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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 남아 있는 팔대괴 흔적을 찾아서

 

 

베이징에 기이한 인물들이 있다. 괴물(怪物), 괴짜(怪才), 기인(怪傑)으로 불린다. 괴상하다는 뜻의 ()’가 붙어 인물 캐릭터가 됐다. 중국 명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업적인 대중적 시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난장에서 곡예(曲藝), 무술(武術), 잡기(雜技) 등으로 기예를 팔던 사람들이 함께 나타났다.

 

수백 명의 괴물들이 등장했다. 당연히 인기스타였다. 인기가 떨어지면 사라지고 스타 기질이 유지되면 대를 이었다. 팬들의 투표로 걸러지는 위대한 탄생은 아니었겠지만 대체로 8명으로 추려졌다. 팔대괴(八大怪)라 부른다.

 

중국 사람들이 팔(8)을 좋아하는 것은 전통이자 습관이다. 인물, 물건, 경치에 자주 가져다 쓴다. <주역>의 기본도형인 팔괘(八卦), 도교의 신선 팔선(八仙), 당송시대의 문학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베이징 명승지 연경팔경(燕京八景), 청나라 군대 팔기(八旗), 청나라 말기 베이징 비단가게 팔대상(八大祥) 등 아주 많다.

 

천교팔대괴(天橋八大怪)도 중국문화의 서민적 예술정신을 담고 있다. 청나라 중기에 이르면 민간기예를 부리던 괴물 중에서 8명을 탄생시킨다. 천교, 즉 텐챠오(天橋)육교구름다리를 말하는 명사이지만 베이징의 지명이기도 하다. 고궁의 남문인 천안문의 남쪽방향, 천단공원 서북쪽에 위치한다.

 

청나라가 집권하자 명나라 시대의 길거리 기예가 고궁 남쪽으로 밀려났다. 지방상인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붐비면서 자연스레 시장과 찻집, 술집, 여관 등이 생겨났고 무예와 이야기, 노래가 넘쳐나는 서민문화의 중심으로 변했다. 여기에 서민들의 정서를 달래주던 '팔대괴의 숨결이 살아있는 것이다.

 

텐챠오 광장에 이르면 기이하게 생긴 조각상이 나란히 서 있다. 세어보니 모두 8. 팔대괴다. 조각상 아래에는 친절하게 이름과 함께 자세한 설명도 적혀있다. 얼핏 보면 별 대수롭지 않은 모습 같다. 설명을 보면서 표정과 동작을 살피면 서민문화의 진수답게 치열한 흔적과 만나게 된다.

 

 

츙부파(窮不怕, 궁불파)는 대나무 죽판(竹板)을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는 땅바닥에 글자를 쓰고 있는 모습이다. 중국 만담인 상셩(相聲)의 비조(鼻祖)이며 본명은 주소문(朱紹文, 1829—1904)이다. 혼자 하는 만담가이면서 노래도 잘한다. 공연 때 죽판 한 쌍을 부딪히면서 박자를 맞추는데 위 죽판에는 ‘아주 많은 글이 있으니 궁핍을 두려워 말라(滿腹文章窮不怕)’ 아래 죽판에는 ‘다섯 수레에 이르는 책의 역사가 가난을 멈추게 하리라(五車書史落地貧)’라고 쓰여 있다. ‘츙부파’라는 이름은 바로 ‘가난을 두려워 말라’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모래를 바닥에 뿌리고 공연을 시작하는데 모두 스스로 창작한 만담은 소탈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였다고 전한다.

 

 

왕샤오볜(王小辮, 왕소변)은 커다란 깃발을 왼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다. 고대 의장대의 성원이던 깃발 곡예 중판(中幡)의 고수로 머리에서 어깨, 팔로 자유자재로 옮기는 기예 솜씨를 자랑한다. 깃발은 3(10미터) 높이이자 무게가 수십 근에 이르는 죽간(竹竿), 대나무 장대로 만들었다. 위에는 오색찬란한 둥근 우산이 있고 장대 끝에는 동으로 만든 방울이 달렸다. 절묘한 기예를 뽐내다가 마지막에는 앞 이빨로 깃발을 받아낸다고 한다. 20세기 초반 인물로 자세한 내력은 전해지지 않는다. 키는 크지 않지만 힘이 장사이고 얼굴이 둥글며 머리는 크지만 몇 가닥 없는 머리카락은 변발(辮子)이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이 샤오볜인 이유이다.

