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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19] 명청시대 분위기 그대로인 세계문화유산

5월 9일. 간밤에 기차를 타고 푹 잠을 잔 덕분이기도 하지만 핑야오(平遥) 고성의 이국적인 분위기가 그리웠는지 짐을 풀자마자 서둘러 나섰다. 2006년 5월 핑야오에 왔을 때는 중국여행사의 일일 여행을 따라와서 약간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이다.

핑야오는 명나라 초기에 형성된 도시. 북쪽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을 쌓았다. 청나라 강희 황제의 서쪽 순행 코스에 핑야오가 포함되기도 했다. 그만큼 중요한 거점이었던 셈이다.

핑야오구청(平遥古城)은 명나라 및 청나라 시대의 전형적인 현청(县城)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어 최근 떠오르는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우선, 표를 사야 한다. 핑야오구청 안에 있는 모든 곳을 다 볼 수 있는 통퍄오(通票)는 120위엔이다. 비싸다고 느낄지 모르나 다양한 볼거리에 비하면 결코 아깝지 않다. 게다가 표에 적혀 있는 것과 달리 이틀 동안 아무 때나 유효하니 넉넉하게 꼼꼼히 볼 수도 있다. 남문으로 다시 나가 표를 사서 들어왔다.

▲ 평요고성 통표, 구멍이 10군데
ⓒ 최종명

통퍄오를 보여주면 어느 곳이든 무사통과이니 마음도 편하다. 매번 고민할 필요도 없다. 이런 마케팅은 꽤 성공적이어서 대부분 이 표를 사서 들고 다닌다. 고성 안에 있는 관광지는 현청과 종교사원, 그리고 일반 가옥을 개조한 박물관 등으로 나뉘는데 다 보려면 약 20여 군데를 발품 팔아야 한다. 그때마다 티켓에 구멍이 하나씩 늘어난다. 시시한(?) 곳을 빼고 이틀 동안 10군데를 훑었다.

지도를 놓고 생각을 잘 해야 한다. 동선이 엉키면 다리가 좀 아프다. 물론 자전거를 빌려서 돌아다녀도 나쁘지 않다. 자전거 여행은 내일. 오늘은 발품. 이게 내 전략이다. 사실 길거리가 더 재미있는 곳이 바로 여기다.

명·청 시대 현청 모습 잘 보존돼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청황먀오(城隍庙). 구멍 하나를 뚫고 들어가니 여느 사원 분위기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 성황묘 안
ⓒ 최종명

청황디엔(城隍殿) 앞에 향초가 피어 오르고 있고 깔끔하게 청소가 된 상태라 조용하면서도 정갈하다. 청황디엔 입구 양 옆 쑤징(肃静)과 후이삐(廻避) 글자 위에 있는 괴상하게 생긴 동물 얼굴이 섬뜩하다.

▲ 성황묘 안에 있는 도교적이고 토속신앙적인 모형
ⓒ 최종명

도교 분위기가 가득하긴 한데 약간 다르다. 훨씬 더 토속적인 색깔이 강해 보인다. 대체로 도교사원은 그에 어울리는 불상이 있게 마련인데 그보다는 권선징악과 같은 좀더 강렬한 내용을 담은 것으로 봐서 도교 묘당이면서 기능적으로는 민간 토속신앙까지 내포한 관청의 사당에 더 가까운 듯하다.

청황먀오 좌우 건물에는 그런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장면들이 있다. 링(令)과 떠우(斗)가 선명하게 보이고 망향대 아래 마치 지옥을 연상시키는 고문 장면들이 20여 가지나 모형으로 구성돼 있다. 다른 쪽 방에는 선량한 사람들이 성실하게 논농사를 짓고 가정생활을 하는 장면의 모형이 있다. 서로 대비되는 것은 그만큼 속세의 생활을 잘 해야 한다는 권선징악의 메시지가 강한 것이다.

청황먀오 맞은 편에는 핑야오 원먀오(文庙)가 있다. 원먀오 쉬에궁(学宫) 안에는 유교가 듬뿍 담겨 있다. 토속적이고 권선징악이 강한 곳을 나와 아무래도 익숙한 문화를 접하니 부담이 덜하다. 먼저 들어간 곳은 과거에 관한 박물관이다.

▲ 역대 과거급제자 명단
ⓒ 최종명

중국 과거제도 알기 쉽게 꾸며 놔


커쥐(科举) 박물관은 핑야오 출신으로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에 대한 정보들로 꾸며져 있다. 더불어 중국과거제도에 대한 다양한 정보도 공부할 수 있다. 입구 벽 지티엔치엔밍빵(祭天签名榜) 앞에는 사람들이 쓴 서명이 있고 뒤 편에는 급제한 이 지역출신들 이름과 연도, 직함들을 적은 팻말이 걸려있다.

주로 청나라 시대 과거와 관련된 문서나 책자, 하사품 등이 전시돼 있고 중국과거제도를 알기 쉽게 꾸며놓았다.

