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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31] 고구려 흔적을 따라 중국 지안을 돌다

5월 25일. 단둥[丹东]에서 오전 8시 30분 버스를 타고 참 질기게 가면 지안[集安]이다. 서너 시간이면 도착하는 줄 알았는데 6시간30분이나 걸리는 데다가 도로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아 유쾌한 여행은 아니다. 가끔 5분씩 쉬어가더니 점심시간 20분 동안 길거리에 그냥 정차. 과자와 아이스크림 먹으며 점심을 견뎠다.

오후 3시다. 버스에서 내리니 조선족 동포 운전기사가 반갑게 맞는다. 미리 전화해서 지안의 택시 한 대를 대절했던 것이다. 마음씨 좋게 생긴 아저씨다. 지안에서 둘러볼 곳이 몇 군데 있는데 택시로 이동하는 것이 시간도 줄이고 편리하다고 판단. 시골 동네로 갈수록 이동을 고려하면 택시가 무난한 듯하다. 다만, 혼자서 택시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좀 부담이긴 해도 말이다.

먼저 장군총으로 갔다. 그런데, 중국은 장군총(將軍塚)을 쟝쥔펀[将军坟]이라 부르고 있다. 장군총 입장료가 30위엔. 꽤 비싼 편이다. 게다가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카드라는 걸 같이 준다. 모든 사람들이 다 입장권과 동시에 카드를 받고 들어가니 굳이 없어도 될 카드를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그 카드를 안내원에게 주어야 설명을 해준다.

입구를 지나니 거대한 무덤이 시야에 들어온다. 깔끔하게 정돈된 작은 공원 같은 분위기에 둘러 쌓인 장군총. 왼쪽으로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돌로 겹겹이 층을 이룬 무덤이 그 튼튼함을 자랑하고 있는데 돌 사이마다 이름 모를 풀들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 저절로 날라와 피어난 것이 아니라 꽃씨를 뿌린 것이라 한다. 풀들은 꽃을 피우고 장군총을 오르는 사람에게 작은 눈요기를 보여주려는 것일까. 그다지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다.

  
▲ 멀리서 바라본 장군총의 웅장한 모습 .
ⓒ 최종명
장군총

역사가 트렌드가 된 우리 사회가 그야말로 난리인데, 그다지 좋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늘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이거니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차원, 그래서 지극히 감정적인 접근을 한다면 오히려 역사를 유행으로 취급하게 되는 웃기는 노릇이 될 지도 모른다. 드라마 '주몽'에 이어, 다른 드라마들에도 역사의 소재를 확장한 것은 좋지만 그 내용에 대한 고증이 미흡한 가운데 급작스런 기획으로 만들어진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지난 연말에 연기상을 수상한 주몽 연기자가 중국의 ‘동북공정’을 거론한 것을 봤다. 그 연기자야 애국심이 넘쳤거나, 감동이 지나쳐 그랬겠지만, 아니면 본래의 소신이었거나 드라마에서 ‘주몽’을 연기하면서 갑자기 중국의 동북공정을 배우게 된지는 몰라도, 중국을 늘 관심 있게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지극히 유치한 거론이라는 느낌이 든다.

말을 하려면 직접적으로 하든가. 자신의 연기가 중국의 동북공정에 따른 문제에 조금이나마 기여한다고 하는 것은 좀 우습다. 주몽 드라마가 그 정도로 역사인식과 사료에 잘 근거한 것이었는지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으니 말이다. 차라리 해방 이후 여전히 친일역사관에 취해 고구려나 고조선 역사연구에 책임회피를 해온 역사학자들을 질타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거론하려면, 더 배운 다음 수상소감을 말하길 바란다. 고구려 유적지를 둘러보면서 갑자기 괜히 주몽에 트집을 잡고 있다.

장군총, 광개토대왕비 곳곳에 감시 눈길

  
▲ 고구려 최대의 돌무덤 장군총 .
ⓒ 최종명
장군총

장군총 입구에 감시원과 안내원이 각각 1명씩 있다. 사진을 찍는 것을 감시하는 것인데, 다른 곳보다 경계의 눈초리가 센 편이다. 더구나 한국사람이 오면 더 그런 듯. 안내원 아가씨는 한 명이 들어가도 중국어로 설명을 해준다. 한편으로는 설명을 들으면서 무덤 속에 있는 비석들을 자세히 살펴보려고 한 바퀴 돌았다. 한두 평 정도의 좁은 공간에 오래된 우리의 역사가 살아있는 것이다.

