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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이저우 오지 소수민족 마을에서의 하루 ⓒ 소수민족 취재팀


전레이춘 소수민족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둠 속에서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맨바닥 장작불에 솥이 걸려 있다. 따로 부뚜막이 없는 부엌 대신 훠탕(火塘)이라 부르는 공간이다. 불쏘시개를 부리며 국을 끓이고 있는 여자아이가 벌떡 일어선다.


대청마루에 짐을 풀고 '너 정말 귀엽다' 하며 친한 척 해본다. 수줍어하는 아이, 샤오옌즈(小燕子)다. 10살이니 아직 '어린 제비'라는 뜻. 애칭이다. 제비가 엄마 심부름을 하느라 집안 구석구석을 바쁘게 돌아다닌다.


구이저우 소수민족은 대체로 나무로 만든 3층 구조의 집 댜오쟈오러우(吊腳樓)에서 생활한다. 2층에 침실과 거실이 있고 3층은 농기구와 농산물을 두는 창고다. 1층은 주로 동물들이 생활하고 2층 문으로 오르는 길 옆에 돼지우리가 있다.


넓은 마루에 낮은 원탁 밥상과 간이 의자가 있다. 문턱을 사이에 두고 훠탕과 연결된다. 훠탕과 바깥 문 사이에는 부엌 살림들이 놓여 있다. 베란다는 취재기사 2편에서 말했듯 메이런카오(美人靠)라 불린다.


손님 위해 정성들여 요리한 음식들... "삼촌, 희망 없다는 말이 어딨어요"


  구이저우 오지 소수민족 마을에서의 하루 ⓒ 소수민족 취재팀


제비네 집에도 바로 옆에 거실 쪽으로 직조기가 놓여있다. 빛이 잘 들어와 꽃처럼 예쁘다는 띠인 화다이(花帶) 장식을 만들기도 하고 화장도 하는 곳이다. 바깥 아래를 지나는 총각과 소통하기도 한다는 낭만적인 이름이 붙었다. 메이런카오로 통하는 옆 계단으로 올라온 제비 친구들 10여 명이 모여들었다. 사진기 앞에서 애교 부리는 아이도 있고 피하는 아이도 있다. 외국인이 왔다는 소식이 순식간에 마을에 퍼졌으니 궁금한 것이다.


잠시 후 옆집 사는 제비 삼촌이 왔다. 엄마는 소수민족 말만 해서 약간 서먹했는데 다행히 표준어를 쓰니 말이 통한다. 제비 아빠가 아직 귀가하지 않아 손님 접대를 위해 온 것이다. 훠탕에 앉더니 말린 고추를 작대기에 꿰 불에 굽는다. 우리처럼 고추 가루를 만들지 않는다. 그냥 말린 고추를 요리에 넣어 먹지만 이렇게 불에 구워 먹기도 한다. 신기하다고 하니 추울 때 오한이 있거나 감기에도 좋다고 한다. 제비가 약간 감기 기운이 있다며 굽고 있는 것이다. 세상과 멀리 동떨어져 살던 사람들의 생활의 지혜가 담긴 민간요법이다.


시골 농사꾼처럼 순박한 성품인데 조금 말이 많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 여긴 정말 가난한 동네다. 희망도 없고 발전도 없다는 하소연조차 스스럼없다. 마치 보고할 의무가 있던 것처럼. 처음 만난 이방인에게 정다운 넋두리를 할 만큼 순수하다. 더 들어보니 그럴 만도 하다. 일하다 다쳤다며 잘려나간 왼쪽 손마디를 보여준다. 나이를 들어보니 막내 동생 나이다. 그러자 그가 '형이네' 하며 웃는다.


