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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63] 광저우와 션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 15일, 중국 최고의 무역도시 광저우(广州) 시내를 찾았다. 지하철을 타고 시내 구경에 나섰다. 지하철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예전에 출장 갔을 때는 대부분 자가용이나 택시로 이동해서 시내 곳곳을 볼 수 없었는데 정말 세계인들이 모이는 무역 도시답게 활기차 보였다.
 

다만, 사람들이 불친절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버스 운전사에게 내릴 곳을 좀 알려달라고 하니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거리에서 길을 묻자 무조건 모른다고 한다. 가게 주인에게도 길을 물었는데 뭐 사지 않을 거라면 묻지 말라는 둥 역시 퉁명스럽기 그지 없다. 왜 그럴까. 나만 당하는 것인가. 3번 정도 무시 당하고 나서는 그저 혼자 열심히 찾아 다녔다.
 

광저우 지하철은 베이징이나 상하이에 비해 훨씬 깨끗해 보인다. 모두 4개 라인이 운영되고 있는데, 각 호선 별로 색깔도 빨강, 노랑, 파랑, 초록으로 배치해 놓으니 마치 우리나라 서울 지하철 노선도를 보는 듯했다.
 

광저우의 지하철 1호선 황사(黄沙) 역 부근의 이야오(医药) 거리를 찾았다. 큰길 옆에 중국 중국 의학 및 음료 브랜드이기도 한 왕라오지(王老吉)를 창시한 왕저방(王泽帮) 동상이 서 있다.
 

왕라오지는 중국 사람들이 상훠(上火)라 부르는 일종의 감기 몸살 비슷한 증상에 효과가 있다는 의료 음료이기도 하다. 중이(中医) 약제 거리로 많은 가게들이 촘촘하게 재래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광저우가 중국 3대 도시로 발전해 아주 번화했지만 이렇듯 옛 거리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 많다.

  
광저우의 중의 약제 거리 부근
ⓒ 최종명
광저우


골목도 옛 생활모습 그대로 많이 남아 있다. 약재를 바닥에 놓고 말리고 있기도 하고 여러 사람이 모여 마작을 하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띈다. 집 창문을 이용해 빨래 말리는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다.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오면 광저우를 흐르는 강인 주장(珠江)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그런데, 길을 잘못 찾았다. 원래 아편전쟁(鸦片战争) 이후 영국 등 열강에게 할애된 땅인 샤몐다오(沙面岛)를 가려고 했다. 택시를 탔다. 가까운 곳이니 금방 찾겠다 싶었는데 문제는 내가 하는 ‘샤몐다오’ 발음을 전혀 못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막무가내로 모른다니 참 답답하다.


날씨는 또 왜 이렇게 더울까. 정말 숨이 막혀 걷기도 힘들다. 갑자기 LG중국법인에 근무하신 최우영 총감(总监)이 생각나, 그에게 전화를 했다. 광저우에 오면 꼭 연락하라는 다정스런 멘트가 생각났던 것이다. 광저우에서 사업체를 꾸려가는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 마침 8월 15일은 광복절인데 출근을 했단다. 중국 파트너 2명이 회사를 방문해 회의 중이어서 한참을 기다린 후 근황을 들었다. 또 중국 전문가다운 사업감각에 대해서도 조언을 들었다.
 

갑자기 전화를 해서인지 선약이 있어 아쉽게 헤어졌는데 채 5분도 되지 않아 전화를 하더니 그냥 보내기 서운해서 안되겠다고 저녁을 사준다. 게다가 2차로 양고기 꼬치에 삼합주까지 마셨다.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삼합주는 최총감과 함께 하는 중국 비즈니스포럼의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즉, 맥주와 얼궈터우(二锅头), 중국 사이다인 쉬에삐(雪碧) 3가지를 섞어 마시는 것. 두주불사 애주가들에게는 환상적인 조합과 절묘한 배합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술이다. 양고기 안주와 잘맞아 서민적인 술이라 하겠다.
 

  
양고기 꼬치와 삼합주(맥주,사이다,중국술)
ⓒ 최종명
양고기


오랜만에 과음을 했다. 겨우 민박집을 찾아갔다. 광저우의 길이 매우 복잡해 택시를 탔는데 운전사도 모르고 나도 몰랐다. 민박집 주인이 택시까지 타고 와서 데려갔다. 정말 신세를 너무 많이 졌다.
 

이 민박집 주인은 동생과 함께 동대문에서 의류사업을 하는데 광저우에서 대부분 제품들을 디자인하고 주문한다. 광저우에 상주해야 하기 때문에 아파트를 세내어 아예 민박집까지 겸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어를 거의 모르면서도 의류 샘플을 사 와서 제품단가를 뽑고 한국으로 가져다가 판매하는 무역 일을 참 옹골차게 하는 사람이다. 친해져서 가끔 전화를 해주는 정감 어린 사람이어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러고 보니 션전(深圳)의 한국인 민박집 주인과는 더욱 깊은 친분을 쌓았다. 8월 16일, 광저우(广州)에서 급행열차를 타고 션전(深圳)에 도착해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에 묵었다.
 

정말 훌륭한 아파트다. 창문을 열면 홍콩과 이어진 바다가 보이고 구름이 멋진 하늘이 펼쳐진다. 바다에는 항공모함이 거대한 자태를 뽐내고 있기도 하다. 서서히 노을이 졌다. 항구에서는 밤샘 하역작업을 하기 때문에, 그 환한 불빛이 밤새 붉게 빛났다. 장관이다.
 