동서남북에 걸쳐 사상 최대의 영토를 끌어안고 가는 중국은 현재의 자기영토 내에 있는 모든 민족의 각 왕조국가는 다 자신들의 지방정권으로 치부하는 논리, 그것이 바로 동북공정의 본질이 아니던가. 그래서 중국 중원 땅에서 멀리 벗어날수록 더 아름답건만 더 마음이 아픈 이유가 아니던가. 지안, 우루무치, 라싸, 인촨 등등. 아름답고 아프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장군총에서 내려다보니 멀리 시내가 다 보인다. 그만큼 장군총이 높다는 것인데, 좁은 곳에서 나와 우뚝 잠시 서 있으니 말 달리던 고구려 전사들의 우렁찬 기상이 벌판을 달려 오는 꿈을 꾼다. 우리 민족의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도모했던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을 그리며 조용히 장군총을 내려왔다. 도대체 누구의 무덤이란 말인가 생각하면서. 그리고 고인돌을 지나 밖으로 나왔다.

  
▲ 장군총에서 바라본 모습 .
ⓒ 최종명
장군총
  
▲ 장군총 옆에 있는 고인돌 .
ⓒ 최종명
고인돌

다시 차를 타고 광개토대왕비와 왕릉으로 갔다. 이곳도 입장료가 30위엔. 물어보니 지안의 관광지는 모두 30위엔이라고 한다. 원래 통퍄오[通票]가 120위엔이었다 하는데 없어졌고, 중국인은 10위엔, 외국인은 25위엔이던 것이, 2007년 올해 각 관광지가 모두 30위엔으로 통일됐다고 한다. 중국사람이 광개토대왕비와 왕릉만 보려고 설마 30위엔을 내고 올까 하고 물었더니 아주 많이 온다고 한다. 하기야 지안까지 왔다가 입장료 비싸다고 광개토대왕비를 들어가지 않을 수도 없고, 하여간 들어갔다.

광개토대왕비를 중국에서는 하오타이왕베이[好太王碑]라 한다. 유리창문으로 사방을 막았다. 밖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있으나 안에서는 찍지 못하게 한다. 역시 감시원이 있다. 안내원은 비문의 글자가 1775자라고 했다. 한참 설명을 듣는데 약간 화가 났다. 도대체 왜 못 찍게 하냐. 우리나라 역사를 빼앗긴 느낌이 울화로 번지고 있다. 캠코더를 꺼내 몰래 좀 찍었다. 이것도 화 나는 일이다. 당당하지 못하고 '몰래카메라'를 찍었다는 것도 또 화난다.

  
▲ 광개토대왕비 .
ⓒ 최종명
광개토왕비

유리문 밖에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동영상도 찍었다. 빛이 약간 반사되긴 하지만 그런대로 이곳이 광개토왕비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하다. 고구려 사람들이 자랑스러워 했을 것이고 그 이후 후손들도 존경해마지 않았을 광개토대왕, 위대한 업적 앞에서 잠시 고개가 숙연해졌다.

부근에 왕릉이 있다. 산이라 하기에는 다소 낮은 언덕 위에 봉긋하게 솟아있는 왕릉. 안내원의 설명이 장황하다. 아마도 이 왕릉이 하오타이왕[好太王]의 것이라고 하는 듯하다. 그렇지만 중국의 주장일 뿐 우리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은 듯하다.

왕릉 속에는 왕과 왕비의 무덤 한 쌍이 나란히 놓여 있다. 무덤 위에 중국 돈과 한국 돈이 또 나란히 섞여, 던져져 있다. 중국사람들은 이렇게 돈을 던져놓고 가는 게 하나의 관례인 듯싶다. 우리나라 천원 신권 지폐 몇 장이 있는 것을 보니 한국사람들이 중국 돈을 따라 같이 던졌을 것이다.

썩 보기 좋지 않다. 무덤 위에 돈을 내던지는 것이 우리의 풍습도 아니고 그저 무심코 던졌을 것이거나 우리 돈을 올려서 우리 조상이며 우리의 자랑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왠지 예의 없는 중국사람 흉내 내는 듯해 기분이 좋지 않다. 안내원은 중국사람들에게 저기 한국 돈 신권이라고 소개한다. 어떻게 알았어? 했더니 앗! 하며 쳐다보더니만 한국사람들이 신권이라고 해서 안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안내원의 말을 들으니 또 기분이 상했다. 게다가 옆에 있던 중국사람이 천원이면 인민폐로 얼마냐고 묻는다. 나도 몰라. 하여간 지안에 와서 괜히 삐진 사람처럼 속이 좁아졌다.

