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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중국전문가들과 만나면 늘 즐겁다. 1월 29일 저녁 '상해탄' 포럼 신년 첫 모임에서 각양각색의 중국문화와 만났다. 술자리를 빛내는 중국 술과 안주가 풍성한 자리였는데, 이곳에도 다양한 중국의 일상생활과 만날 수 있었다.

대림역 부근의 중국인이 주인인 쓰촨위엔양(四川鸳鸯) 식당. 가져간 술을 마셔도 된다. 모임회원들이 직접 손에 들고 온 2가지 종류의 중국 술부터 화기애애한 중국문화 토론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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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아주 예쁜 이 술은 중국 술 중에서 독특한 향기가 돋보이는 황쥬(黄酒)로 뉘얼홍(女儿红)이라 불린다. 저장(浙江) 샤오싱(绍兴)에서 만들어지는 술로서 샤오싱황쥬(绍兴黄酒)라고도 하며 원래 술병에 꽃무늬가 생겨지기에 화조주(花雕酒)라고도 한다. 샤오싱은 중국 최고의 문학가로 손꼽히는 루쉰(鲁迅)의 고향으로 예전에 중국발품취재 중에 이곳 샤오싱에서 이 뉘얼홍을 만나 그 술의 전래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이 술은 재봉사가 아들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딸을 낳게 됐고 서운한 마음에 아들을 낳으면 축하연에 내놓으려고 빚은 술을 그냥 나무 아래 파묻었다. 이 딸은 손재주가 아주 좋아 아버지 가업을 이어받아 크게 번창시켰으며 아버지의 제자와 결혼하게 된다. 피로연에서 문득 20여년 전 묻었던 술단지 생각에 매화 향기 가득한 나무 아래를 팠더니 향기 좋은 냄새가 진동을 했다. 사람들이 너무나 맛 좋은 이 술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 이름을 '딸을 위한 술'이라고 지었다고 전한다.

뉘얼홍은 곡주에 매화향기가 담긴 술이다. 그 맛이 왠만한 과일주보다 훨씬 강해 사람에 따라서는 쉽게 적응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중국사람들은 이 술을 데워 먹기도 하는데 이날 이 예쁜 술항아리에 담긴 750밀리리터를 여럿이서 단숨에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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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고의 명품 백주인 수정방이다. 얼마전에 이 쓰촨 청두(成都)에서 생산되는 이 술을 소개한 적이 있다. 두보의 초당과 제갈량의 무후사 등 명승지가 술병 바닥에 도안된 이 술은 아마도 중국 소매점에서 사는 술 중에서 가장 비쌀 것이다.

52도 도구를 나누어 마시려면 격에 맞는 술잔이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 술을 가져온다고 하니 한 회원이 중국 최고의 옥으로 제작되는 술잔을 들고 왔다. 바로 야광배(夜光杯)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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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광배는 중국 서북지방인 간쑤(甘肃) 성 쥬취엔(酒泉) 특산물로서 현지에서 생산되는 고급 옥으로 만든 술잔이다. 순 옥으로 곱게 제조된 이 술잔은 가볍기가 솜털 같고 표면이 맨들맨들해 마치 유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은 '달 아래 홀로 마시며(月下獨酌)'라는 시에서 야광배로 유명한 쥬취엔을 노래했다. '만약 하늘이 술을 좋아하지 않았으면, 주성이 하늘에서 빛나지 않았으리(天若不爱酒,酒星不在天)' 라고 시작해 '만약 땅이 술을 좋아하지 않았으면, 땅에는 주천이 없었으리(地若不爱酒,地应无酒泉)','천지가 술을 좋아했거늘, 술 좋아하는 게 어디 하늘에 부끄러우랴(天地既爱酒,爱酒不愧天)'라고 했다. 쥬취엔은 이렇게 술을 빚대는 곳이니 야광배 역시 특산이라 어울릴 만하다.