 

 

션싼(沈三, 심삼)은 왼발을 들고 양손을 펼치고 엉거주춤한 모습이다. 베이징 출신으로 가난한 회족 가정에서 자랐으며 어릴 때 씨름(摜跤)을 배웠다. 키가 크고 몸집이 웅장하면서도 기공을 배워 민첩하게 공중제비를 잘 했다. 가슴에 있는 벽돌을 철추(鐵錘)로 내려쳐 깨거나 벽돌을 발로 차는 기예의 대가였다. 1945년에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러시아 장사와의 대결에서 승리해 민족존엄을 수호했다고 언론에 보도되는 등 명성이 하늘을 찔렀다고 전한다.

 

 

청사즈(, 정사자)는 사발을 이마에 쌓고 균형을 잡기 위해 허리를 뒤로 눕힌 모습이다. 본명은 정복선(程福先)이며 중국 잡기의 고향인 허베이 우챠오(吳橋) 사람이다. 크고 작은 사발을 13까지 차례차례 이마에 올리는 딩완()의 고수였다. 사발을 올린 후 허리를 구부리거나 발을 구르는 등 신기한 동작을 해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한편, 흑곰을 조련하는 능력도 있어서 청거우슝(程狗熊)이라고도 불렸다. 두 손을 오므려 인사를 하기도 하고 땅바닥에 이마를 조아리거나 똑바로 서서 걷기도 하는 흑곰을 부린 것이다. 둥근 고리를 넘기도 하고 공 위에서 구르고 공중제비도 하고 사람과 씨름도 하게 했다.

 

 

창사즈(, 상사자)는 왼손으로 돌을 들고 오른손으로 깰 듯한 모습이다. 큰 거위 알만큼 큰 돌을 깨는 기예인 자스터우(石頭)의 고수였. 돌을 탕탕 소리 나도록 해 진짜 돌임을 증명한 후 기합을 넣고 나서 손바닥으로, 심지어는 손가락으로 쪼갠다. 그는 공연 후 관중들에게 자신이 직접 만들고 먹어서 힘이 세진다는 백보증력환(百補增力丸)을 팔았다. 사람들은 약효에 대해 별로 믿지 않았고 동전을 던져주고는 했다. 의사를 데리고 다니면서 기예를 부리는 전형적인 약 장사 행색이었다. 본명조차 알려지지 않았지만 표정조차 무서운 괴물로 알려지고 있다.

 

 

싸이훠뤼(賽活驢, 새활려)는 부채를 들고 탁자 위를 오르는 당나귀를 올라탄 모습이다. 본명은 관덕준(關德俊)으로 천으로 만든 옷과 대나무로 당나귀처럼 변장해 재주를 부리는 코미디인 더우건(鬥哏)과 결합된 서커스의 대가였. 두 다리는 당나귀의 뒷발, 두 손은 앞발이 돼 익살스런 코미디를 연기한다. 자기 부인을 태우고 꽃을 뿌리거나 뒷발치기도 하고 앞발을 감추기도 한다. 3개의 탁자를 엇갈리게 세워 산을 넘어가듯 묘기를 부리며 자유자재로 손과 발을 써서 당나귀처럼 기교를 부린다. 일명 당나귀 춤(毛驢舞)이라고도 불렀으며 모두 ‘살아있는 당나귀’와 똑같다고 했다.

 

 

다진야(大金牙, 대금아)는 구멍 뚫린 나무 상자 옆에서 서 있는 모습이다. 본명은 초금지(焦金池, 1891-1943)이고 허베이 출신이다. 천막처럼 꾸민 상자 안에 괴상한 동물그림을 보여주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는 싱펑(腥棚)의 대가이다. 8개의 거울을 두고 도구를 이용해 연극 공연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북을 쳤다. 이 공연은 라다폔(拉大片)이라고도 부르는데 바로 요지경이라는 말이다. 키가 작고 눈은 작으나 입은 컸는데 금 이빨 2개가 웃을 때마다 드러나 붙여진 별명이다.

 

 

차오마즈(曹麻子, 조마자)는 커다랗고 둥근 방망이 2개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다. 본명은 조덕전(曹德全)으로 20세기 초 베이징 외곽의 농민 출신이다. 머리가 크고 고양이 얼굴에 드문드문 주근깨(麻子)가 있었다. 1킬로그램이 넘는 소 사타구니 뼈 2개를 방망이로 삼아 말을 주고받으며 곡조에 맞춰 노래했다. 방망이에 동으로 만든 구슬을 매달아 소리를 내는 슈라이바오(數來寶) 기예의 원조라고 한다. 제자들이 음운을 띠우면 양손으로 방망이를 치면서 대답하고 노래했다 한다.

