수 위에 있는 노천식당에서는 사람들이 어울려 술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뒤돌아보니 누각과 찻집이 연이어 보인다. 조명을 타고 은은하게 들려오는 연주소리가 귓전에 아직 남았나 보다. 만돌린과 구정 소리가 구분될 정도로 점점 중국 소리에 익숙해져 간다. 구이양의 정취를 그대로 담아 밤 기차를 타러 간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