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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61] 양숴 대나무 뱃놀이와 류싼제 공연


양숴(阳朔)의 씨제(西街)는 세계적인 여행책자들이 강력 추천하는 곳이다. 서양인들이 많이 찾는 거리라 양런제(洋人街)라 하기도 하는데, 거리 분위기가 굉장히 서구적으로 꾸며져 있다. 또한, 공예품 파는 풍물거리이면서 술집거리이고 배낭여행객들의 숙소가 아주 많다.

씨제는 보행 거리라 자동차나 자전거가 진입하지 못한다. 1킬로미터도 되지 않는 짧은 거리에는 온갖 형태의 술집(酒吧), 식당(餐厅), 호텔(饭店), PC방(网吧), 커피숍(咖啡厅), 공예품가게(工艺品店) 등 외국인들을 위한 거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등이 예쁘게 밝혀져 있는 작은 호텔에 숙소를 잡고 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둘러봤다. 초상화를 그려 파는 가게에는 '오사마 빈 라덴'도 있고 '히틀러', '베컴'이 다소 우스꽝스럽게 걸려 있기도 하다. 그림들을 보고 얼굴을 맡기고 싶을까.


술집마다 통기타 가수들이 부르는 노랫가락이 흘러나온다. 베이징의 외국인 술집거리인 싼리툰(三里屯)에 비할 정도로 시끄럽다. 커커쥬빠(可可酒吧)라는 술집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중국의 가수이며 배우인 천이쉰(陈亦迅)의 '스녠(十年)'이란 곡이다. 발라드 풍의 노래로 히트한 노래. 십 년 동안 사랑인지 우정인지 모를 슬픈 눈물을 흘리는 안타까운 마음을 노래한 가사도 뭐 새겨들으면 재미있다. 술집 앞에서 아가씨가 노래를 따라 부르며 호객하고 있다.


♩♫♬ 십 년이 흐른 후 우리는 친구가 됐어 서로 안부를 묻게 됐고 단지 그런 따뜻한 마음으로 만이 다시는 너를 포옹할 이유를 찾지 않아도 돼 연인은 결국 친구가 되는 것이니까 그렇게 오랫동안 너랑 친구 사이로 지냈는데 이제서야 내가 흘리는 눈물을 이해하니 널 위해서 흘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라는 것을...


애뜻한 사연의 노래, 늘 듣었고 익숙한 가락이 거리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잘 들으면 중국 대중가요도 꽤 재미있고 즐겁다. 다만,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중국어나 중국문화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기도 한다.


  
양숴 씨제 거리
ⓒ 최종명
양숴


씨제는 1400여 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던 옛 거리이나 지금은 서양식 일색으로 변한 것이 조금 아쉽다. 프랑스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스테이크를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싸다. 25위엔(약 3200원)이니 역시 재료 값 때문일 것이다. 맛도 꽤 정갈한 것이 맥주 안주에도 제격이다.


한쪽 구석에는 대형 스크린을 걸어놓고 영화를 보면서 떠드는 사람들이 피워대는 담배 연기가 마치 마약소굴처럼 보이긴 했다. 올드 팝송을 따라 부르는 사람들이 이 여유로운 씨제 거리에서 여행의 여독을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8월 9일 아침, 날이 밝았다. 베란다로 나가니 빨간 꽃 화분이 멀리 동글동글한 산봉우리를 배경으로 예쁘게 피어있다. 간밤에 새벽까지 시끌벅적 떠들던 거리는 어느새 조용한 아침을 맞았다. 리어카를 끌고 거리를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다. 역시 어디나 화려한 배설 뒤에는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깔끔하게 치우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노동이 숨어 있나 보다.


