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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저우 소수민족 취재기 ⑤] 싼두에서 인자이까지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갈 일이 걱정이다. 도로 사정, 교통편이 불확실해 미리 예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역으로 가서 기차표를 알아볼 생각이다. 복잡한 거리에서 삼륜차 하나를 잡는다. 어두워서 미처 몰랐는데 운전사가 아이를 안고 있다. 아빠 손 따라 핸들을 잡고 있는 아이가 불안해 보이기도. 뒷자리에 옹기종기 붙어 앉아, 아이 보느라 찻길 보느라 정신이 없다.

 구이딩에서 탄 삼륜차. 아이를 운전석에 태우고 운전한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10여 분만에 무사히 도착했다. 역 광장에는 저녁을 먹고 나온주민들이 한바탕 춤을 추고 있다. 중국 대부분 도시는 매일 밤, 무대가 열린다. 이 도시도 예외가 아니다. 대원들이 춤사위에 흥 돋우는 사이, 매표소로 한걸음에 달려간다. 

 

구이딩은 특급열차(特快)가 정차하지 않는다. 베이징으로 가는 기차에 타려면 구이양(貴陽)으로 가야 한다. 그나마 표도 없다. 어찌할 것인가? 그러는 사이 대원들이 다 모인다.비행기를 타려면 구이양으로 가야 하고 그나마 표가 있을지도 미지수다.

 

다시 한번 확인하니 일반열차 콰이처(快車)가 있기는 한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못 탈 거야"라고 한다. K508 열차로 30~40시간 걸리고, 도착 시각이 "디싼톈싼뎬반(第三天三點半)"이란다. 셋째날 3시 반 도착인 것이다. 입석 타고 침대 칸으로 바꿀 수도 있지만, 혼자면 모를까 4명이라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다른 대안이 없어 "취재 고생 각오하고 온 거니 마음껏 기차 한 번 타보자"고 하니, 대원들은 전쟁터의 군인처럼 딴말이 없다. 일단 표를 예매하니 마음이 놓인다. 

 

오늘 목적지 인자이(音寨)까지는 불과 20킬로미터. 기차역 택시운전사에게 인자이에 숙소가 있다는 말을 듣고 택시에 탄다. 가깝기에 요금 쌀 거라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뒤 트렁크에 배낭을 넣고 출발하자마자 "낮에는 60위안, 밤이라 70위안"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늘 꼼꼼히 체크헀어야 했는데 깜박한 것이다. 몇십 위안 더 주는 셈이다. 중국에서는 '졸면 죽는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가보다.

 

택시는 시내를 벗어나 산길로 달린다.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보니 한 시간은 걸린단다. '또 비포장 도로인가'라는 걱정이 든다. 다행히 도로는 비교적 양호했다. 그래도 밤 길이고, 산길이라 험난하게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운전사가 "산길이 무섭지 않으냐"고 묻는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뒷자리에 앉은 대원들은 조용했다. 아무리 밤 산길이라 해도 차 하나 다니지 않으니 섬뜩했던 것.

 

30분 정도 가더니 다리를 건넜다. 마을이 나타나고 거리는 온통 개고기 식당이다. '방 구하고 저 식당으로 가야지'라고 생각하던 찰나, 마을을 휙 지나가 버린다. 마을을 벗어나더니 다시 어두운 길로 접어들고 벌판을 내달린다. 한참을 내달리던 중 우리 택시는 멈췄다. 도로공사로 길이 막힌 탓이다.

 

'도로공사를 하면 한다고 팻말을 세워야지, 참 이상한 나라야'라고 생각할 틈도 없이 다시 차를 되돌린다. 개고기 식당을 지나고 다시 다리를 건너더니 우회전한다. 그리고 옛길로 접어든다. 차가 마주 오면 당최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아주 깜깜한 길이다. 간혹 마을이 나타나서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가 달린 길이 공포의 모노레일 같다.

 부이족 마을 인자이에 도착하자마자 길거리 꼬치 집으로 갔다.
주인집 딸의 남자친구는 집에서 담근 술을 공짜로 내어줬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드디어 부이족 마을 인자이로 들어선다. 남자들 대여섯 명이 웅성거리며 서 있는 호텔, 개 한 마리 혼자 멍멍 짓고 있는 여관. 운전사는 두 곳 모두 그나마 외국인이 잘만 하다고 생각했나보다. 근데 우리가 구멍가게와 식당을 겸한 민박집으로 가자니 고개를 갸우뚱한다.우리를 어떻게 보고…. 오지면 더 좋고, 시설이 열악할수록 추억이 깊어지는 대원들 아니었던가. 시내로 돌아가자는 운전사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내일 전화할 테니 데리러 오라"는 말만 남긴채 운전사를 보내버렸다.