  구이저우 오지 소수민족 마을에서의 하루


  구이저우 오지 소수민족 마을에서의 하루 ⓒ 소수민족 취재팀


통째로 얼린 돼지고기를 가져오더니 삼겹살처럼 얇게 썬다. 손님이 오면 돼지나 닭을 내어 요리해 대접하는 전통이 있다고 주저리주저리 자랑한다. 제비 엄마는 훠탕에 솥을 새로 걸고 어린 죽순을 가져다 데치더니 제비를 시켜 국을 끓인다. 쌀을 씻더니 밥도 새로 한다. 제비는 한마디 없이 웃기만 할 뿐 부지런히 제 할 일을 한다. 10살 아이가 군말 없이 어찌나 일을 척척 잘 하는지 참 예쁜 제비다. 삼촌에게 물어 제비 이름을 알았다. '어린 제비'라 하자 눈을 흘기며 마구 때리며 장난치는 모양도 정겹다.


삼겹살 볶고 고추와 야채를 넣고 한참 양념을 하더니 요리 완성이다. 삼겹살 볶음, 그리고 죽순으로 끓인 국, 새로한 밥을 차린다. 제비는 손님들 밥을 뜨더니 공손히 배달한다. 삼촌은 제비 집으로 들어가더니 큰 대접에 술을 담아온다. 집에서 곡식으로 담근 술이라 한다. 


나무로 만든 긴 젓가락을 모두 들었다. 손님 먼저 맛 보라고 한다. 돼지야 동네마다 다 비슷할 터이지만 재료와 양념에 따라 그 맛이 똑같지는 않다. 쫄깃한 고기가 고추와 어우러져 다소 맵고 향긋하다. 죽순 국을 한 술 뜨니 된장국 맛과 비슷하다. 된장이 들어간 것도 아닌데 절묘하다. 대원들은 연신 신기한 맛에 놀라는 눈치다.


그리고, 한 잔 털어 넣자 꿀맛 같은 술. 삼촌은 '깐(干)'을 재촉한다. 계속 술잔을 비우라는 말이 때마다 반갑다. 희한하게 입에 짝 달라붙는다. 찹쌀에다 여러 곡식을 함께 넣어 만들었다는데 약간 달짝지근하다. 고기와 국, 밥을 허겁지겁 먹는다. 젓가락 질만큼 술잔도 비운다. 한 대접 다 비우니 눈치 빠르게 제비가 창고로 간다. 이번에는 맛과 향이 살짝 다른 술을 내온다. 달지 않고 솔 향이 조금 난다. 오히려 달지 않고 술술 잘 넘어간다.


 제비 엄마가 직조기 앞에 앉아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 ⓒ 소수민족 취재팀

 

삼촌은 조금 전 말투로 밥상 위에서 다시 투덜거리기 시작이다. 대원들은 무슨 말인지 계속 묻는다. 미리 한번 듣지 않았으면 영 통역이 어려울 뻔 했다. 대원들도 애잔한 마음이 드나 보다. 그동안 말 없이 조용하던 제비는 삼촌 이야기가 우스운 듯, '희망, 발전이 없다'는 말에 '그런 말이 어디 있냐?'면서 호호 웃는다. 드디어 말문이 터진 제비 모습이 너무 예뻐 우리도 함께 웃는다. 웃음꽃 만발이다. 대원들은 금세 삼촌의 동생이 됐다.


어느덧 배도 부르고 취기가 오르자 제비 엄마는 직조(織造) 기기 앞에 앉는다. 노동 때 묻은 손이지만 철컥철컥 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니 촘촘히 무늬가 생긴다. 자급자족이 몸에 익었으니 옷감 만드는 일이 그저 생활이다. 이미 검증된 먀오족 솜씨는 꽤 가치가 있는데 팔기도 하는지 묻자 그저 웃는다. 가내수공업조차 할 형편이 안 되는데 괜히 물었다.