  
양숴 씨제의 숙소 베란다에서 본 청소하는 모습
ⓒ 최종명
양숴


밤새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여전히 잠을 자고 있을 무렵, 아침을 먹고 서둘러 뱃놀이를 떠났다. 씨제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차오양마터우(朝阳码头)까지 달렸다. 시내 골목 길을 벗어나 논과 밭 사이로 마구 달린다. 역시 오토바이는 좁은 길을 달리는데 안성맞춤이다. 리장(漓江)의 지류인 위룽허(遇龙河) 중간 지점에 있는 마터우에 도착하니 수많은 대나무 뗏목인 주파(竹筏)가 정박해있다.


  
양숴 리장 지류의 대나무 뗏목 뱃놀이
ⓒ 최종명
양숴


2006년 10월 말에 장씨(江西) 성 잉탄(鹰潭) 시의 룽후산(龙虎山) 계곡에서 벌어진 낚시대회에 참가해 하루 종일 주파를 탄 적이 있었다.


당시 흐르는 강물을 따라 낚시도 하고 산봉우리에 올라 경치도 구경하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푸른 강물과 대나무 뗏목과 어우러진 싱그러운 나무 잎사귀와 주홍빛 도는 구명조끼(救生衣)가 인상적이었는데 이곳 양숴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양숴 리장 지류의 대나무 뗏목 뱃놀이
ⓒ 최종명
양숴

다만, 흐르는 강의 굴곡과 주변 경치는 사뭇 다르다. 양숴의 주파 뱃놀이는 훨씬 완만하면서 아기자기한 놀이도 있고 강 한가운데 선상 가게도 있으니 훨씬 더 관광지답다고 해야 할 듯하다.


역시 양숴(阳朔)의 최고의 재미는 주파(竹筏)를 타고 유람하는 것이다. 10개 정도의 대나무로 엮어서 만든 배는 꾸이린과 양숴를 흐르는 잔잔한 리장(漓江)의 지류를 타고 스치듯 흘러내린다.


배 하나마다 합승한 뱃사공들과 함께 1시간 30분 가량 배를 타고 가면서 카르스트 지형인 산봉우리를 바라보노라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게다가, 고요한 강물을 유유히 흐르는 대나무들이 가르는 물살도 멋지고 가끔 뱃사공들은 노래도 불러준다.


가마우지 낚시꾼들을 비롯해 강을 무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광도 맛볼 수 있다. 불쌍한 가마우지는 입과 목에 담은 물고기들을 주인을 위해 바쳐야 하는 운명이건만 뗏목에 앉아서 여행자들을 기다리는 모습이 약간 애처롭기도 하다.


여행으로 만난 사람들에게는 산뜻한 놀이임에 틀림없다. 가마우지를 중국어로 루씨(鸬鹚)라 하고 가마우지낚시를 루씨뿌위(鸬鹚捕鱼)라고 하는데 목에 줄을 매달아 삼키지도 못하는 새의 운명을 아는지 사람들이 돈을 주고 보려는 사람을 볼 수는 없었다.


  
대나무 뗏목과 가마우지
ⓒ 최종명
리장


작은 물총은 물을 뿜으니 아이들의 즐거운 장난감이다. 물총은 10위엔에 파는데 물총을 당겨 물을 가득 담았다가 쭉 내밀면 물이 뻗어나간다. 하나씩 가지고 타는데 옆 배와 물싸움도 하고 누가 멀리 물을 뿜어내는지 내기도 하고 강변에 있는 나무를 표적으로 맞추는 게임도 하면 재미있다.


강물 위에는 옥수수나 생선을 구워 팔기도 한다. 굳이 말한다면 수상 포장마차라 해야 할 가게들이 많다. 술도 판다. 우리는 맥주 2병과 민물생선구이를 사서 먹었다. 우리나라라면 이렇게 술을 마시며 배를 타도록 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물에 빠져도 그렇게 수심이 깊어 보이지는 않지만 사고가 나려면 접시에도 코 빠트린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양숴 리장 지류에 있는 대나무 뗏목으로 만든 가게
ⓒ 최종명
양숴


젊은 연인들은 마치 레프팅을 하듯 물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아예 수영복을 입고 배를 타는 것이다. 8월 한여름이니 대나무 배 레프팅이야말로 정말 시원한 휴가 아이템이라 할만하다.


