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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SBS <카인과 아벨> 드라마  사이트 월페이퍼


<카인과 아벨> 2회에 등장한 토루. 나는 '총 맞은 것처럼' 놀랐다. 아벨(소지섭 분)이 닝샤회족자치구 텅그리 사막에 누워 '총 맞은' 채 대사를 읊조리며 시작된 <카인과 아벨>이 2회에는 본격적으로 중국 현지 모습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중국말로 투러우(土楼)라 불리는 토루가 우리 드라마에 등장하다니 정말 놀라자빠질 일이 아닐 수 없다. 토루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길다.


우선, 드라마에서 토루가 등장하는 배경이 궁금했다. 아벨이 의료자원봉사를 했다는 설정, 병원 부원장(김해숙 분)의 지시에 의해 모종의 음모가 벌어지는 과정에서 한지민과의 러브라인을 이어주는 '여행' 코스처럼 등장한 것은 산뜻해보였다. 그런데 왜 토루일까. 작년(2008년 8월)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세계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이 작가를 흔들었을까. 재미있는 발상이 아닐까 싶다.


드라마 멘트로 거론된 토루는 푸젠(福建)성 난징(南靖)이다. 출발지인 상하이(동방명주가 나왔다)에서 난징까지 가려면 기차로는 푸젠성 서남부의 역사문화도시인 장저우(漳州)까지 가서 다시 버스를 타야 한다. 아벨과 영지(한지민 분)는 침대칸인 뤈워(软卧)를 타고 갔고 비록 버스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국적인 길을 걷기도 했다.  


토루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작가는 토루가 보여주는 '중국 답지' 않은 풍광, 공동체 형태로 살아가는 독특한 문화가 오히려 기존의 '중국적'인 서민공간이 진부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정말 훌륭한 선택이다. 바로 토루야말로 중국 한족 내에서도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 생활 스타일을 지닌 객가족(客家族)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토루와 객가족가 바로 내가 이 드라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다. 토루에서 살아온 객가족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몇 배 이상 중요한 연구아이템이다. 중국 및 동남아 일대(중화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을 상당 부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며 특히 '돈'에 대해서는 '중국의 유태인'이라고 할만큼 대단하다. 그러니, 관심 사항이 아닐 수 없다.


객가족이라고 할 때 '족(族)'은 민족 개념이라기 보다는 '족속'이나 '부족'에 가깝다. 이처럼 한족 내에서 오랜 시간동안, 수 많은 원주민 부족들이 한족으로 동화됐다. 춘추전국 시대 이전부터 시작된 부족집단들이 한족화 과정을 설명하려면 너무 길어서 지금 말하기는 어렵다.


그 중 하나가 객가족이다. 그런데, 이들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역 원주민이 아니라 황하(黄河) 유역에서부터 남쪽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중원지방으로부터 남하한 먀오족(苗族)이 지금도 소수민족인 점과도 다르다. 일부 학자들이 고구려와 관련됐다거나 북방민족일 지 모른다거나 하는 것은 역사적 근거가 전혀 없는 이야기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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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가 거주 지역 분포도 푸젠의 룽난, 광둥의 메이저우, 장시의 간저우 3곳(빨강원)이 

주요 객가 거주 지역이며 드라마의 난징(연두원) 일대에 토루가 많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주요지역 중 하나이다!


중원지방의 한족 일부가 중국 서진(西晋) 말기 이후 북방민족의 강력한 남하와 맞물려 수차례에 걸쳐 서서히 남진했다는 것이 정설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객가인들은 역사적으로 5차례의 대규모 천도(迁徒)가 이뤄졌으며 3차례에 걸친 발전과정을 통해 푸젠(闽), 광둥(粤), 장시(赣) 성 3곳에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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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성 간저우 객가풍경원에 있는 웨이룽우(토루의 다른 이름)


남진했다는 것은 '거룩'한 말이고 사실은 살기 위해 도망친 것이며, 가는 곳마다 그 지역 원주민과도 쟁탈전을 벌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토루와 같은 요새를 짓고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토루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는 것이고 이주한 지역 실정에 맞게 다양한 형태의 건축양식이 등장하게 되고 그 이름도 약간씩 다르다.