 

짐 풀고 바로 '술 모드'로 돌변, 숙소 앞 길가에 익숙한 냄새가 피어 오르는 곳으로 달려간다. 고기, 채소, 생선, 조개 등 우리는 꽂을 수 있는 것은 다 먹을 수 있었다. 이런 다짐은 변하지 않았다. 꼬치를 마구 주문하고 날씨가 추워 식당 안에 자리를 잡았다. 

 

술을 주문하려는데 종업원이 "한국사람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인사한다. 알고 보니 도시에서 공부한 한족 청년이다. "한족이 왜 소수민족 마을에 있냐"고 물어보니 "여자친구가 부이족인데 이 식당 주인의 딸"이란다. 술 사러 가게로 같이 갔다. 마땅한 술이 없어 고민하고 서 있는데, "가게에서 담근 술이 있다"며 서비스로 준다.이렇게 착한 친구가 이런 산골 구석에 있다니 흐뭇하다.

  소수민족 부이족 마을 전경. 벽돌지붕과 하얀 색의 산장이나 벽이 인상적이다.
관음보살을 섬기는 마을답게 뒷산 이름은 관음산이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인자이는 부이족이 600여 년 전부터 농경생활을 해오던 마을이다. 부이족은 기원전 전국시대 남방의 부족국가인 야랑국()의 주체였다. 혈통은 광시의 좡족(壯族)  10여 개 소수민족과 함께 백월(百越)계통이다. 부이족의 언어로 부()는 사람()이란 뜻이며 이()는 월()의 변천이다.

 

아침, 눈을 떠 2층 난간에 서니 농촌 풍경이 익숙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장화 신고 물소를 끌고 가는 아저씨, 짐 짊어지고 가는 아주머니. 일찍부터 농사 일로 바쁜 동네의 일상이 자르르 펼쳐진다. 10여 명 앉을 만한 작은 식당에서 아침 국수를 먹는다. 부이족은 검정과 파랑, 하얀 옷을 주로 입는 소수민족이다연파랑 모자를 쓰고 다니는 아주머니, 연륜 깊은 주름이 순박한 할머니도 눈인사를 건넨다.

  소수민족 부이족 마을 인자이에서 만난 할머니. 주름진 얼굴이 온화하다. 
부이족은 연파랑 모자를 즐겨 쓴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밭 사잇길을 지나 강으로 나간다
. 일꾼 하나를 강물에 집어 던지며 장난을 치고 있다. 맑은 강물을 사이에 두고 행사무대를 설치하는 중이다. 전국 무림대회가 열리나 보다. 잠수복을 입고 물 속으로 들어가 철골을 박는다. 잔잔한 강줄기,거울처럼 나무가 가라 앉았고 카메라 시선에 맞춰 볏짚도 쌓았다.

 

멀리 민가가 보인다. 벽돌 지붕이 낯익다. 사이사이로 하얀 색칠을 입힌 모습이 독특하다. 산처럼 생기고, 시옷()자 모양의 산장(山牆)에도 하얀 눈이 내려앉은 듯하다. 밭을 가로질러 마을로 들어간다


120여 가구가 나란히 늘어선 마을이다.뒷산을 따라 옛 가옥이 자리 잡았고 앞길따라 현대식 건물이 줄 지어 서있다.배산임수를 선호하는지 해뜨는 동쪽을 향해 있다.

 

눈앞에 몸집이 큰 누렁소가 씩씩거린다.쟁기 잡고 소를 채찍질하는 남편 옆에서 부인은 곡괭이 질로 밭을 고르고 있다.키 작은 남편은 소 뒤에 서있다. 그래서 그런지 더 작아 보인다. 파랗고 검은 옷에 연파랑 모자를 쓴 부인은 더 커 보인다. 땅 냄새 맡으며 노동하는 부부가 정겹다.

 

그들은 추수 끝난 밭을 갈아엎고 있다. 사계절이 온화하고 일조량과 강수량이 풍부한 마을. 해발 1천 미터, 연 평균 기온 16℃인 이곳에서 농부들은 땅을 재산 삼아 곡식을 일구며 산다. 긴 호흡으로 부부의 밭갈이를 바라보니 우리네 농부들의 삶까지 푸르른 상상이 돼 떠오른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아침부터 농사를 지으러 나가나 보다. 집집마다 아이들이나 개들만 남아 있다. 옥수수를 묶어 걸어 둔 집에 개 두 마리가 짓고 있다. 낯선 사람 앞에서 잠시 목청껏 용기를 내보지만 금세 사그라진다. 우리 안에는 소와 돼지가 나란히 동거 중이다. 돼지는 연신 먹을 것을 찾아 고개를 박고 있고, 소는 크고 맑은 눈을 들어 우리를 바라본다.

