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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18] 뤄양에서 핑야오까지 기차여행 14시간

이제 싼시(山西)성으로 옮기자. 어제 오후 5시 조금 넘어 갔더니 예상대로 이미 퇴근했기에 사지 못했던 터라 5월 8일 아침, 눈 뜨자마자 기차표를 샀다. 5시가 공식 퇴근시간. 대신에 아침은 8시에 시작한다.

중국은 대학교도 1교시 수업이 대체로 8시에 시작한다. 베이징에서 처음 중국어 수업을 들을 때 한 보름 정도 고생한 기억이 난다. 시차에다가 더해 무려 2시간을 일찍 서둘러야 하니 야행성 생활형인 사람은 진입장벽이 조금 높다. 1시간을 일찍 시작하니 하루가 굉장히 길게 느껴진다. 그만큼 공부할 시간도 많다.

그런데, 중국에 중국어 연수를 오는 한국 유학생들이 매일 저녁과 밤 사이 술을 마시고 세수도 하지 않고 수업에 들어오는 것을 많이 봤다. 안타까운 일이다. 라오스(老师)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여우허두어러바(又喝多了吧)' 또 술 취했냐는 말인데, 일주일이면 서너번은 꼭 듣는 불쾌한 말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중국 어학연수 잘하는 노하우'를 쓰려고 준비했다. 나야 뭐 중국어보다는 중국문화와 생활을 배우는 게 더 목적이어서 베스트하지는 못했지만 조만간 정말 베스트로 100점 만점의 어학연수를 한 사람의 연수기를 소개하고 추천하고 싶다.

다음 목적지는 2006년 5월 다녀왔던 핑야오(平遥). 기차가 서지 않는다고 해서 타이위엔(太原)행 표를 샀다. 저녁 8시 2분 출발이다. 그 사이 중국에서 아마 가장 오래된 불교사원인 바이마쓰(白马寺)에 다녀올 생각이다. 그렇게 표를 예매했다.

기차역에 짐을 맡기고 버스를 기다렸다. 역 앞에 56번 버스가 바이마쓰 앞까지 간다. 11시경 한산한 시간이라 사람이 많지 않다. 동쪽으로 약 40분 정도면 도착한다.

▲ 백마사 표 사는 곳
ⓒ 최종명

바이마쓰는 동한시대 서기 68년에 세워진 불교사원이다. 불교가 중국으로 들어온 후 처음으로 세워진 사원이라 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당시 한나라 명제(明帝)가 어느 날 꿈에서 금빛 찬란한 선인이 황궁으로 들어오는 꿈을 꿨는데 다음 날 신하들에게 물으니 모두 천축의 '부처'라 했다. 당시 뤄양은 동한의 수도였고 천축(天竺), 인도에서 불경을 가지고 온 승려를 위해 황제의 명으로 세웠다고 전해진다.

▲ 백마사 안에 있는 말 조각상
ⓒ 최종명

당시 두 마리 백마에 불경을 싣고 왔다고 해서 사원의 이름이 붙여졌다. 그래서 사원 입구는 물론이고 곳곳에 백마상이 서 있다.

▲ 한국에서 만든 기념비
ⓒ 최종명

▲ 일본에서 만든 기념 동상
ⓒ 최종명

또한, 불교가 우리나라와 일본으로 전파되고 3국 모두 불교를 숭상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사원 안에는 한국 불교계가 세운 비석과 일본 불교계가 세운 동상이 있다. 아마도 바이마쓰의 역사가 가진 상징적 의미가 높아서일 듯하다.

▲ 백마사의 한 인상적인 보살 상
ⓒ 최종명

여느 불교사원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독특한 것은 사원 제일 안쪽에 있는 피루꺼(毗卢阁) 벽면에 불경인 '사십이장경(四十二章经)'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최초의 불경 번역인 셈이다. 아쉽게 사진을 못 찍게 한다.

▲ 비루각으로 들어가는 입구 청량대
ⓒ 최종명

한 가운데 동근 문을 통과해 되돌아 나오는 길이 참 멋지다. 들어올 때는 대웅전을 비롯해 불상들을 보고 살피고 또 다른 건물로 이동하고 하느라 정신 없이 지나왔으니 좌우로 길게 뻗은 평탄한 길이 그렇게 길지 몰랐던 것이다.