외벽은 15미터 이상의 토루로 성벽처럼 쌓아서 높고 내부는 3층 이상의 복층 구조로 원형을 따라 연결된 복도에서 사방의 시야를 확보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복도를 따라 문을 열고 들어가면 비슷한 방 구조마다 공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지방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외침에 대비한 공동체 생활을 위한 건축구조라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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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투러우투어(tuloutour)닷컴


드라마에서 보면 토루 한가운데에 모여있는 현지인들의 얼굴이 남방사람들의 모습과 사뭇 달라보였다. 게다가 의료 혜택도 받지 못하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오지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드라마를 모습을 보면서 서진 말기, 당나라 말기, 북송 및 남송 시대,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 청나라 말기까지 남방으로 이주한 중원사람들의 역사가 오버랩되고 있었다.


이름조차 '객(客)'이니 얼마나 서러웠을까. 객가, 그 말은 어떻게 생겼을까. 청나라 함풍(咸丰)제 시대 1854년 광둥 홍건군(红巾军) 폭동이 그 시작이었다. 사회적 불만을 품은 농민들이 홍건군에 가담하게 되는데 이때 이주민 지주 아들이 홍건군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주민들은 모병을 해 청나라 군대와 합세해 난을 진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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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성 간저우에 있는 객가남방이주 기념제단


이후 이주민 지주들은 관군을 등에 업고 기존 원주민 토지를 약탈하는데 토착지주들이 ‘외지인이 관을 등에 업고 토지를 약탈한다(客民挟官铲土)’며 들고 일어나 보복을 하게 되니 12년 간에 걸친 이전투구인 ‘토객계투(土客械斗)’가 시작된다. 원주민 지주들이 축객(逐客)을 명분으로 들고 일어나고 이에 대응해 이주민들도 군대를 만들고 병영을 세우는 등 대규모 싸움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북방에서 이주해 온 세력을 객가라고 부르게 됐다.


청나라 말기를 떠들썩 하게 한 태평천국의 난에 당시 소외돼 있던 객가인들이 대대적으로 합류하게 된다.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킨 홍수전(洪秀全)과 공화주의자 쑨원(孙文)과 그의 부인인 쑹칭링(宋庆龄)도 객가인이다. 덩샤오핑, 주더 등 중국 대륙을 움직였던 지도자들, 전 타이완 총통인 리덩후이, 싱가포르 총리 고촉둥, 태국총리 탁신, 필리핀 대통령 아키노 역시 그렇다. 경제권에서는 아시아 최고 재벌이라는 홍콩의 리자청을 비롯 화상(华商)의 상당수 이상이 객가인이다.

토루에서 진료를 하고 차와 술을 마시며 연회를 하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다. 용춤(龙舞)을 추는 사람들도 드라마의 품격을 유지하고 있어 즐겁다. 한쪽에서는 병원의 피 비린내 나는 암투와 수술이 난무하는 가운데 한적한 시골 정취와 사람 냄새가 묻어나는 토루는 더욱 드라마 속의 명품 장면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쪽을 엮고 흑색을 칠한 덮개를 장착한 독특한 형태의 배인 우펑선(乌篷船)을 타고 있는 영지의 모습도 이국적인 장면이다. 상하이 외곽 어디인 듯 한데 앞으로 장강의 물줄기로 인해 생긴 하천을 오가는 장면도 많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중국의 최남단 토루와 서북지방의 사막까지 볼거리가 풍성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중국이 배경이 될 지 모르겠다. 결국 병원 내 암투 등(영지 가족의 탈북(?) 에피소드가 궁금하지만)과 주인공들의 애정관계로 흘러가겠지만 드라마 속에서 중국을 보고, 또 배우는 계기가 되니 나쁘지 않다. 이렇게 하면서 틀린 것은 고치고 중국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면야 오늘도 내일도 드라마 <카인과 아벨>을 위해 텔레비전을 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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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전통춤인 용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