강 곳곳에는 작은 둑이 몇 군데 있다. 이 둑을 넘어가려면 내렸다가 다시 타야 한다. 카메라를 들고 있어나다가 뚜껑을 떨어뜨렸다. 뚜껑 무게가 꽤 무거운 지 물 속으로 숨어버렸다. 온몸을 다 적셔가며 물 속으로 들어가 찾았다. 물이 맑아 금방 찾기는 했지만 옷이 다 젖었다.


너무도 아쉬운 시간이 흘렀다. 종점 공농챠오(工农桥)에 온 것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사실 숙소의 젊은 종업원이 주파 뱃놀이 표를 보통보다 2~30위엔 싸게 50위엔에 구해줬다. 그래서 다시 그 친구에게 양숴의 환상적인 대형 무대극 '인샹 류싼제(印象刘三姐)' 공연 티켓도 구했다.


류싼제는 당나라 시대의 소수민족인 좡족(壮族)의 전설 속의 신녀(神女)로 불린다. 총명한 그녀는 경전에도 능통하고 노래도 잘 했던 인물로 알려져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되기도 했다. 원래 관람료가 일반석이 188위엔이고 앞 좌석은 320위엔, 그리고 특등석은 680위엔으로 비싼 편이다. 여행사나 호텔을 통해 티켓을 구입하면 100위엔 이하로 구할 수 있다.


장이머우(张艺谋)가 총괄 기획했다고 하는 낭만적인 이 공연은 양숴를 찾는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흥분과 기억을 남겨준다. 이 공연의 컨셉이 '인상(印象)'인 것이다. 장이머우 이름을 걸고 하는 이 '인상' 공연은 중국에 현재 3곳에 있다. 양숴를 비롯해 윈난(云南) 리장의 '인샹리장(印象丽江)', 저장(浙江) 항저우(杭州)의 '인샹씨후(印象西湖)'이다.


  
양숴 <인샹류싼제>의 장면들
ⓒ 최종명
양숴


3곳 모두 물 위의 공연, 호반 위의 낭만을 연출하고 있다. 3곳 모두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니 관객들도 주로 외국 여행자들이 많다. 이곳들이야말로 중국에서도 가장 낭만적인 여행지라 추천할 만하다.


위 두 공연은 아쉽게 보지 못했다. 윈난에서는 미처 이런 공연이 있는지 몰랐고, 항저우에서는 300위엔이나 하는 가격이 부담스러웠고 할인티켓도 미처 구하지 못했다. 공연을 보면서 내내 우리나라에도 이런 멋진 공연이 기획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씨제에서 삼륜차를 타고 약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슈통산(书童山) 부근 류싼제꺼웨이(刘三姐歌圩)'로 '산수극장(山水剧场)'. '계림산수'(桂林山水)를 실제 배경(实景)으로 꾸민 대형 무대극이 벌어지는 장소다.


  
양숴 호반 위에서 벌어진 장이머우의 <인샹류싼제> 공연 중 한 장면
ⓒ 최종명
양숴


양숴의 '인상 유삼제'는 약 70분 공연이다. 공연 좌석이 2000석이 넘는 멋진 야외 무대에서 펼쳐지는 환상과 환호. 600여명의 출연진들이 일사불란하게 연출하는 동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칼라풀하게 중국적인 인상을 드러내고 있는 멋진 공연이다. 2004년 3월 20일 정식으로 공연이 시작된 이래 열광적인 호응을 얻고 있으며 2005년에는 중국 10대 '최고의 연출'로 선정되기도 했다.


공연이 시작되면 소수민족 아이가 등장해 인사말을 한다. 깜깜한 어둠 속에 아름다운 양숴의 경치를 담은 영상이 나타나고 노래하는 여신 류싼제가 배를 타고 나타난다. 블랙의 이미지, 어둠 속의 한줄기 빛처럼 아리따운 좡족(壮族) 아가씨가 그렇게 등장한다. 조명에 비친 모습, 호수에 반사된 모습까지도 아름답기 그지 없다.