▲ 문묘 대성전
ⓒ 최종명

'과거'를 보고 나오면 공자의 사당으로 연결된다. 성신문무(圣神文武) 현판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니 공자의 초상화가 보이고 그 옆에는 논어(論語)가 크게 써 있다. 따청디엔(大成殿)에는 역시 공자 상이 있는데 취푸(曲阜)에서 본 그것과 비슷하다. 조금 다른 점은 '호나우딩요' 같던 것에 비해 그를 조금 덜 닮은 것이다.

원먀오는 쉬에궁답게 조용하다. 사당을 비롯한 건물들이 다 정갈하고 정원도 비교적 잘 가꿔져 있다. 높은 벽을 끼고 돌아 나오는 길도 휴지하나 없이 깨끗하다. 바위 하나에 '유(儒)'가 멋지게 서 있으니 정겹기도 하다.

▲ 구룡벽
ⓒ 최종명

원먀오 바로 옆 지여우롱삐(九龙壁)에는 아홉마리 용이 꿈틀거리며 하늘을 날아오를 듯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 벽 안에는 따씨탕(大戏堂)이 있는데 '오늘 공연이 있는지' 물어 봤지만 아쉽게 없다. 대신 고성 밖 시내 도심의 한 극장에서 300위엔이나 하는 공연이 있다고 한다.

거리는 계속 재개발되고 있다. 큰 거리를 빼고 아직 개발이 덜 된 곳은 파헤쳐지고 다시 길을 내는 공사가 한창이다. 그저 그대로 둬도 좋으련만.

재개발하지만 옛 정취는 그대로

이미 개발된 곳은 대체로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옛 집 그대로이지만 가게의 목적이 있으니 좀 부자연스러운 면도 있다. 그럼에도 핑야오는 옛스러움을 많이 남겨놓고 있는 셈이다. 옛 정취에 골동품과 공예품을 담아놓으니 이국적인 정서를 지닌 모습으로 잘 살아나고 있기도 하다.

사람들도 바쁠 게 없다. 물건 사라는 강요도 거의 없다. 웃으면 같이 웃어주고 사진을 찍으면 비켜도 주고, 어른 아이 모두 핑야오구청 속에 조용하게 들어와 있는 것이다. 관광 그 자체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오니 자연스러움이 잘 배어 있기도 하다.

거리를 지나다가 티켓에 구멍을 뚫는 모습만 보이면 그곳이 바로 새로운 볼거리다. 핑야오에서 가장 큰 박물관은 퍄오하오(票号)라 불리는 은행이다. 청나라 시대 100여 년에 걸쳐 핑야오는 전국을 돈으로 주무른 곳이기도 하다. 최초의 은행으로 알려진 리셩창(日升昌)을 비롯해 곳곳이 퍄오하오 관련 전시관이다.

씨에통칭(协同庆)이란 간판이 있는 곳도 퍄오하오인 것이다. 이전의 씨에통칭이란 이름의 은행이자 주거공간이던 곳을 개방해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은행이 발달했다는 것은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이다. 당시 핑야오는 수공업이 번창했고 이를 전국에 팔기 위한 운송업도 발달했다. 공업과 운송업, 은행업이 성행했던 것이다. 그래서 은행도 지키고 운송도 안전하게 책임지게 될 새로운 사업도 생겨났으니 바로 뺘오쥐(镖局)이다. 무협지에도 간혹 등장하는 '표국'을 말한다.

핑야오의 무술 수준을 볼 수 있는 빠오쥐 박물관

▲ 표국박물관
ⓒ 최종명

빠오쥐 박물관에는 핑야오의 무술 수준과 내용을 잘 볼 수 있기도 하고 전국의 빠오쥐를 일람할 수 있기도 하다. 유명한 종뺘오터우(总镖头)들 얼굴도 스케치돼 있기도 하다. 무기들이 등장하고 무술권법도 전시돼 있다. 마당 하얀 벽면에 붉은 사각 속 노란 원에 써 있는 검은 글씨의 '무(武)'가 돋보인다. 뒷마당에는 훈련장도 있다.

▲ 울성창 입구
ⓒ 최종명

웨이셩창(蔚盛长)도 퍄오하오다. '풀이 무성하게 자라' 듯 돈을 번다는 뜻일 것이다. 이곳에 들어서면 붓을 들고 염주를 걸고 앉은 고관대작의 풍모를 띤 조각상이 눈에 들어온다. 뒷면에는 청나라 말기 서태후와 광서제의 권력다툼에서 희생된 무술변법의 '육군자' 중 한 명인 담사동(谭嗣同)을 비롯해 양계초(梁启超), 강유위(康有为) 사진이 있다.

거리는 공예품을 파는 가게들이 줄 지어 있고 그 사이사이에 식당과 여관을 겸한 건물들이 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고풍스러운 건물이긴 하지만 실제로 안에 들어가면 꼭 그렇지는 않다. 바깥에 유명영화배우들이 다녀갔다는 홍보간판이 있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핑야오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곳은 리셩창(日圣昌)이다. 많은 퍄오하오 중에서도 가장 먼저 생겼으니 '중국 최초의 은행'으로 불리고 있고 예전에는 이 지역 이름을 따서 '싼시인항(山西银行)'이라 했다고 한다. 그저 그럴 뿐 특별히 색다른 것은 없다. 다만, 퍄오하오답게 실제 은행창구를 그대로 살렸고 사람들 모형이 있으니 당시 분위기가 더 생생하다.

