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품취재-2014 2] 의 땅 승덕 피서산장 북경 고궁(故宫)에서 승덕(承德) 피서산장까지 거리는 약 230킬로미터. 박지원은 백하를 하룻밤에 아홉 번이나 건너 열하(热河)로 갔다지만 경승(京承)고속도로를 달리면 3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가깝다고 자주 가는 게 아니듯 북경에 산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승덕을 찾았다. '선조가 남긴 은덕을 계승한다'는 승덕의 지명은 청나라 옹정(雍正) 11년(1733년)에 처음 등장한다. 기원전에는 북방민족이 말 달리던 터전이었고 몽골족이 세계를 제패한 이후 '뜨거운 물 줄기'라는 뜻의 지명 하룬가오루(哈倫告盧)를 그대로 청나라가 열하로 번역했다. 승덕은 신해혁명 이후 중화민국 시기 열하 성의 수도였다가 신중국 수립 후 1955년 열하 성이 폐쇄되자 하북성으로 ..
공중초원 가는 길에 허베이 이현(易县)에 있는 청서릉 문화투어를 진행했습니다. 광서제의 숭릉 지하궁을 관람하면서 청나라의 황릉, 그리고 역사와 문화를 조금 이해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청나라가 성경(盛京, 지금의 심양)에서 북경으로 천도 후 순치제는 쭌화(遵化, 고궁 동쪽 125km) 시 마란위(马兰峪)에 중국 황실 능원을 조성했습니다. 이후 옹정제는 무덤에 사용되는 한백옥의 생산지와 가까운 곳인 이저우(易州, 지금의 이센, 고궁 서남쪽 135km) 융닝산(永宁山)에 새로이 황실 능원을 조성하게 됩니다. 이후 강희를 존경한 손자 건륭은 다시 부자가 한 곳에 능원을 조성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게 돼 교차로 능원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청 동릉과 청 서릉으로 나누어진 이유입니다. 1730년 옹정제의 태릉(泰陵..
47 베이징 1 백 년 넘는 가게와 서민들의 먹거리가 수두룩하다 7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베이징원인(北京猿人)이 발견된 곳이며 춘추전국 시대 이전 서주(西周)의 봉국이던 계(蓟)나라가 베이징의 역사를 쓰기 시작하며 전국시대 연(燕)나라의 영토였다. 계성(蓟城)이라 불리다가 서기 938년 거란(契丹) 요(辽)나라가 처음 도읍을 정한 후 금(金), 원(元), 청(请) 등 북방민족이 중원을 통일하고 수도로 삼았다. 한족의 명(明)나라도 초기 도읍인 난징(南京)을 떠나 베이징으로 천도하기도 했다. 마오쩌둥의 신중국 역시 수도로 정했으니 천년 이상 정치와 문화의 중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1) 세계 최대의 천안문광장과 궁궐 속으로 수도 베이징 한복판 톈안먼(天安門) 광장은 늘 혼잡하고 산만하다. 1년 내내..
[중국발품취재 2012 - 3] 500년 전 명나라 역참 흔적 그대로 남은 지밍이 허베이 위현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동북쪽으로 1시간 30분가면 줘루(涿鹿)가 나온다. 치우(蚩尤)의 '탁록대전' 신화로 유명하지만 역사적 근거는 없다. 황제의 성이니 샘이니 포장해 명승지가 있지만 허망한 발길이 되기 십상이다. 오히려 베이징을 떠나 서쪽으로 가는 첫 역참 마을이 있어 발걸음이 가볍다. 현에서 다시 30분 가량 가면 지밍산(雞鳴山)이 나타나는데 역참은 이 산자락 아래 있다.울퉁불퉁하게 바위들이 솟았고 나무 한 그루 없이 민둥산이 길 앞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닭 울음' 우는 산의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뭔가 사연이 있을 듯하다. 북위 시대 지리서 에 따르면 기원전 춘추시대 조(赵)나라를 세운 조양자(趙襄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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