바이마쓰를 뒤로 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돌아왔다. 오후 3시니 기차를 타려면 아직 다섯 시간이나 남았다. 밤 기차를 타야 하니 우선 고달픈 발을 좀 쉬게 해야겠다. 발 안마 1시간(58위엔) 하고 30분 정도 차 마시며 푹 쉬니 발걸음이 한층 가볍다.

밤 기차를 10시간 넘게 타야 하니 좀 준비를 하자. 예전에도 베이징에서 허페이(合肥)까지 밤 기차 여행을 한 경험 상 잠을 푹 자기 위해서는 약간의 음주가 나쁘지 않다. 문제는 처량하게 혼자 술을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고민 끝에 깔끔한 스촨(四川) 요리 집으로 들어갔다. 푸우위엔(服务员)과 상의 끝에 탕런씨앙라씨아(唐人香辣吓)를 주문했다. 일종의 샤브샤브인 훠궈(火锅)인데, 좀 다른 것은 기름이 없이 그저 볶기만 하는 씨앙궈(香锅)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훠궈는 살짝 데쳐서 꺼내 먹는 것에 비해 씨앙궈는 미리 주문한 갖가지 야채, 고기, 버섯, 해산물 등을 매운 고추와 갖가지 재료를 한데 넣어 볶아서 내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 탕런씨앙라씨아는 그 중간 형태라고 보면 되고 주 재료가 새우인 것이 특색이다. 요리를 주문하고 술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푸우위엔이 천천히 생각하라고 하면서 재촉하지 않아서 편하다. 스촨요리는 바이지여우(白酒)가 제 격이라 이미 작정하고 들어오긴 했지만 혼자 마시기에 부담이 많다. 먹다 남으면 가져 가든가 하지 생각하고 베이따창(北大苍)을 주문했다. 중국 동북에서 만든 술이라 특유의 향이 적고 부담이 덜하다. 알코올 도수가 아마 48도. 보통 38도나 52도인데.

시간도 넉넉하니 술도 천천히. 요리가 나오고 매운 맛이 코를 쏘기 시작하자 술도 빠르게 적응이 된다. 긴장도 풀리고 먹고 마시는 속도도 알게 모르게 변한다. 오랜 만에 맛 보는 맵고 독한 만찬에 기분도 좋아졌다. 그런데 이 많은 양을 언제 다 마시지. 남으면 보관하라고 하지 뭐. 나중에 다시 뤄양에 오면 찾겠다고 하고.

옆자리에 앉은 일행들이 아는 척을 한다. 혼자 중국 술을 마시니 당연히 눈길을 끌었겠지. 한 사람이 눈짓을 하면서 자기 잔을 들더니 같이 마시자는 제스처다. 그래 깐(干)! 그렇게 한 걸음 정도 떨어져서 '술 인사'를 하면 친해진다. 곧이어 그 옆자리 사람도 또 그렇게 권한다. 뭐 기분 좋네.

두 사람을 불렀다. 좀 빼더니 온다. 내 잔 한잔 받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480밀리리터를 다 비웠다. 고향이 스촨인데 지금은 푸지엔(福建)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이었다. 사업차 왔다가 저녁식사를 하는 중인 것이다.

내가 중국을 여행 중이라 하니 정말 반가워 하며 스촨 자랑을 많이 한다. 스촨을 다 보려면 1년도 모자란다고 하면서. 여행을 한다고 하면 아는 사람들도,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여러 곳을 소개한다. 그걸 다 돌아다니려면 아마도 몇 년 걸리지 않을까 싶다. 하여간 고마운 사람들이다. 누군가 말하길 여행은 곧 '우정'이라 했던가. 낯선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짧은 정을 나누는 맛이 베이따창과 스촨 씨앙라씨아보다 더 진국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들도 가고 나도 계산(92위엔)하고 일어섰다. 또 뒤에 13킬로그램, 앞에 5킬로그램을 나눠 지고 기차를 탔다.

