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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신기한 공예가 많은 중국. 공예품 거리를 다니다보면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공예를 많이 만난다. 지난 일요일(3월6일), 베이징 류리창(琉璃厂)에서 네이화후(内画壶)라는 공예를 파는 가게를 들렀다.

이 공예는 청나라 말기에 코담배인 비옌후(鼻烟壶)에 예쁜 장식을 하면서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입으로 피는 담배 대신에 코로 흡입하는 담배도 있었던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명나라 말기에 이 코담배가 중국에 들어왔다고 한다. 밋밋한 유리병에 그림을 그리려는 창의적 발상이 바로 이 네이화후 공예를 보는 즐거움의 원천인 것이다.

Inside-Bottle Painting, 인사이드-바틀 페인팅이라니. 과연 유리병 속에 그림을 어떻게 그린다는 것인가. 3대째 이 네이화후 공예기술을 이어오고 있다는 쉬부(许步)씨의 솜씨와 작품들을 보게 됐다.

온통 유리병이 잔뜩 전시돼 있다. 각양각색의 그림들이 유리병 속에서 빛이 난다. 둥근 공 모양의 유리 속에 팬더가 그려져 있다. 물론 빈 공간에 처음부터 이 팬더를 그리면 좋았겠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걸리니 이미 그려놓은 것 중에서 하나 골랐다. 이 속에 이름과 덕담을 새겨넣자고 했다. 동행한 후배 아들 이름을 적어줬다. 한글도 제법 잘 쓴다. 그리고 한 평생 행복하고 평안하라고 이셩핑안(一生平安)을 새기기로 했다.

쉬부씨는 가는 붓을 들어 유리병 속으로 집어넣는다. 이 붓은 갈고리처럼 구부러져 있다. 얇은 붓이 살짝 뚫린 작은 구멍으로 들어가서는 갈고리 부분의 붓칠로 글자나 그림을 새기게 된다. 유리병을 자세히 보면 붓길따라 사각사각 뭔가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유리 안쪽에 사람이 있어서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 그려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붓을 꽉 잡은 손이 아주 예민해보인다. 갈고리 끝의 세밀한 손길따라 그림이 나타나는데 그 테크닉이 만만해보이지 않는다. 오래 숙련된 손길이거나 세심한 집중력이 아니라면 쉽게 만들어내기 어려워 보인다.

사진을 찍고 사람들이 눈을 가까이 가져가 바라보는데도 아랑곳 않고 소리없이 집중하고 있다. 아버지로부터 전수 받은 기술이라고 하는데 장인의 집념도 드러나는 듯하다.

쉬부씨는 우리말을 조금 해서 약간 놀랐다. 그래서 조선족 동포인 줄 알았는데 순수 한족이라고 한다. 류리창 공예품거리를 찾는 한국관광객을 상대하려고 배운 것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꼭 그런 것은 아니고 아버지 때부터 한국을 자주 방문해서 시연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한국말을 배운 것이라 한다. 하여간 쉬부씨의 우리말은 서로 소통하기에 무리가 없다. 그는 우리가 중국말을 하는 것이 더 신기한 듯했다.  

10여분만에 글자를 다 그렸다.  후배가 들고 있는 동그란 유리병 속에 글자들이 살아있다. 물론 미리 그려놓은 팬더와 함께 말이다. 100위엔이다.

사실, 대부분의 공예품들이 공장 대량생산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많다. 하지만, 이 네이화후는 공장에서 마구 찍어내기에는 한계가 많아보인다.    

이 공예기술로 생활하고 있는 쉬부씨 집안.  베이징 류리창둥제(琉璃厂东街)99호. 문방사보당(文房四宝堂)을 찾으면 된다. 중국에서 대를 이어 공예예술을 전수하는 게 많지 않은 요즘 3대를 이어온 예술이라 자랑하는 쉬부씨를 만나게 될 것이다.  

여길 가시면 참 재미있는 중국문화와 만날 수 있다. 관광지에서 공예품 눈요기와 흥정만 해도 좋다. 하지만, 공예가와 대화를 나누면 훨씬 즐겁고 보람이 있다. 다행히 중국말을 못해도 이 친구가 약간의 우리말을 하니 소통에 문제 없다.  

유리병 속에 만리장성이 담겨 있다. 가운데 네이화후 속에는 한 눈에 봐도 만리장성(万里长城)의 망루 모습이다. 만리장성이네 라고 아는 체 하면 아마 장성을 화제로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그냥 이게 뭐냐? 얼마냐? 하는 것보다 이 속에 만리장성 있네, 이게 뭐죠? 한다면 '만리장성은 물론 모든 그림을 그려넣을 수 있는 네이화 공예라고 설명해줄 것이다.

왼쪽 유리병은 화무란(花木兰), 뮬란이 말을 타고 있는 장면이다. 뮬란이 왜 아버지와 오빠를 대신에 전쟁에 참여했고 공을 세웠는지에 대해 말을 섞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오른쪽 유리병은 제목이 창바이산(长白山), 즉 백두산이다. 백두산 주변의 한 마을 집을 그린 것이다. 아마 왜 이게 백두산이냐? 라고 물어보면 아 창바이산 주변 풍경이라고 말할 것이다.

유리병의 모양도 다양하다. 차 주전자 속에 예쁜 꽃들이 아주 화사하다. 바깥에 그리거나 붙인 것이 아니다. 안쪽 면에 그린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이 네이화후가 기능이 아니라 예술임을 느낄 것이다.

유리 안쪽 면을 붓길따라 그리면서도 섬세한 인물 이미지까지 담아내는 일이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마지막 황제 애신각라(爱新觉罗) 부의(傅义) 초상화가 유리병 속에 살포시 들어있다.    

정말 신기한 것은 유리병으로 이어만든 목걸이이다. 유리병 하나마다 십팔나한의 모양이 새겨져 있다. 큰 병이나 작은 병이나 그려넣는 방법은 같다. 그 붓 크기가 아주 작지만 말이다.  

역시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미인도이다. 중국 역사 상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양옥환(杨玉环), 왕소군(王昭君), 초선(貂蝉), 서시(西施)가 나란히 보인다. 미인으로 선정된 역사 배경에 어울리는 특징을 살려 재미있게 그려넣었다. 중국 거리에서 이런 미인을 만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심지어 미인캐릭터를 살려 여인네 빗도 만든다.

[중국 4대 미인의 허리로 머리를 빗다니 http://www.youyue.co.kr/328 ]

코담배를 피던 사람들에게 미인들의 향취까지 선물했으니 굉장한 인기를 끌었음직하다. 코담배를 팔기 위해 미인의 향기를 함께 판 것이다. 상품을 팔기보다는 문화를 파는 문화마케팅이 이미 중국에도 있었던 것이다.

중국에 가면(아니 세계 그 어디라도) 상품만이 아니라 여인의 향긋한 감수성을 빨아들이듯, 문화의 향기까지 코로 맡아본다면 그 즐거움이 더할 것이다. 네이화후, 중국문화가 잔뜩 들어가 있는 향기 나는 공예를 만났다. 여인네의 향기가 풍기는 상상을 해본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