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글자, 너무 간략해서 도무지 모르겠다 [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강서 휘주문화 우위엔 ④ 샤오치와 리컹 밤 새워 험난한 길을 가는데 날이 밝아오면 얼마나 기쁠까? 이를 천강포효(天剛破曉)라고 한다. 당나라 말기 황소(黄巢) 민란이 전국을 휩쓸던 시기, 왕만오(汪萬五) 일가는 휘주부에서 장장 400리를 피난 내려왔다. 시냇물이 흐르고 산으로 둘러싸였으며 풀과 꽃이 만발한 들판이자 비옥한 땅이 눈 앞에 나타났다. 그렇게 짐을 풀었다. 9세기부터 정착했으니 그 어떤 천년고진 부럽지 않은 세월을 지녔다. '동이 트는 땅' 샤오치(曉起), 양생하(養生河)가 흘러 샤오촨(曉川)이라고도 불렀다. {계속}
휘주문화 마을이자 주자를 신봉하는 리컹李坑에서는 7품 이상 관리가 36명이나 배출됐다. 16명이나 진사에 급제했다. 마을 가운데 장원부状元府를 들어가 보기도 했다. 휘황찬란한 유교문화의 보고와도 같은 마을답게 문인의 향기가 난다. 하얀 담장에 검은 기와의 분장대와粉墙黛瓦에 비첨飞檐과 창각戗角이 멋진 지붕이 건축의 위상이 반듯하다. 석조, 목조, 전조의 삼조三雕가 집의 품격을 가일층 돋보이게 한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주는 돌로 집의 중심 자리를 잡고 있는 마을이다. 아이들과 어른, 노인 모두 평화로운 표정이다.
휘주문화가 남아있는 우위엔婺源 리컹李坑을 찾았다. 리컹은 주자朱子를 숭상하는 품격 있는 마을이자 학자가 많이 배출된 것으로 유명하다. 명나라 시대 이부상서吏部尚书를 역임한 여무형余懋衡, 청나라 시대 사마司马를 역임한 여유추余维枢을 비롯 유명한 역사인물이 많다. 마을로 들어서면 평화로운 문화 마을의 풍광을 담는 학생이 많다. 조그만 하천을 따라 형성된 마을이라 쪽배를 타고 들어가도 된다. 운치를 살려보려고 배를 탔다. 하천을 따라 조성된 마을은 여행객이 꽤 있어서 조금 번잡한 느낌이 든다. 배를 타고 마을을 오고가는 사람들 모습이 평화롭게 보인다.
강서 성 우위엔婺源의 휘주문화가 살아 숨쉬는 마을 샤오치晓起를 찾았다. 무려 8세기에 처음 조성된 마을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마을답게 진사택进士第, 대부택大夫第, 영록택荣禄第 등 옛 건축가옥이 많다. 고풍스런 마을을 거닐며 마음에 드는 가옥을 찾아 다니던 중 문화대혁명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모습을 발견했다. 벽에는 모주석어록이 적혀 있고 모택동의 초상화나 조각상도 보인다. 골목에 있는 우물 속에는 빨간 붕어 두 마리가 예쁘게 헤엄치고 있다. 우물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러 붕어를 넣어둔 것이 틀림없다.
휘주문화 마을 장완江湾의 아침 거리를 걸어본다. 장완은 우위엔에 있는 유일한 5A풍경구인데 아마도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조상이 살았던 곳이어서 편의시설 등이 개선됐기 때문인 듯하다. 불을 피우고 우물에서 설겆이도 한다. 한 할아버지가 친절하게 장쩌민 전 주석이 찾았던 인증 사진도 보여준다. CCTV 등 방송에서 소개된 농가집에 들어서니 마중물로 물을 퍼올리는 펌프가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한 아주머니가 식사 준비를 하는지 바쁘다. 골목도 운치 있고 집들도 모두 개방돼 있어 구석구석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마을이다.
휘주문화의 또 하나 멋진 마을 장완江湾을 찾았다. 전 국가주석 장쩌민江泽民의 조상인 소강萧江 씨족이 살았던 고향이다. 소강씨는 곧 지금의 강씨이다. 11세기 소강씨가 이전에 마을을 조성한 후 점점 거대 씨족 마을로 성장했다. 청대 학자인 강영江永 기념관을 비롯 건축 가옥은 모두 휘주문화를 잘 담고 있다. 정자, 문, 다리, 우물 등도 자리를 지키도 있다. 빗물이 가득 담긴 항아리가 있는 마당으로 들어섰다. 거울보다 맑은 물에 비친 대문과 대련의 색감이 너무나도 아름답다. 잠시 머물며 한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봤다.
강서 성 우위엔婺源에 있는 휘주마을 왕커우汪口에는 유씨종사俞氏宗祠가 있다. 강이 넓고 강물이 많다고 해서 붙은 마을 이름이다. 12세기 초 처음 마을이 형성됐고 청나라 때 정3품 벼슬의 조의대부朝议大夫를 역임한 유응륜俞应纶이 고향으로 돌아와 종사를 세웠다. 유씨 집성촌으로 유씨종사가 마을 끝에 자리잡고 있다. 과거에서 진사에 급제한 사람이 14명, 7품 이상 관원이 73명이나 배출한 유서 깊은 '양반' 마을이다. 강을 따라 조성된 마을로 600m의 긴 골목을 지난다. 비가 계속 내려 몸은 축축했는데도 기분이 좋다. 줄기차게 내리는 빗물이 목조건물인 종사를 푹 적시고 있다. 세밀하고 아름다운 조각, 기품이 있는 편액이 비 속에 더욱 빛나는 왕커우 유씨종사다.
휘주마을 옌촌延村은 한산한 편이다. 12세기 초 남송 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됐으니 80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동네다. 윗 동네인 쓰시촌思溪村과 가깝지만 느낌은 다소 달랐다. 담백하고 청순한 느낌이랄까. 원래는 작은 하천이 인접했기에 옌촨延川이라 불렸는데 점점 사람들이 편하게 옌촌이라 불렀다. 청나라 시대 상인이던 가옥이 56채가 남아 있어서 '청대상택군清代商宅群'이라 불리는 마을이다. 담벼락이 오래돼 검은 빛이 감돌지만 담백한 느낌이 살아있어서 기분이 좋다. 정리정돈 되지 않은 마을, 풀과 어울리는 가옥이 한 폭의 그림 같은 옌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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