  구이딩 인자이 부이족 마을에서 밭 갈고 있는 부부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소수민족 부이족 마을 인자이의 농가에서 본 우리. 소와 돼지가 나란히 함께 살고 있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당나라 시대 장군인 진숙보(秦叔寶) 울지공(尉遲恭)의 초상화가 문마다 붙어 있다. 이들은 중국 민간에서 문을 지키는 신으로 여겨진다. 문에는 분필로 '저녁에 모여 식사하자'고 적혀있다. 모두 밖으로 나갔으니 돌아오자마자 바로 보라는 것이다. '8:30', 다녀간 시간도 적혀있다.

 

벽돌 기왓집은 대체로 3칸 구조로 이뤄져있다. 가운데 본채, 옆으로 별채가 하나씩 연결돼있다. 본채 문 위에 거울 하나가 걸려 있다. 중국 남방지방에 두루 퍼져 있는 거울이다. 대문이나 창문 위로 들어오는 귀신이 자기 모습을 보고 놀라 달아나라는 뜻이다. 중국 여행 중에 흔히 볼 수 있는 재미난 풍습이다.

 

옆집으로 간다. 대문 위에 태극과 팔괘가 그려져 있다. 둥근 태극무늬 위에 동그란 거울이 걸려 있다. 귀신이 달빛에 자기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본다는 생각에 걸어놓은 것. 이런 거울을 태극·팔괘 위에 겹쳐두다니 참 유쾌한 주인인가 보다.

 

거울 아래에도 낯익은 그림이 보인다. 스펀지를 넣은 물감 붓으로 이름이나 글자를 그리는 융밍즈줘화(用名字作畵). 보통 꽃과 나비, 나무, , 해 등 자연을 변형해 알록달록 다채로운 색깔을 그려 넣었다. 아마도 '조전비방(祖傳秘方)'을 그린 것 같은데 약간 촌스럽다.어쩌면 농촌에 어울릴지도 모를 일이다. 민족 정서가 느껴지는 대문이다.

  부이족 마을의 집 대문에는 재미난 정보가 많다.
태극과 팔괘, 귀신 쫓는 거울, 글자 그림 그리고 마오쩌둥의 글을 써놓았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마름모꼴 나무 기둥이 양쪽에 박혀 있고, 동그랗게 음각한 원형 안에 팔괘 중 건곤이 보인다. 이렇듯 부이족은 집집마다 '건곤' 도안을 새겨 길흉화복을 염두한다. 베이징의 사합원 대문 앞에도 이와 비슷한 것이 있다. 후두이(戶對)라 부르는데, 사회적 신분이나 문관, 무관을 표시하는 장치다. 그저 원형이나 육각형, 방형일 뿐이지 팔괘와 같은 무늬를 새기진 않는다.

 

거울 위에는 붓으로 쓴 하얀 글씨가 있다. 가만히 읽어보니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보던 이미지가 싹 바뀌었다. '마오쩌둥사상만세(毛澤東思想萬歲)'에 이어 한 칸에 백오십 글자씩3칸이나 써놓은 것이다. 중앙집권적 공산국가 아래 살아가는 '입장'을 벗어나기 힘든 모양이다. 어쩌면가난한 농민이 마오쩌둥의 '농업적 사회주의 건설'에 희망을 담아 '넉넉하게 살고픈 마음'을 새긴 것도 같다.


부이족은 자연숭배, 혹은 도교나 불교를 믿는다태극과 팔괘 외에도 마을 뒷산은 관음산이라 불린단다. 또 마을 이름의 인()은 관음보살이 왕림한 마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다른 집으로 들어가니 한 아저씨가 면을 끓이고 있었다. 공심면(空心面)이라고 한다. 국수 이름이 '빈 마음'이라니 참으로 불교스럽다. 부뚜막이 있고 땔감으로 밥을 지은 흔적도 볼 수 있다.

 

유명인이 쓴 듯한 '형제농가락(兄弟農家樂)' 현판 옆에 앉은 할머니가 홀로 햇빛을 쬐고 있다. 무심한 표정이라 말 걸기가 어렵다. 옆에서 사진을 찍어도 무덤덤하다. 길거리에 앉아 파를 다듬고 있는 할머니는 쑥스럽다. 아이를 안고가는 아주머니를 따라가 본다. 아이는 자꾸 딴짓을 하고, 아주머니는 이를 드러내며 밝게 웃는다.