 

오늘날에도 수 많은 서커스 기예 공연에 팔대괴가 남아 있다. 비록 8명만 조각돼 있지만 팔대괴는 거리 공연의 상징이다. 광장 홍보 판에도 적혀 있듯 '기층문화의 창조자'로 살다간 괴물들 수백 명의 기예를 다 포함한다. 극장이나 차관, 또는 식당에서도 만날 수 있다. 때로 명절 때마다 거리 공연에서도 볼 수 있다.

 

텐챠오 주변에서도 팔대괴 공연을 볼 수 있다. 광장 건너편에 있는 텐챠오자지극장(天橋雜技劇場)이나 텐챠오러차위엔(天橋樂茶園)을 가면 된다. 특히, 텐챠오러는 차를 마시며 공연을 관람하는 차관으로 팔대괴 공연을 자주 한다. 공연은 저녁 7시 이후에 90분 가량 하는데 1층 앞자리부터 2층까지 가격차가 아주 크다. 극장 관계자 이야기로는 팔대괴를 다 보려면 1년 내내 와야 할 것이라고 한다. 매일 팔대괴 기예 레퍼토리가 달라지는 것이다.

 

팔대괴는 단지 8명의 괴물, 기예만이 아니다. 기록에 의하면 이 괴물들은 시대별로 모두 세 패로 나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광장에 세워진 팔대괴는 대부분 20세기 초반에 명성을 떨친 인물들이다.

 

 

좀더 자세히 기층문화의 창조자팔대괴의 흔적을 보러 선남박물관(宣南博物館)을 찾았다. 텐챠오에서 서북쪽으로 4킬로미터 거리이니 가깝다. 지하철2호선 창춘제(長椿街) 역에서 내려 대로를 따라 남쪽으로 700미터 가량 걸어가도 팻말이 보인다. 이 박물관은 원래 창춘쓰(椿寺)였다. 1592년 명나라 만력제(萬曆帝)가 사찰을 짓고 모후의 장수를 기원하며 장춘(椿)’이라는 편액을 하사했다고 한다. ‘수도에 있는 최고의 사찰이라는 경사수찰(首刹)로 불리던 사원이 문화박물관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순환선인 지하철2호선 노선이 지나는 고궁 외성 중 서남쪽에 선무문(宣武門)이 있다. 그 남쪽을 선남(宣南)이라 한다. 다스뢀(大柵欄) 상업문화, 류리창(琉璃廠) 사인문화(士人文化)와 함께 팔대괴로 유명한 텐챠오 민속문화를 묶어 선남문화(宣南文化)라 부른다. 다스뢀과 류리창은 많이 소개됐고 여행코스이지만 상대적으로 텐챠오 민속문화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선비 풍모가 물씬 풍기는 돌 조각상부터 문화적 향기를 풍긴다. 책가방과 우산을 내려놓고 책을 보는 선비는 아마도 과거를 보러 가는 모습인 듯하다. 맞은 쪽 에는 돌 병풍을 뒤로 하고 앉았거나 서 있는 노학자 모습도 인상 깊다.

 


 

본당 전시실 안으로 들어섰다. 한쪽 벽면에 팔대괴라고 적혀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낯 익은 괴물도 보이지만 광장에 보이지 않던 괴물도 여럿 있다. 벽면에는 캐리커처가 그려져 있고 아주 작은 조각상도 전시돼 있다. 그림만 봐도 신기하고 괴짜 모습이다.

 

베이징의 서민문화도 다양하게 전시돼 있다. 겨울철 어린이들의 간식인 설탕과일인 탕후루(糖葫芦) 파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긴 나무다리인 가오챠오()를 타고 있는 저팔계 모습도 코믹하다. 춘제()마다 사원이나 사당에서 벌어지는 거리공연인 묘회(庙会)를 보고 있는 어린이들도 귀엽다.

 

 

경극이나 옛 가게 브랜드, 공예품이나 민간기예가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이다. 선남문화, 특히 베이징 서민문화를 보러 이 박물관을 찾아가도 좋을 것이다. 한편, 베이징에서 가장 첨단 시설을 자랑하는 수도박물관(首都博物)에 가도 팔대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라오베이징(老北京) 풍물 전시관에 가면 팔대괴의 흔적이 남아있다.

 

 

 

서민들과 함께 울고 웃던 거리의 스타, 팔대괴. 비록 시장 바닥의 정취나 서민들의 환호를 직접 볼 수는 없지만 현대적 공연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했던 괴물들이라 할만하다. 비록 박물관의 캐리커처나 광장의 조각상으로만 남았지만 우리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고마운 괴물스타, ‘위대한 탄생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