이어 햇불을 들고 소수민족 아가씨들이 등장해 관객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호수 건너편에도 아가씨들이 햇불을 들고 손을 흔들며 노래를 한다. 대구로 서로 노래하던 아가씨들이 사라지면 호반 위에 레드의 이미지가 서서히 등장한다. 붉은 색의 긴 천을 드리운 뱃사공들의 향연이 시작된다.


수많은 뱃사공들이 수놓는 붉은 천 사이로 류싼제가 배를 타고 떠난다. 그린의 이미지를 만든 호수 그 건너편에는 사람들이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고 그 사이로 뱃사공들이 노를 저으며 사라진다. 조용히 어둠 속에서 한 척의 배에 타고 호수를 건넌 아가씨들과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아이들이 소수민족 노래를 하는 사이, 물고기 잡는 가마우지 새를 어깨에 얹은 사공들이 등장한다. 가마우지를 배에 싣고 호수 가운데로 간다. 호수에는 많은 사공들이 배를 타고 그물 낚시도 하고 노 젓듯 물을 튕기고 있다. 골드 이미지가 뿌려진 듯하고 흰색 조명은 대낮같이 밝힌다.


  
양숴 <인샹류싼제>의 장면들
ⓒ 최종명
양숴


아이들이 호수 위를 걸어가고 있고 그 뒤로 소를 탄 사람도 따라간다. 소와 아이들이 사라지면 호수 위로 조명이 하나 둘 켜지고 블루 이미지가 가미된 환상적인 초승달 장면이 펼쳐진다.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달 위에서 무희가 아슬아슬한 춤을 춘다.


조명에 비친 초승달은 꿈을 상징하는데, 좌우로 움직이는 것은 애닯은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면 어느덧 아가씨가 사라지면 현실의 땅에서 사랑을 갈구하듯 호수 위에서 한 아가씨가 조용히 기도한다.


호수 위에 아가씨들이 날개 옷을 걸치고 춤을 춘다. 전통 옷으로 갈아입은 아가씨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선녀 류싼제에게 자신들의 전통 옷을 입혀준다. 사랑을 갈구하며 기다리던 총각과 함께 배를 타고 멀리멀리 떠난다.


호수 멀리서부터 실버 인상을 품은 전구를 온몸에 걸치고 아가씨들이 등장한다. 조명에 빛나는 흰색 전구가 빛을 냈다 사라졌다 하는 장면이다. 수백 명의 아가씨들의 모습이 마치 살아있는 인형처럼 등장한다. 이 대형서사 무대극의 꽃이라 할 만하다.


  
양숴 <인샹류싼제>의 장면들
ⓒ 최종명
양숴


멋진 에필로그도 있다. 모든 출연진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사라지고, 호수 위의 무대 전체가 하나처럼 빛난다. 그리고 호수 중간에 제작진들의 모습이 크레딧으로 나타난다. 장이머우 사진이 나타나고 연출자와 제작자도 등장한다.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것이다. 검은 호반 위에 총천연색의 인상을 남겨둔 듯 한참 동안 사람의 시선을 잡아두려는 듯 말이다.


이 작품의 제작자는 메이솨이위엔(梅帅元)이며 연출 감독은 장이머우 사단이라고 알려져 있는 왕차오꺼(王潮歌)와 판위에(樊跃) 2명이다. 이 3명을 일러 티에싼쟈오(铁三角) '철각 트리오'라 부른다고 한다. 젊은 감독들은 자연을 배경으로 소수민족의 풍경과 삶의 모습을 형상화하는데 타고난 역량을 발휘한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특히, 왕차오꺼는 여성감독으로서 섬세한 감성을 잘 드러내 촉망 받고 있다.


공연장 입구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하루에 두 번 열리는 공연 때문에 나오는 사람과 들어가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숙소로 돌아가는 차량도 도저히 찾기 힘들 정도다. 겨우 트럭 뒤에 타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