어느새 시간이 꽤 흘렀다. 제비가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디자이너인 대원이 제비 얼굴을 그려준다며 따라 들어간다. 문을 여니 왼쪽에 침대가 놓여있고 움직일 공간을 빼면 다 창고로 쓴다. 백열등이 켜진 방, 조명 아래에서 한참 동안 말 없이 조용하다. 자기 얼굴을 그려준다니 참 기분 좋았나 보다. 노트에 그린 제비 얼굴은 다소 통통한 느낌이다. 초상화를 받고 엄마에게 자랑하며 환한 미소가 담긴다.


  우리 대원이 그려준 제비의 얼굴 ⓒ 소수민족 취재팀


오후 8시가 넘자 갑자기 어른 셋이 들어왔다. 제비 아빠와 동네 아저씨들이다. 다시 술판이 벌어졌다. 제비 아빠는 작업복을 입고 있는데 맏형 같기도 하고 온순한 보스 같아 보인다. 술도 두주불사, 이미 전작이 있다 보니 점점 맥을 못출 판이다. 대화가 더 깊어지는데다 언제 또 만날지 모를 인연이니 술잔을 마다하기 어렵다.


농사 이야기도 하고 소수민족 정부정책에 대해 약간 불만도 내비친다. 조상들 대대로 이어온 고향산천을 벗어나지 않고 살아가는,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의 질곡도 느껴진다.


처음 보는 한국사람이자 말도 좀 통하고 취재여행으로 이 먼 곳까지 왔다니 마음 속 깊이 문을 연다. 우리는 친구이자 형제가 된다. 안주를 입에 서로 넣어주기도 하고 함께 사진도 찍는다. 꼭 사진을 보내 달라며 주소와 연락처도 적는다. 제비 아빠 이름은 핑리지(平立基). 사진도 보내주고 언제일지는 몰라도 꼭 다시 오겠다는 약속도 한다. 그저 술 기운만은 아니다. 어쩌면 요술램프가 반짝이는 마법의 방인지도 모른다.


분위기에 들떠 제비네 식구들 환대에 기분 좋아 넙죽넙죽 마신 술이 좀 많다. 살짝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메이런카오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옆집으로 간다. 침대 2개에 이 감독과 나란히 누워 세상 모르고 곯아 떨어졌다. 알라딘 나라로 꿈결처럼 날아간 듯하다. 산 위 성(城)에 불꽃이 터지고 마술에 빠진 새들이 날아다니는 세상을 다녀온 듯도 하다.


오지마을 푸근한 정 느낀 하룻밤... "제비야 우리 다시 만나자"


▲ 잊지 못할 하루밤을 보낸 후 오지 소수민족 마을의 아침 ⓒ 소수민족 취재팀


▲ 잊지 못할 하루밤을 보낸 후 오지 소수민족 마을의 아침 ⓒ 소수민족 취재팀
 

아침이 밝았다. 어느새 제비는 학교 갔고 엄마 아빠는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조용히 밖으로 나와 마을을 둘러본다. 골목길을 차지하고 있는 오리와 개도 마을사람들처럼 온순하다. 옆으로 가도 그저 본체만체 신경 쓰지 않는다.


문 밖에 혼자 나온 꼬마가 낯선 사람 모습을 빤히 쳐다본다. '안녕?' 하니, 혀를 쏙 내밀더니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간다. 기와지붕은 아침 햇살을 받아 더 은은하다. 담벼락으로 올라탄 호박줄기 아래로 토종 닭도 모이를 찾고 있다.


숙취에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작별인사를 한다. 어떻게든 숙박한 은혜를 갚아야 하니 대원들이랑 상의했다. 1인당 100위엔, '그래 충분한 보은일 거야' 하는 마음으로 400위엔을 제비 아빠에게 '고맙다'는 말로 건넸다. 뜻밖에도 받지 않으려 한다. 시골사람 인사치레로는 너무 진지하다. 한참 손사래 치더니 반반 다시 나누자고 한다. 대원 4명의 성의이니 받아야 한다며 지지 않았다. 제비를 못 보고 가는 게 서운하지만 인연이 있으면 또 보리라 손 꼭 잡고 다짐한다.