광개토대왕비와 왕릉을 나오니 다시 고분을 보자며 택시를 몰고 간다. 이곳도 역시 입장료가 30위엔이다. 특별히 고분을 연구할 일도 없어서 들어가지 않았다. 철조망 쳐놓고 돈 받는 느낌 그 자체다. 내 눈치를 좀 본 운전기사가 옛날 어릴 때 저 무덤 위에서 뛰어놀았는데 지금은 관광지가 됐네요 한다. 그러면서 덧붙여 10여년 전에 이곳에 온 서길수 교수님이란 분이 이 부근 고분과 무덤을 완벽하게 조사했다고 한다. 지안의 한 조선족 동포가 참 아는 것도 많고 유식해서 너무 기분이 좋다.

압록강 너머에서 바라본 북녘 땅 북녘 사람

고분에 들어가지 않으니 운전기사가 조금 난감한 듯 북한 땅 보이는 곳으로 가겠냐고 한다. 아주 가까운 곳이고 아주 가깝게 북한이 보인다고 한다. 정말이었다. 압록강 너머 강변에 아이들이 놀고 있고 엄마들은 빨래를 하고 있다. 아이들아 하고 부르니 손을 흔들어준다. 아이들 다섯이 강변에서 소꿉놀이를 하는지 아주 포근한 모습이다. 최대한 클로즈업해서 동영상에 담았는데 손 흔드는 모습까지 잘 잡혔다. 아담한 아이들의 손, 우리 아이들과 언젠가는 맞잡고 흥겹게 하나가 될 그런 아름다운 손이다.

  
▲ 집안 압록강변에서 바라본 북한 아이들 .
ⓒ 최종명
북한
다시 강변 도로를 달렸다. 조금 지나니 강 복판에 작은 섬 하나가 나타났다. 운전기사는 저 섬이 예전에 저우언라이[周恩来] 총리가 북한에 돌려준 땅이라고 한다. 지금도 섬으로 농사를 지으러 북한사람들이 들어온다고 했다. 좀 상세히 섬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 집안 압록강변 도로, 왼쪽으로 보이는 섬 .
ⓒ 최종명

차를 국내성터 앞에 세웠다. 철조망 속에 숨어있는 고구려 성곽. 수풀 속에 묻혀 성곽인지 아닌지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모를 정도다 상당히 많이 훼손되어 보인다. 가지런하게 박혀있는 돌들은 아마도 최근에 조성해 놓은 듯하다. 역시 운전기사가 말하길 예전에 이곳에서 뛰어 놀았는데 국내성터인지 몰랐다고 한다. 그때부터 보존했으면 이렇게까지 훼손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돌 조각이니 따지고 보면 오래 되었다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그래도 고구려 사람들이 쌓은 성곽의 형태나 모습을 보노라면 그저 평범한 돌이 아닌 역사의 빛나는 돌로 살아있었을 것인데 말이다.

  
▲ 국내성터 .
ⓒ 최종명
국내성터

아침 먹고 점심 거르고 지금껏 지안 곳곳을 부지런히 봤더니 배가 고프다. 운전기사가 소개한 민박집에 짐을 풀고 다시 주인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갔다.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하니 좋다고 한다. 민박집이 원래 식사를 제공하니 자기 식당에서 밥을 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간단한 찌개와 밥을 준다고 한다. 그런데 이 식당은 조개구이를 전문으로 한다. 다섯 가지 종류의 조개를 잔뜩 시켰다. 그리고 바이져우[白酒] 한 병도.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셨는데 이 운전기사 참 사람이 수더분하고 좋다. 나이를 물으니 나하고 동갑. 조선족 동포 운전기사, 사람 좋고 성실한 이 사람과 드디어 친구가 됐다. 술도 참 잘 마신다. 거의 주량이 비슷비슷 막상막하다. 그래서 내일 오녀산성도 같이 가기로 했다. 환런[桓仁]을 지나 통화(通化)까지. 통화에서 기차를 타고 션양[沈阳]가는 것이 다음 일정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주인집 딸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조선족 아주머니의 딸이니 조선말이 통할 줄 알았는데 잘 못한다. 참 착한 중학생이다. 공부도 꽤 잘할 듯하다. 커피 있어? 하니 착하게도 물 끓여서 커피를 타서 왔다. 30분 정도 같이 텔레비전을 보면서 대화를 했다.

알고 보니 학교를 한족학교를 다닌다. 조선족 학교가 없으니 당연하다. 갈수록 중국에 조선족 학교가 사라지고 있으니 안타깝다. 참 착하고 예쁘게 생긴 아이다. 사진을 왜 안 찍었을까. 지금 생각하니 약간 후회가 된다. 참 친해졌는데. 그리고 열심히 중국말로 한국, 그리고 민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귀 기울여 듣는 모습이 인상에 남아있다. 앞으로  훌륭한 어른으로 자라길 바란다.

'아저씨는 잔다' 하고 방으로 들어가니 '안녕히 주무세요' 한다. 참 예의도 바르지. 마치 공주 방처럼 꾸며진 방에서 비록 좁았지만 편하게 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