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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베이징에 갔을 때 예전에 중국어 공부를 도와준 중국 여학생을 오랜만에 만났다. 베이징에 갈 때마다 가끔 만나는데 이제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다. 한 식당에서 차를 주문했는데, 색깔이 형형색색 너무 아름답고 차 속에 들어간 것들도 궁금해서 물어봤다. 바로 바바오차(八宝茶)라 불리는 차로 중국 식당에서 요리 먹기 전에 먹으면 속을 미리 달래놓기에 좋다.

아, 이 친구 이름은 류밍위에(刘明月)다. 우리 말로 하면 류명월이다. 처음에 이름을 듣고 약간 웃기긴 했지만 중국어 발음은 참 예쁘다. 성조가 2성에서 살짝 올랐다가 탁 끊기듯 떨어지는 발음이다.
 
8가지 재료가 들어가서 심신 건강에 좋은 차, '팔보차'라고 한다. 이 팔보차는 옛날 실크로드 부근에 거주하던 회족들이 즐겨마시던 전통 차라고 한다. 중국 남방 지방에서는 녹차 생산이 원활한데 비해 아무래도 서북방면에서는 쉽게 비쌌던 차를 먹기 어려웠을 듯하다. 그래서, 오히려 산과 들에 많이 나는 재료들을 섞어 보양을 위한 차로 상용했을 듯 싶다.

색깔이 예뻐 동영상을 찍으며, 중국어도 배울 겸 명월이에게 물었다. 약효 하나하나 다 만병을 고칠 듯한 약재들이 서로 조화롭게 둥둥 떠 있는 모양이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겁고 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이 차에 들어간 재료는 먼저 홍자오(红枣)가 눈에 띤다. 말린 대추를 말하는데 그 색깔이 붉다. 이시진(李时珍)의 <본초강목(本草纲目)>에 따르면 '비장이 허약(脾虚弱)'하거나 '기혈이 부족(气血亏虚)'할 경우에 효과가 있다고 하면서, '하루에 대추 3개를 먹으면, 얼굴 색이 좋아지고 늙지 않는다(一日吃仨枣,红颜不显老)'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쥐화(菊花)도 들어간다. 국화인데 잎이 거꾸로 뒤집혀 있다. 이 팔보차에서 가장 차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 국화이다 보니 팔보국화차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국화를 차로 마시면 '더위를 삭히고(消暑)', '체내 분비를 촉진하며(生津)', '풍을 제거하며(祛风)', '목구멍을 맑게 하며(润喉)', '시력을 보호하며(养目)', '술독을 해독하는(解酒)' 기능을 지녔다고 한다.

구기자는 거우치(枸杞)라고 부른다. 대추보다는 작고 가늘고 빛깔도 더 연하다. <본초강목>에 나오는 자료를 보니 '신장을 강하게(滋肾)' 하고  '폐를 싱싱하게(润肺)' 하며 '눈을 밟게(明目)' 한다고 나온다.

산자(山楂)라고 하는 것은 '산사나무 열매'라고 하는데, 사전에 보면 또 '풀명자 열매'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잘 모르겠다. 사진을 찾아보니 연한 보라빛 도는 붉은 색깔을 띠는 오묘한 열매인데, 아마도 그것을 말린 것인가 보다. 산앵도와 비슷해 보이는데  '음식 소화(化饮食)'에 좋고, '고기 체증을 풀어(消肉积)' 주며, '기생충(症瘕)' 제어하고, '만성 위염, 비장염, 위산과다(痰饮痞满吞酸)'에 좋으며, '혈관이 막혀 통증(滞血痛胀)'이 올 경우 약효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차 잔 한가운데에 동그랗게 생긴 것은 구이위엔(桂圆)이라 부른다고 한다. 이것은 중국에서 보통 '용의 눈(龙眼)'이라 부르는 열매로 우리는 아마도 리즈(荔支)라고 하면 아는 사람이 좀 있을 듯하다. 각 지방마다 그 이름이 아주 제각각으로 다르게 부르는데, 명월이는 구이위엔이라 했다. '심장과 비장을 강하게 하며' '기혈을 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면증(失眠)'이 있거나 '건망증(健忘)', '잘 놀라거나(惊悸)', '어지럼증(眩晕)'이 있으면 상용하면 좋다고 한다.

그리고, 이 약재 아래에는 녹차(绿茶)가 깔려 있다. 녹차는 종류가 워낙 많아서 전문가가 보면 모를까 알기 쉽지 않다. 게다가 이미 물에 풀어지면 더욱 그렇다.

이처럼 좋은 약효를 지닌 약재들이 한꺼번에 보약처럼 만들어진 음용차이니 짜고 맵거나 해서 부담스런 중국요리를 먹기 전에 입안이나 목, 위를 달래놓기에 딱 좋다. 중국사람들은 여기에 주로 빙탕(冰糖), 즉 얼음설탕을 넣어서 녹인 후 달게 먹는다. 여기에서는 넣지 않았는데, 그밖에도 벽오동과 열매인 팡다하이(胖大海)나 인동초라고 하는 진인화(金银花), 도라지껍질인 제피(桔皮), 탱자나무인 거우쥐(枸橘), 귤껍질인 천피(陈皮)나 인삼 등을 넣기도 한다.

팔보차는 그야말로 제 몸의 상태와 옛 선조들의 의학지식을 동원해 잘 마시면 몸과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상용 음료라고 보면 좋겠다. 오랜만에 고리타분할 지는 모르나 재미난 차와 약재에 대해 공부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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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이는 신문방송학과 대학원생일 때 만났다. 한국 언론과 한류에 관심이 많아 자연스레 서로 지식을 교류할 수 있었다. 더불어 대화하는 도중에 중국어도 배우는 일석이조를 준 친구다. 지금은 베이징의 한 구(区)의 홍보팀에서 일하고 있다.

고향이 동북의 무단장(牡丹江)이고 하얼빈에서 헤이룽장(黑龙江)대학을 졸업했다. 어려서 자랄 때 조선족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살았다고 하는데, 사실 명월이라는 이름이 꽤 '조선'적이지 않은가. 어떤 선배가 명월이를 딱 보더니 아마도 아주 오래전에는 북방계통 민족의 혈통을 받은 몽골반점이 있는 비한족일 것이라고 확신하며 말한 적이 있다. 오랜 역사를 거치며 한족화되기도 했던 중국, 민족 사이의 전쟁이나 무역 등 교류를 거치며 민족 사이에 많은 융합이 있었으리라.

하여간, 옛 친구에게 팔보차를 배운 게 생각나서 글을 썼다. 아래에는 베이징에서 명월이와 함께 라오서차관, 798예술구, 융허궁(라마교사원), 구이제(簋街) 등을 다니며 영화도 보고 문화에 대해 토론하고 중국어를 배우던 때가 생각났다.

명월이 참 예쁘죠? 그리고 참 착하고 반듯한 친구랍니다. 남자친구가 아직 없는데, 후배 중에 아무리 눈 씻고 봐도 소개해줄만한 친구가 많이 없네요. 베이징에서 공부하는 한국 후배를 소개해 주려고 했었는데 지난번에는 시간이 잘 안 맞아서 실패. 하여간 똘똘하고 꿈도 야무진 명월이랍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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