하룻밤 오지 마을의 포근한 냄새를 배낭에 가득 담고 마을을 걸어 나온다. 자료에 의하면 전레이춘(怎雷村)은 청나라 강희제 때 만들어졌다. 수이족과 먀오족이 서로의 언어를 알고 소통하면서 사이 좋게 사는 마을이다. 4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뤄졌는데 제비네 집 주소가 2조(组)이니 '촌' 아래 '조'라는 행정단위까지 있는 독특한 마을이다. 계단 밭 아래로도 마을 지붕들이 많이 보인다.


어제 우리를 데려다 준 기사에게 전화했다. 1시간 더 시간이 남았으니 천천히 마을을 둘러보기에 충분하다. 귀를 쫑긋 세우고 앞발을 모은 채 하얀 개 한 마리가 환송한다. 이게 어디서 온 사람인지? 꼬마들도 누굴까? 빤히 쳐다 본다. 멜대를 어깨에 맨 채 계단 밭에서 올라오는 아주머니도 있다.


벌써 학교수업이 끝났는지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빨간 리본을 단 아이 셋이 나란히 서서 친근하게 장난 친다. 흙 묻은 운동화, 빛 바랜 잠바와 바지를 입었지만 동그란 얼굴이 밉상이 아니다. 얄미운 개구쟁이 같지만 순박하다.


고갯길을 돌아가니 아이들이 많아진다. 아! 제비가 온다. 길에서 다시 만나니 반갑다. 친구들이랑 어울려 웃으며 지나간다. 해맑은 아침 바람에 훨훨 날아오르는 제비처럼 잽싸게 헤어지고 말았다. 우리는 서운하건만 뭐가 그리도 새침해?


한 아주머니가 길 가운데 고추를 말리고 있다. 빗자루로 길 한 켠을 쓸더니 자루에 담아온 고추를 풀어놓는다. 양지 바른 곳, 햇빛 많이 머금겠다. 바닥에 풀어헤치고 나서 허리를 펴 조용히 웃는다. 일 하느라 사람이 오는지 몰랐던 표정이다.


▲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오지 소수민족 아이들 ⓒ 소수민족 취재팀
 

▲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오지 소수민족 아이들 ⓒ 소수민족 취재팀
 

▲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오지 소수민족 아이들 ⓒ 소수민족 취재팀

▲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오지 소수민족 아이들 ⓒ 소수민족 취재팀
 

꼬마 아이가 울고 있기에 다가가서 사진 찍자니 더 운다. 언니가 안고 가며 '낯가려요' 하며 밝은 미소를 짓는다. 언덕 너머로부터 길고 묵직한 나무를 메고 아주머니가 나타난다. 어깨가 휘청거릴 만도 한데 느릿느릿 능선을 넘어와서는 힘 하나 들지 않는다는 몸짓으로 마을로 들어간다.


능선을 넘으니 오른쪽으로 넓은 공터가 나온다. 자세히 보니 학교다. 아이들이 이곳 학교에서 나온 것이다. 바로 전레이초등학교(怎雷小学)다. 맨땅을 지나 담도 없는 학교 안으로 들어간다. 농구골대가 놓여 있는 운동장 한가운데 아이 둘이 밥을 먹고 있다. 큰 양재기 그릇에 고추가 몇 개 둥둥 떠 있는 국물에 밥을 만 것이다.


아이들은 농구공을 가져오더니 함께 놀자고 한다. 학교에 남아 있던 아이들이 다 모여든다. 할아버지 선생님은 조용히 다가오더니 안에 들어가서 쉬었다 가도 된다며 반가워한다. 대원들이 교실 안으로 들어간 사이 아이들이랑 한데 어울려 농구공을 잡는다. 강원도 태백 두메산골 초등학생 시절 농구부가 생기자 선수였지 않았던가. 그때 폼으로 슛을 해본다. 쪼르륵 따라오며 장난 치는 아이도 있고 멀리서 지켜보다가 공을 잡으면 멋진 슛도 날리는 아이도 있다.


