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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저우 소수민족 취재기 (3)] 시장에서 전레이까지

 시장 먀오족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강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먀오족 마을 첸후먀오자이(千戶苗寨) 한가운데를 흐르는 강, 아침 길은 상쾌하다. 남북으로 흐르는 강을 동서로 이은 누각 다리, 랑챠오(廊橋)도 멋지다. 누각 나무기둥까지 나란히 강물 위에 데칼코마니처럼 펼쳐진다. 이제는 밟지 않아도 되는 돌다리는 졸졸 흐르는 물줄기를 건드리고 있을 뿐이다.

 

오리 몇 마리 헤엄치며 이리저리 왔다 갔다 모이를 찾는다. 한가로운 정경이 참 평화롭다. 새장을 들고 할아버지가 천천히 강으로 내려온다. 흐르는 강물에 새장을 조용히 내려놓는다. 새들도 아침 세수를 하는 것인지, 새장 청소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중국 할아버지들은 이 냐오룽(鸟笼)에 새를 길러 소일한다. 자기 새장을 들고 나와 공원에 걸어놓고 한담을 나누는 일은 오랜 전통이다.

 

강변에 앉은 아낙네는 야채를 다듬는다. 바쁜 손길이 동그란 원으로 물줄기를 그리며 강을 넘어온다. 강물을 머금고 피어난 꽃이 떠나야 하는 취재팀 마음을 자꾸 머물게 한다. 한 아이가 반쯤 몸을 가린 채 문 옆에 기대 서 있다. 우리가 낯설기도 궁금하기도 하다. 가까이 가면 뒤로 가고 멀어지면 또 살짝 나오는 아이가 귀엽다. 눈빛이 선한 아이들 시선이 마을 곳곳에 남아 발길이 영 떨어지지 않는다.


 
 강가에 새장을 청소하러 나온 소수민족 할아버지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강변 길에 학교가 하나 있다. 차량 통제 문에는 아이들 셋이 손잡고 들판에서 뛰노는 모습을 그려놓았다. 뒤편으로 까만 지붕의 집들이 보인다. 낮은 학교 담벼락을 들꽃이 휘감고 있으며 운동장은 아담하다.

 

이주민으로 살아온 역사, 그 흔적이 마을 곳곳에 남아 있다. 농업 공동체를 꾸리고 천년 넘어 살아온 이 마을에는 독특한 신분이 있다.

 

마을 어른인 구짱터우(鼓藏頭)는 조상의 제사를 관장하며 마을 회의를 주재한다. 최고의 권위를 지녔다 해 먀오왕(苗王)이라 불리며 세습한다. 현 구짱터우는 학교 교사이면서 제사 때가 되면 마을 전체를 대표한다.

 

시장(西江) 먀오족 마을의 주업은 농업이다. 칼로 경작하고 불로 종자를 심는다는 다오겅훠중(刀耕火種), 즉 화전은 오랜 전통이다. 그래서 예부터 또 하나의 세습직인 훠루터우(活路頭)가 존재한다. 농업 생산을 조절하고 관리한다. 파종 시기를 정하고 수확을 관리했으니 전문직이자 권위가 있었다.

 

할머니, 초등학생, 닭까지 타는 버스... 45km 가는데 3시간 걸린다고요?


  시장 먀오족마을의 중학교 대문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지금도 매년 5월 중순 축일(丑日)에 훠루터우가 모종을 심고 나서야 다른 농가도 따라 시작할 수 있다. 이때 집집마다 돼지고기를 삼고 찹쌀을 찌고 모두 모여 잔치를 벌인다. 이를 카이양제(開秧節)라 하는데 바로 모내기 행사이다.

 

화전으로 일군 논밭 가운데 사잇길로 아낙네가 멜대를 지고 걸어간다. 치우를 닮은 물소 뿔이 조각된 돌상이 앉아 농사를 감독하는 듯하다. 키 큰 볏짚이 군데군데 서 있다. 다오차오두이(稻草堆)라고 하는 볏짚이 평지뿐 아니라 산에도 쌀을 뱉어낸 흔적으로 듬성듬성 서 있다. 봉긋하게 위로 솟은 투구를 쓴 듯 보이는 볏짚이 요새를 지키는 장수처럼 늠름해 보인다.