이 야광배를 가져온 회원이 쥬취엔의 당 간부로부터 선물 받은 것이라고 한다. 한 세트에 8개의 잔이 담겨져 있는데, 좋은 술이 등장하면 꼭 이 야광배를 가지고 나온다. 서로 궁합도 맞지만 술과 잔의 조화야말로 술 맛도 즐기고 잔의 기품도 느끼는 앙상블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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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먹는 훠궈(火锅), 즉 중국 쓰촨 지방의 샤브샤브 요리이다. 원앙새처럼 다정하게 서로 양쪽 나누어 매운 맛과 담백한 맛대로 먹는 요리. 양고기 소고기는 물론 야채와 버섯, 해물과 생선 등 하늘과 땅, 바다와 강에서 나는 모든 재료를 다 먹을 수 있는 요리이다.

워낙 대중적인 요리이니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매니아 층이 형성됐다. 중국 수교 17년 동안 중국을 어떤 형태로든 다녀온 사람들과 조선족 동포나 유학 온 중국사람들을 중심으로 훠궈는 점점 우리나라에서도 대중적인 메뉴로 자리잡고 있는 느낌이다. 특히, 중국 바이쥬와 잘 어울리고 겨울철 보양식으로도 충분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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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이 가지고 온 웅담엑기스이다. 조선족 동포들이 많이 사는 옌볜(延边)에서 만든 것인데 이렇게 캡슐 형태로 제작된 이유는 중국 바이쥬 한병에 이 웅담 한 병을 타서 마시기 위해서이다. 옌볜과학기술대학교 한국인 교수님에게 선물 받은 것인데 이날 모임을 위해 특별히 가져온 것이다.

차마 수정방과 섞어먹기에는 사실 수정방은 너무 좋은 술이라 아껴서 타먹지 않다가 나중에 술이 부족했기에 식당에서 술 한병을 따로 주문해 섞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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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吉林)에서 만든 술인 다가오량(大高粱)이다. 이 술도 그냥 마시기에 그다지 나쁘지 않지만 웅담을 탔더니 색깔이 황색으로 변했다. 술맛도 처음에는 강한 웅담(?) 맛이 나오더니 점점 고량주의 진한 향과 어울려 마시기에 부담 없이 술술 넘어갔다. 아마도 점점 취기가 오르는 것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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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요즈음 중국 션전(深圳)에서 생산관리를 하느라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온 회원이 가져온 빙랑(槟榔)이다. 이것은 종려나무과에 속하는 야자수나무 열매로 만든 것으로 구충제로 쓰이기도 하는데, 군것질을 위한 과자로 만들어 판다.

특히, 타이완(台湾)사람들이 많이 먹는데 이 팡거(胖哥)라는 브랜드는 후난(湖南)에서 만든 것이다. 식품회사 이름 팡거는 '뚱보형'이란 말인데 캐릭터가 순박하면서도 촌스럽다. 박하 향이 아주 진한 것이라  생각하면 되는데, 너무 많이 먹으면 호흡곤란이 올 수도 있다. 이 빙랑의 이름은 그래서인지 '모호하다' 또는 '어리어리하다'라는 뜻의 후투(糊涂)라는 말을 썼다. 먹으면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강한 맛이니 브랜드 컨셉이 재미있다.

뉘얼홍을 마실 때 이 빙랑을 술잔에 넣어 마시면 강한 매화 향기가 다소 중화되는 맛이다. 물론 빙랑의 격한 맛도 함께 녹아버리는 듯 그 맛이 오묘하다. 서로 여러가지를 나누어 가져오니 색다른 시도도 해보고 즐겁게 웃어도 본다.

뉘얼홍과 수정방으로 술 이야기를 나누고 훠궈를 안주 삼아 야광배에 술 따라 마시면서 웅담과 야자열매 이야기까지 우리 중국 전문가 모임은 중국문화와 뗄레야 뗄 수 없다.

한 나라의 생활과 역사, 문화를 잘 알아야 비즈니스에도 도움이 되고 진정한 현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중국 사업을 하는 포럼, 공부하는 커뮤니티에서는 만나서 술을 마셔도 이야기가 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