  
션전의 홍콩 앞바다
ⓒ 최종명
션전


저녁을 장만하는 조선족 동포 아주머니는 거의 요리사 수준이다. 요리의 내용이 거의 특급만찬과도 같다. 6개월 일정으로 취재 여행 중이라는 것에 주인 아저씨와 나는 금방 친해졌다. 그는 체력 보강해야 한다며 비싼 고기 요리를 해주면서 먹고 싶은 요리를 다 이야기하라고 한다.
 

밤에는 거실에서 7080 노래를 들으며 맥주를 마셨다. 편안한 마음으로 마시는 맥주는 여독을 풀기에 딱 좋았다. 오디오가 좋아서 그런지 마음이 잔잔해진다. 바닷가 스카이라운지가 따로 없다. 역시 중국 사업을 10년 가까이 한, 저력이 느껴지는 주인과 대화를 했다. 나 역시 한동안 홀로 다녔고 주인 역시 혼자 이곳에서 지내니 서로 말이 잘 통했다. 한여름임에도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정말 시원해서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 들 정도였다.
 

‘비와 찻잔을 사이에 두고’ 노래가 몇 번 반복되니 새벽 0시가 거의 됐다. 그때야 비로소 방으로 들어갔다. 창 밖에서 바다를 바라보니 불이 난 듯했다. 검붉은 하늘, 홍콩을 마주보고 밤새 작업중인 모습까지 션전은 정말 떠오르는 도시라 부를 만하다. 새벽, 밝은 빛을 따라 점점 환해지는 바다 풍경 역시 상큼하다.
 

  
션전의 앞바다 하늘의 야경 모습
ⓒ 최종명
션전


다음날인 8월 17일, 션전(深圳) 동쪽 편에 있는 따메이샤(大梅沙) 해변을 찾았다. 버스를 타고 넘어가는 길이 마치 부산 해운대에서 송정 해수욕장으로 넘어가는 길과 비슷해서 정겹다. 멀리 보이는 따펑완(大鹏湾)에 푸른 물결이 넘실거린다. 해수욕장으로 들어서니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고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해변에는 우뚝 솟아 있는 재미난 조형물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바닷바람에 흩날리듯 동작이 서로 다른 몇 개의 조형물들이 어디론가 날아갈 듯한 모습으로 서 있다. 이것이야말로 이 해변의 자랑이라 할 만하다.

  
션전 따메이샤 해수욕장에 서 있는 조형물
ⓒ 최종명
션전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아래서 푸른 바다 속으로 뛰어들고 고무튜브를 타고 모래 찜질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야자수가 바다 옆에 늘어서 있는 전형적인 남방 해변의 모습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민박집 부근에 있는 바닷가로 왔다. 산책로이기도 하고 조깅 코스이기도 한 하이징루(海景路)에는 러시아 항공모함인 민스크(明思克)가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이 샤터우쟈오(沙头角) 바다에 자리 잡은 이 세계에서 5번째로 큰 러시아 중고 항공모함은 1978년 태평양에 배치돼 운영돼 왔다.
 

  
션전 앞바다에 정박해 있느 민스크 항공모함의 전경
ⓒ 최종명
션전


이후 냉전시대가 끝나자 그 효율이 떨어진 항공모함은 1993년 한국의 모 기업이 해체 후 고철로 판매하기 위해 사들였으나 환경 등 문제가 고려돼 다시 1998년에 중국 기업에게 넘어가게 된 것이다. 2000년 션전 앞바다에 정박되어 군사공원으로 개장됐다가 파산을 맞게 되었는데, 2006년에 이르러 쭝신(中信) 그룹이 다시 사들여 지금에 이르게 됐다.
 

지금도 항공모함 내에는 다양한 전시실이 마련돼 있으며 다양한 공연도 벌어지는 관광코스이기도 하다. 고철 덩어리를 사다가 공원화하는 마인드가 재미있다. 그러나, 생각보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션전 민스크 항공모함이 있는 산책로에서 뛰어노는 아이
ⓒ 최종명
션전

항공모함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해변 도로에서 거대한 위용을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정말 274m에 이르는 긴 항공모함이 홍콩을 마주보고 있는 바다 가운데 자리 잡고 있으니 볼만하다. 항공모함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10위안을 받는 사진사가 오가는 사람들에게 농담을 걸기도 한다. 한 가족이 사진을 찍으며 산책로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다. 한 꼬마 여자아이기 오빠랑 뛰어다니면서 장난을 치고 논다.

날씨는 여전히 덥다. 민스크 항공모함 세계 입구를 거쳐 서둘러 민박집으로 들어갔다. 마침 헬스를 마치고 주인도 돌아와 있다. 더운 날엔 그저 아파트 창문을 타고 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쉬는 것이 최고인 듯하다.
 

션전에서 일하는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출장을 다녀와서 지금에야 연락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갑자기 사장과 함께 일 때문에 나가니 저녁에 마치는 대로 연락을 하겠다고 한다.


1년 동안 중국어를 공부하면서 만난 후배여서 션전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녁이 늦어도 연락이 없고 그 다음에도 잘 연락이 되지 않는다. 바쁘면 좋지 싶어서 다시 연락을 하지 않았다.
 

밤이 되니 다시 멋진 홍콩 앞바다가 출연한다. 정말 밤이 지지 않는 항만. 떠오르는 신흥도시라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