 먀오족 소수민족마을의 집과 화전으로 일군 논. 추수가 끝난 자리에 볏짚들이 쌓여있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정류장에서 다시 카이리(凱裡)로 나가는 버스를 탔다. 구불거리는 길은 들어올 때나 나갈 때나 여전하다. 길은 같아도 마음은 다르다는 것이 여행의 맛이기도 하다. 어느새 익숙해진 마을에서 금세 떠나야 하는 아쉬운 집착이 산굽이를 넘어간다. 좁기도 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낭떠러지 길이라 한쪽으로 쏠리는 무게가 자꾸 가중되니 애써 마음을 털어내 본다.

 

카이리에서 다시 싼두(三都)행 버스를 탔다. 아침도 먹지 않아 버스 내내 '만두, 만두'하던 대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출발 시간 10분 남기고 표를 구했으니 속으로 행운이네 라고 생각했다. 약 150킬로미터, 고속도로를 타고 가니 2시간 30분이면 도착할 듯하다.

 

터미널 부근을 급하게 뒤졌지만 만두, 사실은 항저우 등 강남지방의 찐만두인 샤오룽바오(小籠包)를 사고 싶었다. 늘 보이다가 찾으면 없는 만두, 샤로룽바오다. 아쉽지만 중국 과자와 빵, 음료수를 샀다. 대원들 모두 맛있게 먹어주니 안심이다. 약간 굶주리며 떠나는 여행도 나쁘지 않다.

 싼두수이족자치현 버스터미널 부근 거리. 똑같은 형태의 간판이 걸려 있는 거리가 아주 깨끗하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고속도로를 타고 가니 아주 빠르다. 구이저우 동남쪽 첸둥난 먀오족 둥족 자치주에서 남쪽 첸난 부이족 먀오족 자치주로 시계반대 방향으로 버스가 달린다. 어느덧 시계 반 바퀴를 돌아 국도로 접어들어 몇 개의 소수민족 마을을 지난다. 다시 방향을 남쪽으로 틀어 1시간 더 달려 도착한 곳은 수이족 자치현 중심인 싼두 시이다.

 

터미널에 도착해 보니 도시가 참으로 소박하다. 나무 판자에 불에 태운 듯한 느낌으로 글씨를 쓴 가게 간판 때문이다. 거리도 아주 깨끗하고 한산하다. 각 지방의 먹거리를 파는 식당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저장(浙江) 샤오룽바오와 산시(山西) 다오샤오몐(刀削面)을 한꺼번에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았다.

 

다오샤오몐은 커다란 밀가루 반죽 덩어리를 넓은 칼로 얇게 벗겨내 익힌 후 육수를 얹어 만든 국수이다. 1개에 1.5위엔인 간장에 졸인 달걀이 너무 맛있어 1인당 2개씩이나 먹었다. 만두와 국수, 달걀의 조합이 이다지 훌륭할 줄 몰랐다. 아침부터 굶은 게 조금 미안했는데 역시 여행자의 자세가 충분한 대원들이 고맙다. 연이어 옮겨가는 버스 여행이 지루할 만도 한데 배만 채워주면 그 어떤 불만스런 눈빛도 발사하지 않으니 마음이 편하다.

 구이저우 싼두에서 두장으로 가는 버스. 수이족과 먀오족, 부이족이 섞여사는 마을답게 소수민족들이 많다. 한 승객이 닭을 들고 탔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다시 버스를 타고 두장(都江)까지 가야 한다. 버스 뒷자리에 나란히 앉는다. 20인승 정도되는 시골 버스이다. 이미 10여 명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씻지 않은 땀 냄새, 지린내까지 풋풋한 버스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닭 모가지를 비틀고 한 사람이 탄다. 아이를 업은 할머니도 타고 초등학생 3명도 버스 바닥에 앉는다. 닭도 사람도 뒷자리에 앉은 낯선 이방인 모양이 흥미로운지 자꾸 쳐다본다.

 

최종 목적지 전레이춘(怎雷村)까지 45킬로미터. 기껏해야 1시간이면 될 줄 알았는데 출발하자마자 기겁을 했다. 대원들 눈치를 보니 걱정이 태산이다. 덜컹덜컹 비포장도로이다. 시속 20킬로미터가 채 될까 싶다. 2010년 개방된 마을이라는 정보와 평면지도만 챙겨봤지 도로상태까지 표시되지는 않았다.