  구이저우 부이족 마을 인자이에서 만난 철물점 청년.
너무 잘 생겨서 '장동건 보다 낫네'라 하니 대원들 모두 맞다고 했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철물점 가게 앞에 빨강 셔츠와 파란 점퍼를 입은 청년이 있다. 약간 장발에 진한 눈썹, 쌍꺼풀 진 눈, 오뚝한 코, 송송 자란 코털과 반듯한 입까지…. 인상적이었다. 솔직히 굉장히 잘 생겼다. "장동건 보다 낫다, 영화배우 해도 되겠다"고 하니, 대원들 모두 동의할 정도다. 철물점 청년이 이렇게 잘 생겨도 되는 걸까. 한 대원은 그 청년과 팔짱까지 끼고 행복하게 웃는다.

 

어제 타고 온 택시를 부른다. 버스 터미널에 내려 "낮에는 60위안 맞지?"라고 물으니 두말없이 60위안을 받았다. 구이저우(貴州)의 성도 구이양까지는 1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역에 짐을 맡기고 대원들을 이끌고 자슈러우(甲秀)로 가서 한가로운 오후를 즐길 참이다. 2007년 찾았던 곳인데, 야경이 아름다운 호반 누각이자 찻집이다.

 

구이양은 지난 9, 9회 전국 소수민족 전통체육대회가 열린 곳이다. 호수를 따라 체육대회 당시의 사진들이 전시돼 있었다. 사진 속에는 각 소수민족의 전통놀이들이 담겨 있었다. 한족을 포함해 모두 56개 민족이 있는 나라인지라 전시 사진도 아주 많다. 골고루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리가 둘러봤던 먀오족, 수이족, 부이족, 둥족 앞에서 한 번 더 발길이 멈춘다. 각 민족 아가씨 56명의 사진도 있다. 모두 민족 복장을 하고 있는데 참 예쁘다.


야경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누각에서 머무르며 오후를 보냈다. 저녁 8시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러 간다.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한참 가야 하니 컵라면, , 과일까지 엄청 많이 샀다. 그런데 기차에 오르자마자 기겁할 일이 생겼다.


중국 기차는 각 칸마다 차장이 함께 탄다. "언제 도착하느냐"고 물으니 "디싼텐샤우싼덴반(第三天下午三點半)"이란다. '3시 반'이라더니 그게 새벽이 아니라 오후였다. ! 그러면 무려 43시간이 걸리는 셈이다. 


이걸 대원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나 고민한다. 망설이다가 "오후라는데"라고 했더니 모두 웃었다. 이 기록은 다시 중국 여행을 하더라도 깨지기 힘들 것 같다.

  구이양에서 베이징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무려 43시간 28분 걸렸다.
비 오는 창 밖으로 꽃과 나무가 빠르게 지나간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하여간 기차는 구이양을 출발해 서북으로 향한다. 충칭, 중원지방을 다 훑어가는 열차다.

 

덕분에 지내온 시간들을 다시 되새기며 서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대원의 노트 위에 우리의 취재 경로를 그린다. 비록 며칠 전 기억이지만 다시 써놓고 보니 더욱 생생하다. 지나온 자취가 새록새록 흥미롭다. 어떻게하면 좋은 사진과 멋진 영상으로 소수민족 영상을 만들지 회의도 했다. 모두 수고했다고 서로 격려한다.

 

"여럿이 오래 길을 떠나면

그립기도 하거나, 기억에도 없던

다 쓴 필름이

책갈피처럼 넘어간다.

 

가야 하지만

되돌지 않는 운명처럼

길 위에는 늘

사진 같은 이야기가 넘어온다."

 

기나긴 기차여행을 하며 철 없던 시절 그 느낌대로 시를 쓴다. 제목은 <길>. 함께 여행한 사진작가의 책 속에 아날로그 필름이 꽂혀 있다. 책갈피로 쓰이는 오래된 필름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다. 여행에는 사진이 남고, 길 위에는 이야기가 싹튼다. 소수민족 취재여행은 그렇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베이징 서역에 단 1분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도착한다. 43시간 28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은 기차여행이었다. 달리는 차창처럼 쉼없이 걸었던 취재여행이다. 소수민족에게 스폰지처럼 빨렸던 감수성이 아침 저녁으로 흔들거린 기차 침대 칸을 박차고 나왔다. '언제 또 다시 떠날까'라고 생각하니 행복한 미소를 숨기기 어렵다. 참 좋은 여행이었다. 


  베이징, 창사, 카이리, 시장, 두장, 싼두, 전레이, 구이딩, 구이양으로 이어지는 여행 노선을 노트에 썼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덧붙이는 글 | * 중국 소수민족 프로젝트 취재팀은 2011년 10월 28일부터 1주일 동안 취재기자, 연출감독, 사진작가, 이미지 디자이너 4명으로 구성, 구이저우 동남부와 남부 일대를 취재했습니다. 여행 다큐멘터리 제작을 목표로 자비로 이뤄졌으며 5회에 걸쳐 취재 스토리가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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