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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23] 베이징 스두와 성 바오딩의 예산포

5월 13일 아침, 친구 집이 다소 부담스럽기에 민박집을 구하러 나섰다. 예전에 그 많던 생활정보지가 많이 사라졌다지만 정말 보기 힘들다. 한 유명 한국 미용실에 들어가 물어서 하나 겨우 구했다. 베이징의 한인타운이라는 왕징(望京) 부근 민박집은 대체로 50위엔에서 250위엔까지 환경에 따라 아주 차이가 많다.

혼자 쓰려면 150위엔 정도가 적당하다. 인터넷도 빠르고 하루 세끼 줄 뿐 아니라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비교적 자유롭다.

▲ 민박집에서 내려다 본 왕징의 하늘
ⓒ 최종명

빨리 와서 밥 먹자는 친구 전화다. 아침 먹고 짐 옮기고 정리하는 사이에 또 점심 시간이다. 2006년 12월 베이징에 머물 때 친해진 커뮤니티 멤버들이 맛있는 점심을 먹자며 초청이다.

자가용을 가진 분이 있어 편하게 씨에다오(蟹岛)에 갔다. 씨에(蟹)는 게이니 '게섬'이다. 씨에다오는 베이징의 똥우환(东五环) 조금 벗어나서 공항고속도로 오른편, 즉 남쪽에 위치한 곳이다. 베이징 시내 외곽에 일종의 휴양지라 할 수 있는 두지아춘(度假村)이 많은데 이곳도 그 중 하나로 왕징 주민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왕징과 같은 차오양취(朝阳区)로 불과 30분 거리에 있으니 아주 가깝다. 베이징의 5월 하늘 역시 푸르다니 황사가 두려운 사람들에게도 베이징이 살 만한 도시가 되려는 것인가.

씨에다오에서 가장 큰 식당 2층에 자리를 잡고 여러 음식을 시켰다. 일행 중 한 명인 중국사회과학원 박사 과정에 있는 사람이 '하늘에는 용 고기, 땅에는 당나귀 고기'가 제격이라며 당나귀 고기를 주문했다. '당나귀를 끌고는 못 가지만 배에 넣고는 간다'는 속어도 있다며 강력 추천한 것이다. 오향장육과 비슷한 형태로 나온 당나귀 고기는 약간 씁쓸한 맛이 감돌긴 했지만 나름대로 향긋했다.

▲ 당나귀 고기와 주문 표
ⓒ 최종명

이 식당은 저녁에 서커스 공연이 있나 보다. 점심시간에 연습하는 단원들을 지켜보니 이 역시 아주 재미있다. 박수도 치고 흐뭇한 한끼 식사.

두지아춘 한가운데 건물 실내에 낚시터가 있다. 물고기가 여기저기 떠다니는 곳마다 가격표가 매겨져 있다. 고기를 잡는데 필요한 도구를 빌리는데도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고기를 잡으면 1근당 또 고기를 가져가는 값을 치러야 한다니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베이징 외곽에서 한나절 맛있게 놀고 나니 기분이 상쾌하다. 하늘도 오래간만에 새파랗게 축하하니 그 동안 중국발품취재로 지친 몸과 마음이 한껏 날아오를 듯하다.

저녁에는 맥주파티를 했다. 바깥에서 저물어가는 밤을 따라 벗들과 어울려 마시는 맥주는 정말 시원하다. 게다가 옌징피져우(燕京啤酒)에서 생맥주인 자피(扎啤) 전용으로 나오는 맥주가 아주 입맛에 딱 맞다. 보통 맥주보다 알코올 도수가 조금 높은 대신 값이 조금 비싸다.

▲ 생맥주 전용으로 나온 맥주 통
ⓒ 최종명

장사가 잘 되는 식당은 푸우위엔(服务员)들이 다 친절하다. 붉은 조명을 따라 바삐 움직이는 푸우위엔들의 빨간 티셔츠가 독특하다.

맥주 파티의 주제는 단연 '중국발품취재'가 됐다. 중국에서 오랜 세월 생활한 사람들도 정말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기대와 염려,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니 부담스럽기도 하다.

정말 기분이 좋은 것은 베이징에서 꼭 가보면 좋을 곳이라고 추천해주고 또 같이 가자는 것이다. 내일 시간되는 사람들 다시 모여 베이징 외곽 드라이브를 하자고 하니 정말 고마운 일이다.

5월14일 아침 8시에 출발하자는 약속을 내가 10분 정도 어겼다. 민박집 아주머니가 아침 준비 맛있게 했으니 꼭 먹고 가라는데 어쩔 수 없었다.

어제보다 하늘이 더 푸르다. 구름 한 점 없다.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환호성을 지를 뻔 했다. 너무도 청아한 하늘. '저 청한 하늘 저 흰구름 왜 나를 울리나' 학생 때 부르던 운동권 서정가요도 흥얼거리고 신났다.

우리의 드라이브 코스는 베이징 서쪽 외곽 스두(十渡)와 허베이(河北) 성 바오딩(保定)에 있는 예산포(野三坡)다.

베이징 서쪽 팡산취(房山区)를 거쳐 외곽 도로에 접어드니 계곡이 나타나고 그 계곡마다 작은 다리를 하나씩 건너기 시작한다. 스두의 두(渡)는 '건넌다'는 뜻이니 스두는 이런 다리를 열 번 건너면 나타나는 휴양지이며 관광지인 셈이다.