잉워(硬卧) 차량에 탔고 씨아푸(下铺)에 자리를 잡았다. '딱딱한 침대'라는 잉워에는 1칸 6인이며 상 중 하로 침대가 마주 보고 나누어진다. 아래가 비싸고 맨 위가 싸다. 장거리 여행을 하는 일반 서민들이 주로 이용한다. 좀 여유가 있거나 공무나 출장을 다니는 사람들은 더 좋은 '푹신한 침대'인 루안워(软卧)를 탄다. 1실 4인이며 침대가 상 하로 두 개씩이다.

옆자리 아가씨와 그녀의 남자친구랑 몇 마디 나누며 맥주 캔 하나 더 마시니 이내 술 기운으로 잠이 들었다. 새벽 5시경 잠에서 깰 때까지. 기차 안에 불이 꺼지는 시간부터 동이 틀 때까지가 야간 기차는 죽음인데 아주 편하게 버틴 셈이다.

창문을 여니 맑고 빠른 공기가 쉼 없이 들어온다. 화장실에 가서 간단히 세수를 하고 잤던 자리도 좀 챙기고 해도 시간이 많다. 조금 지겨워지기 시작이다. 사람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으니 조용하다. 칙칙폭폭 달리는 기차 소리에도 굴하지 않고 곤하게 잠을 잔다.

그렇게 도착을 기다라고 있는데 갑자기 다음에 정차할 곳은 핑야오라 한다. 무슨 소리야. 급하게 짐을 챙기고 내릴 준비태세를 갖췄다. 차가 섰다. 문으로 나가니 문이 잠겼다. 각 차량마다 탑승하는 직원도 보이지 않는다. 1분도 채 안돼 다시 차가 출발이다. 알고 보니 원래 정차하지 않는데 한두 명 내리니 잠시 정차한 듯하다. 내릴 수 있었는데. 문제는 내가 깜빡한 것이다.

잉워는 침대에 자리를 잡으면 차표와 침대카드를 교환한다. 그리고 내릴 때 다시 표로 바꿔서 내리는 것이다. 자리 공백을 확인하고 관리하는 것인데 미리 표와 교환하지 않았으니 내릴 의사 표시를 못한 것이다.

그건 그렇고 다음 역이 어디더라. 지도에서 찾으니 타이구(太谷)라는 곳이다. 그래 타이구에서 버스 타고 가면 훨씬 빠르겠다고 생각하고 직원을 찾아 사정을 설명했다. 원래 핑야오에 갈 예정인데 이렇게 됐다 했더니 표를 바꿔 준다.

▲ 산서성 태곡 역
ⓒ 최종명

타이구에 내렸다. 그리고 버스를 타러 갔더니 헉~ 핑야오 편은 없어진 지 오래라고 한다. 난감한 일이다. 다시 기차 역으로 갔더니 마침 1시간 후, 8시30분 기차가 있다고 한다. 표는 8시부터 판매하니 아침이나 먹고 오라고 한다. 네!

역 앞에서 1시간 정도 놀았다. 칼로 밀가루 반죽을 잘라 양념소스를 덮은 면 한 그릇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칼로 밀가루반죽을 자르는 솜씨가 가히 예술! 아침부터 재미있는 것 많이 본다.

기차를 다시 탔다. 오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1시간을 더 가니 핑야오 역이다. 그리운 핑야오. 꼭 다시 오고 싶은 곳이었고, 거의 1년만에 다시 온 곳이라 그런지 마치 고향에 온 듯하다. 삼륜 오토바이를 타고 핑야오구청(平遥古城)으로 들어갔다. 남문 쪽에 내려준다.

▲ '하모니'는 화의창
ⓒ 최종명

남문에서 길게 뻗은 길에 들어서자마자 영어로 대뜸 '하모니?'하는 인상 좋은 아주머니에게 끌려 들어갔다. 2층으로 올라가 보니 옛 집을 개조해 만든 작은 민박집이다. 하루 민박비 100위엔 내고 짐 풀고 나니 10시가 넘었다.

▲ 평요에서 숙박한 방
ⓒ 최종명

뤄양에서 타이구를 거쳐 핑야오에 왔다. 14시간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