밥을 다 먹은 아이들은 수도에서 도시락을 씻고 이도 닦는다. 여러 개의 수도꼭지 중 하나만 물이 나온다. 차례를 기다리며 많은 아이들이 줄 서 있다. 2층 교실에서 승리의 V자를 그리며 반가운 눈치를 보내는 아이도 있다. 조그맣던 학교가 한바탕 시끄럽고 물씬 커진 느낌이다.


100여 명 됨직한 초등학교다. 한 1년간 한글도 가르치며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일지 모르지만 오지 마을 학교 덕분에 진지해지더니 감상이 스며든다.


문득 '희망학교'가 생각난다. 중국 산간벽지 초등학교를 후원하는 사회공익 프로젝트이다. 1990년대 초 당시 사진작가이던 시에하이룽(解海龍)은 전국 오지를 돌며 다 허물어져 가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를 카메라 앵글에 담았다. '학교에 가고 싶어요'라는 '워야오상쉐(我要上学)' 사진전은 곧바로 희망공정(希望工程)의 상징이 된다. 사진이 사람들 공감을 얻고 행동하게 한 것이다.


가난으로 교육 기회를 잃어버릴 처지의 아이들을 위한 '희망학교'를 세워 주는 일에 너도 나도 앞장선다. 우리 언론에도 간혹 소개된 적이 있고, 어느 대기업은 발 빠르게 광고로 활용됐다. 이장수 축구감독, 이영애 배우도 후원하기도 했다. 다음 전레이 행에는 아이들을 위한 '희망'을 담아오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생각보다 기사가 빨리 왔다. 학교 곳곳을 두루 돌아보는 동안 기사도 함께 놀며 기다린다. 아이들과 헤어지기 아쉽다. 아이들도 먼 발치를 그림자까지 쫓고 있다. 다시 볼 수 있을까? 장담하기 어렵다. 인연이 있기만 바랄 뿐이다. 그래 제비 그리우면 인연 생기겠지 하는 마음 하나 남겨둔다.


터덜거리면서 차가 출발한다. 필름을 거꾸로 돌리듯 자꾸 떠올린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교실과 운동장에서 살갑게 대해준 아이들 눈망울을 그린다. 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한 폭의 산수화 같다. 따뜻한 날씨만큼 온화한 사람들의 시선도 새긴다.


그 무엇보다 낯선 한국인을 무던히 품어 손님대접 해준 제비네 식구들을 잊을 수 없다. 한밤의 램프가 꺼질 줄 모르고 오래오래 밝게 비춘다. 훈훈한 정을 피우던 밤, 하루 만에 형제가 된 우리는 또 다시 만날까. 그건 순전히 우리의 몫이 아닌가?


다시 큰길까지 나가는 시간이 들어올 때보다 훨씬 빠르다. 벌써 제비가 보고 싶다. 훨훨 날아올 수 있다면 날아와라. 그립구나, 제비야!


▲ 산간오지 소수민족 마을 전레이초등학교 교실 ⓒ 소수민족 취재팀 


▲ 산간오지 소수민족 마을 전레이초등학교 교실 ⓒ 소수민족 취재팀 


▲ 산간오지 소수민족 마을 전레이초등학교 교실 ⓒ 소수민족 취재팀 


▲ 산간오지 소수민족 마을 전레이초등학교 교실 ⓒ 소수민족 취재팀 


덧붙이는 글 | * 중국 소수민족 프로젝트 취재팀은 2011년 10월 28일부터 1주일 동안 취재기자, 연출감독, 사진작가, 이미지디자이너 4명으로 구성, 구이저우 동남부와 남부 일대를 취재했습니다. 여행 다큐멘터리 제작을 목표로 자비로 이뤄졌으며 5회에 걸쳐 취재 스토리가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