 

차장에게 얼마나 걸리느냐 물어보니 팅부둥(聽不懂), 들어도 모르겠다는 표정의 부이족(布依族) 차장. 왼쪽 앞 자리에 앉은 청년이 통역을 해주고서야 통했다. 3시간 넘게 걸린다. 45킬로미터 가는데 3시간이라니 예상하지 못한 노선이다. 게다가 두장에 내린 후 전레이춘까지 가려면 현지 차량을 또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숙소는 있겠지 물었더니 오른쪽 앞자리에 앉은 사람이 단호하게 없다고 한다. 가봤느냐 했더니 안 가봤지만 그럴 거라 한다. 그 앞에 앉은 사람이 문화부락인데 있겠지라며 참견한다. 도무지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버스 뒷자리에 앉은 우리는 심각했다. 몸도 마음도, 얼굴도 엉덩이도 다 튕겨 오른다. 웃음만 나올 뿐이다. 중국 참 많이 돌아다녔어도 이렇게 심한 비포장도로를 탄 적이 없다. 1970년대이던가 아버지 고향에 갈 때 생각이 났다. 제천에서 1시간 넘게 달려야 했던 포장되지 않은 길, 그러나 지금 이 길은 그때 기억보다 더 심하다. 부분적으로 포장도로가 보인다. 한번 포장한 후 보수공사를 전혀 하지 않아서 울퉁불퉁 패인 길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길이냐 물으니 국도(國道)라고 한다. 광저우(廣州)와 구이양(貴陽), 청두(成都)를 잇는 장장 2200킬로미터 거리의 G321 노선이다. 워낙 산간지방이다 보니 재정 부족으로 감히 도로보수공사를 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숙소 하나 없는 동네... 외국인 구경에 몰려든 아이들


 싼두수이족자치현에서 두장을 지나가는 버스. 비포장도로를 3시간30분 달려온 버스. 다시 비포장 산길을 1시간 더 가야 전레이촌이 나온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길 아래로 멋진 강이 흘러 마치 경춘가도를 달리는 기분, 지루함이 덜하다. 북한강을 연상시키는 이 멋진 강 이름이 두류장(都柳江)이다. 구이저우 남쪽지방을 가로질러 중국에서 3번째로 긴 강인 주장(珠江)과 합류해 광저우(廣州) 앞바다까지 흐른다. 수천 년을 살아온 소수민족 마을의 생명수나 다름없다. 먀오족, 부이족, 수이족 등 소수민족 마을이 곳곳에 숨어있고 대나무 숲과 화전으로 일군 밭들이 이어진다. 상류를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버스는 강과 만났다 떨어졌다 하며 줄기차게 흔들리고 있다.

 

2시간 넘어가니 지친다. 매운 다오샤오몐을 먹고 푸짐하게 물도 들이킨 대원 2명의 눈빛이 야릇하다. 화장실이 급한 것이다. 가다가 쉴 곳이 있을 테니 좀 참아보라 했다. 곧 도저히 안 될 것 같으니 차 좀 세우면 좋겠다고 한다.

 

'어차피 내 말도 안 통하니 이 감독이 해봐' 했다. 10분 더 참더니 앞으로 나가 차장에게 바디랭귀지를 한다. 역시 궁하니 잘 통한다. 잠시 후 버스가 강변이 바라다 보이는 낭떠러지 앞에 정차한다. 대나무로 엉겁결에 만든 듯한 간이 화장실을 다녀온 대원은 그제서야 얼굴이 화사해졌다. '강물 위에 앉은 듯, 정말 이런 기분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한다.

 

시원한 강 바람, 엉덩이 다이어트, 소수민족 마을 지붕, 터덜거리며 부지런히 달려가는 길이다. 지루할 수도 있는 길이건만 현대화, 고속도로로부터의 탈피, 오지로의 진입이 주는 안락한 흥분도 사뭇 즐겁고 행복하다.

 

어느덧 3시간 반 만에 두장(都江) 진에 정차한다. 수이족과 먀오족이 어울려 사는 곳. 진 곳곳에 3000여 호, 1만5000여 명이 모두 14곳의 자연부락을 이루고 살아가는 작은 마을이다. 화전을 통한 벼농사를 주업으로 한다.

 

다시 낡아빠진 7인승 진베이(金杯) 버스에 올라탔다. 우리로 치자면 봉고 같은 버스인데 중고치고 이렇게 고물 같아도 될까 싶다. 하지만 시동을 걸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마을을 벗어나더니 좁은 오르막길을 재빠르게 내달린다. 바퀴가 제대로 된 것인지 걱정도 되지만 여행 중에는 무조건 믿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산 하나를 넘더니 다시 내리막길이다. 산 아래 계곡이 보이고 하천이 흐르는데 까지는 그래도 길답다. 다리를 건너더니 지도 상에는 나타나지 않는 길을 향해 다시 산을 오른다.