산과 산 사이의 계곡은 좁고 길었다. 하천의 물은 많지 않지만 그렇다고 졸졸 흐르는 것도 아니다. 스두까지의 도로는 암석으로 형성된 각양각색의 산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곳곳에 있는 작은 사찰들을 다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 십도 앞에서
ⓒ 최종명

아홉 번째 다리를 건너 져우두(九渡)와 스두(十渡) 사이는 유명한 관광지이다. 계곡과 산이 어우러져 식당과 모텔도 많은 두지아춘(度假村)이기도 하다. 관광이 아니라 드라이브가 목적인지라 잠시 거쳐가는 것이 내내 아쉽다.

스빠두(十八渡) 지점은 베이징과 허베이의 경계이다. 이제 허베이 바오딩의 유명한 국가지질공원인 예산포에 접어들기 시작인 것이다. 보통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곳은 산세가 험하고 토질이 독특한 경우가 많은데 예산포 역시 그렇다.

▲ 십팔도
ⓒ 최종명

예산포는 바이리샤(白立峡)라는 계곡으로 유명하다. '바이리화랑(百里画廊)'이라 불릴 정도로 계곡의 아름다움과 하늘을 찌르는 폭포의 수려함으로 사람들에게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곳이라 한다. 또한, 차이수안창청(蔡树庵长城)과 인허푸(银河瀑)로 유명한 룽먼티엔관(龙门天关)도 있다.


▲ 점심을 먹은 예산포의 한 마을
ⓒ 최종명

이런 정보를 듣는 것만으로도 드라이브의 맛은 충분하다. 한적한 도로를 달리다 보니 솟구친 산들이 줄지어 있는 곳 아래에 조그만 마을이 나타난다. 강 하나를 건너 식당 2층에서 닭 요리와 양고기 등으로 요기를 했다. 점심을 먹으며 들었는데, 예산포(野三坡)의 발음 예산(夜三)이랑 같아 농담으로 이곳에 오면 '하루밤에 세 번 사랑을 하는 곳'이라고 한다니 재미있는 발상이다.

▲ 허베이에서 다시 베이징으로 넘어가는 산길 도로에서
ⓒ 최종명

벌써 반나절이 지났다. 아침부터 4시간 넘게 달렸으니 왕징에서 직선거리로도 1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이다. 이제 돌아가야 한다. 사실 바이리샤를 볼 것인지 험준한 산맥을 넘어가는 드라이브를 더 즐길 것인지 잠시 망설이기도 했다.

▲ 꼬불꼬불한 산길 도로
ⓒ 최종명

이제 본격적인 고산 도로 드라이브다. 해발 약 2천 미터나 되는 산을 넘어가는 길은 정말 기분이 좋다. 운전하는 사람이야 신경을 곤두세우겠지만 말이다. 포근한 산골마을도 만나고 독특함을 자랑하는 산세도 요기하고 파란 하늘을 가리고 있는 푸른 나무와도 대화하니 드라이브치고는 최상이다.

▲ 산골 마을
ⓒ 최종명

작년 12월에도 느낀 것이지만 베이징 외곽은 해발 2천 미터의 정상을 넘어가는 코스가 많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됐다. 베이징 남쪽만 화베이(华北) 평원이니 제외하고 동 서 북 쪽 모두 험준한 산맥으로 둘러 쌓인 천하의 요새라 할 만하다.

험한 산길도로를 넘어가는 곳곳에 얇은 암석으로 지붕을 만든 집들이 많다. 이곳에는 상업적 판매가 가능한 건축자재가 땅 밖에 그대로 드러나 있는 마을이 있다. 돌을 캐다가 그저 묶어서 팔면 되니 복 받은 셈이다. 게다가 석탄도 노천에 그대로 드러나 있기조차 하다.

▲ 노천 석탄
ⓒ 최종명

베이징 서북쪽 먼터우거우취(门头沟区)를 질주한다. 먼터우거우를 지나 베이징 시내로 들어서니 날이 서서히 저문다.

5월 15일, 베이징에 온 지 3일째다. 베이징 중의대를 나오고 하얼빈에서 유명 의사로부터 사사까지 한 후배가 진맥을 하자고 한다. 심장이 좀 좋지 않아 눈이 침침하고 두통이 꽤 있을 것이라고 한다.

6개월이나 되는 중국발품취재를 한다니 꽤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타고난 감각과 실력으로 명의라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화타'에 버금가는 후배니 마음 놓고 몸을 맡겼다. 후후. 내가 지어준 별명도 '한국의 화타'

고마운 일이지만 안 그래도 무거운 배낭 걱정이다. 역시 좋은 후배는 달라. 약을 최소한으로 작게 원액에 가깝게 만들어 왔다. 그래도 무겁기는 하지만 하루에 두 번 꼭 먹을 것. 힘들 때는 세 번 먹어도 됨. 술은 하루에 맥주 한 병이면 족하니 과음하지 말 것.

16일까지 민박집에서 취재기와 동영상 편집을 하면서 이틀을 쉬었더니 슬슬 몸이 근질거린다. 이제 떠나야 한다. 한 친구는 여행에는 소금이 필수라며 죽염 한 통을 챙겨주고 또 한 친구는 입맛 없으면 먹으라고 젓갈 한 통을 담아 왔다. 이럭저럭 다소 무거워진 배낭이지만 다시 힘차게 떠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