▲ 일승창의 은행업무 모형
ⓒ 최종명

퍄오하오는 바깥은 은행업무를 보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주거공간이다. 운송도 담당하고 호송도 겸비해야 하니 조직이 방대했을 것이다. 전국에 흩어진 지점도 관리했으니 말이다. 서열 별로 기거하던 방들을 차례로 살펴볼 수 있다.

리셩창의 주인은 염직으로 돈을 벌어 전국적인 은행지점을 갖춘 대부로 성장한 이대전(李大全)이다. 리셩창이 처음 생길 때 일종의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됐다. 이대전이 은 30만 양을 출자해 최대주주이면서 총경리였다고 한다. 그의 성장과 그 후대의 번창 그리고 몰락에 이르기까지 잘 꾸며져 있다. 또한, 중국의 근대화 진입단계의 은행인 뺘오하오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돼 있다.

유방을 도운 명 재상 숙하를 모신 사당

정신없이 다니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를 정도다. 이미 4시가 넘어가고 있다. 욕심이 앞서 티켓에 온통 구멍을 뚫느라 몰랐는데 곧 해가 질 태세다. 오늘 핑야오 현청까지는 봐야 한다. 조금 빨리 움직이자. 사람들에게 '씨엔야전머줘?(县衙怎么走?)'를 연신 물으며 다녔다. 10분을 묻고 걷고 했다.

당시 현청인 씨엔야는 아주 넓다. '야(衙)'는 관공서라는 뜻으로 우리도 근대화 역사에서 '총리아문'이란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때의 '아'이다. 2006년 5월에도 이곳을 다 둘러보는데 시간이 꽤 걸린 기억이 난다. 자세히 다 훑어보려면 꽤 시간이 많이 걸린다.

현청 입구 이먼(亿门)을 지나 본청에 들어서니 당시 장면을 시연하는 것을 보느라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카이펑푸(开封)에서도 본 장면과 거의 흡사하다. 그 건물의 형태도 유사하다.

▲ 현청 감옥 입구
ⓒ 최종명

보통 현청은 현 업무를 보는 곳과 감옥, 주거공간, 그리고 사당으로 이뤄져 있다. 이곳에는 도교와 불교 관련 사당도 있지만 추어허우먀오(酂侯庙)라는 재미난 사당이 있다. 한나라를 세운 유방을 도와 항우와의 초한 쟁패에서 승리를 주도한 명 재상 숙하(萧何)를 모시고 있다. 현청 안을 지키는 신이라는 의미로 야션먀오(衙神庙)라 부르기도 한다. 그 옆에는 유방의 일등공신들인 한신(韩信)과 장량(张良)의 초상도 나란히 있다.

핑야오 현이 내려다보이는 종루에도 오를 만하다. 특히 종루에서 현청 안으로 내려다보이는 곳에 사람의 얼굴을 연상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건물의 창문과 현판 그리고 동그란 입구가 서로 조화를 이뤄 언뜻 보면 사람의 얼굴이다. 게다가 해학적이기까지 하다.

성벽을 따라 정원을 지나 감옥을 거치면 현청을 대부분 다 본 셈이다. 날이 서서히 질 조짐이다. 점심도 제대로 못 먹고 돌아다녔더니 허기가 몰려온다. 핑야오를 두루 취재하는 기쁨에 들떠 소홀히 했더니 반응이 드디어 온 것이다. 숙소로 돌아가서 씻고 나니 해가 저문다.

핑야오의 밤

저문 해는 핑야오에 다시 밤의 정취를 선물한다. 샹송이 흘러나오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낮에 걷던 거리를 다시 걸었다. 장례를 치르는 행렬이 갑자기 나타나 당황했지만 이 역시 이곳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다. 그렇게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 그대로를 멋진 관광지로 승화시킨 점이 핑야오의 매력이다.

핑야오를 가로와 세로로 가르는 길거리에는 누각이 2개 서 있는데, 밤이 되니 찬란하게 재 탄생했다. 식당과 가게들도 새로운 옷을 입고 낯선 외국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검은 곳과 붉은 곳. 그 대비가 즐거운 핑야오의 밤이다. 불빛에 나왔다 사라졌다 하는 골동품들을 살피며 어슬렁거리는 동안 어느새 9시가 넘었다.

숙소로 돌아오니 주인이 문 밖에서 기다린다. 아직 손님들이 다 돌아오지 않았다. 맥주 한잔 하면서 주인과 약간 수다를 떨다가 컴퓨터가 있어서 물어봤더니 인터넷도 된다고 한다. 1시간 5위엔을 받는다. 맥주 한 병 값도 5위엔.

고풍스러운 핑야오의 밤에 흠뻑 젖었으니 잠도 잘 올 듯하다. 오늘 찍은 사진을 다시 보니 보람차다. 이게 여행의 맛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