 

늦은 오후, 가을 산길을 넘어가는 싱그러운 감촉이 점점 푸릇푸릇하다. 말로만 듣던 계단식 밭 디텐(梯田)이 멀리 보인다. 길 왼쪽에 전레이춘(怎雷村) 팻말도 살짝 보인다. 서서히 마을로 들어선다. 마을 안도 차량 하나 겨우 다닐 정도로 좁다. 수이족과 먀오족이 어울려 사는 마을로 4개의 작은 부락 전레이 마을에 도착이다. 중국말로 진짜 피곤하다는 말, 전레이(真累)와 발음도 똑같다.

 

기사는 마을 한 곳으로 들어서자 걱정을 늘어놓기 시작이다. 여관 하나 없는데 어찌 할거냐는 투다. 그러더니 마을 끝에 차를 세운다. 바로 멋진 계단식 밭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구이저우 전레이 마을 계단식 밭. 산골 마을이 개방된 이유는 봄가을로 펼쳐지는 멋진 밭 때문.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차에서 내려 추수가 끝난 밭을 바라본다. 추수 후 볏짚이 군데군데 서 있고 빈 밭에 다시 심은 채소가 상큼한 빛깔로 채워있다. 어느 밭은 푸르지만 또 어느 밭은 맨 땅이거나, 막 씨앗을 뿌려서 덜 돋아난 밭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초록과 갈색의 모자이크 같다. 봄이 아니어서 물이 흥건히 고인 이국적인 장면은 볼 수 없다. 그래도 층층이 내려앉은 밭이 건조해 보이면서 왠지 쓸쓸한 모습도 색다른 감흥이다.

 

순박한 기사에게 이 동네 마구간이라도 좋으니 숙소 좀 찾아달라고 떼를 썼다. 마침 한 아주머니가 딸과 함께 나무를 짊어지고 나타났다.

 

하양 두건, 파랑과 검정 옷을 입고 인상 착하게 생긴 아주머니는 집이 누추하다며 한사코 거절한다. 소수민족 말을 모르니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 기사도 나름대로 애처롭게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딸과 함께 웃으며 사라진다.

 

기사는 마을 간부를 잘 안다며 찾아가 보자고 한다. 다시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마을회관처럼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재워 줄만한 곳이 없다며 난감해 한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마음이 조금 다급해진다. 골목 길에 한 청년이 일을 하고 있다. 몇 마디 물어보니 자기 집에 가보라고 한다. 기사를 따라 집으로 올라간다.

 구이저우 먀오족과 수이족이 더불어 사는 마을. 나무로 만든 3층구조의 집에서 산다. 숙박장소 하나 없는 마을에서 어렵게 하룻밤을 지낼 수 있었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나무로 만든 3층 집, 조(吊)자를 닮은 댜오쟈오러우(吊腳樓) 2층 문으로 들어선다. 어두컴컴한 부엌이 보이고 가운데에서 화로를 피우고 있던 아주머니가 뜻밖에 들이닥친 이방인을 보더니 놀란다. 기사가 몇 마디 하니 살짝 미소를 머금는다. 고맙고 또 고맙다고 하니 환하게 웃는다. 너무나 기뻐 서둘러 내려와 대원들에게 자랑스레 알린다. 
 

"야호! 오늘 이 집에서 잘 수 있다."

 

짐을 내리고 메고, 혹시라도 마음은 변하지 않겠지 서두르며 집으로 올라간다. 비포장도로 5시간을 달려온 보람이다. 한국 사람들 구경 온 동네 아이들 난리 났고 고기와 밥, 술과 이야기가 밤새 무르익던 오지, 너무 훈훈해서 눈물 나는 사람 세상 안으로, 소원을 들어주는 요술램프 같은 어둠 속으로 우리는 서슴없이 들어선다.
 

 비포장도로 5시간을 달려 찾아간 전레이 마을의 소수민족 아주머니. 계단식 밭 앞을 지나가기에 하룻밤을 묵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먹을 게 없다'며 쑥스러워 했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덧붙이는 글 | * 중국 소수민족 프로젝트 취재팀은 2011년 10월 28일부터 1주일 동안 취재기자, 연출감독, 사진작가, 이미지디자이너 4명으로 구성, 구이저우 동남부와 남부 일대를 취재했습니다. 여행 다큐멘터리 제작을 목표로 자비로 이뤄졌으며 5회에 걸쳐 취재 스토리가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