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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저우 소수민족 취재기 (2)] – 시장 첸후먀오자이에서

 

구이저우 첸후먀오자이(千戶苗寨)는 매일 공연을 연다. 마을 한복판 광장을 에워싸고 이미 천여 명이 넘는 관객이 자리 잡았다. 공연 시작은 언제나 분위기를 돋우는 징쥬거(敬酒歌). 손님을 환영하고 존경의 술잔을 올리는 것이다. 화려한 옷과 장신구를 걸친 아가씨들이 노래를 부르며 관객에게 술잔을 바치니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소의 뿔처럼 생긴 잔을 높이 들어 술을 권한다고 해 뉴자오쥬(牛角酒)라고도 한다.

 

먀오족은 아이들 복장과 남장, 여장이 다르고 여장도 평상복과 정장복이 다르다. 공연장 아가씨들은 거의 정장에 가깝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민족의상이라 칭찬 받게 한 은 장신구(銀飾)를 머리와 목에 둘렀다. 넓고 부드러운 질감으로 은은한 빛을 뿜으니 누가 봐도 먀오족 차림새이다. 파랑 상의와 빨강 치마마다에는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자수 솜씨를 담은 문양이 새겨 있다. 13명의 아가씨들이 알록달록 무늬로 허리를 흔들며 오가는 모습에 시선을 뗄 수 없다.

 

공연 모두 인상적이지만 나뭇잎피리(樹葉吹笛)’는 정말 신나고 경쾌하다. 깊은 산골에서 살아오면서 수많은 나뭇잎들이 온통 다 악기이자 리듬인 셈이다. 십 리 밖까지 들릴만한 고음이지만 단아한 새소리 같기도 하다. 입도 잎도 모두 하나면 충분히 사람의 심금을 울릴 수 있다. 어린 시절 산골 마을에서 자란 사람은 별다른 곡조 없이 읊조리듯 잎사귀를 씹던 기억이 나리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먀오족은 능거산우(能歌善舞), 노래 잘 하고 춤 잘 추는 민족이라고 누구라도 인정한다. 화려한 옷으로 살랑거리며 추는 춤은 노랫가락 반주조차 잊게 한다. 대표적 민속악기인 루셩(蘆笙) 소리는 귀를 쫑긋해야 들릴 정도이다. 갈대로 만든 구멍 6개의 형관(簧管)악기인 루셩은 어른 아이 모두 두루 잘 다룬다. 생황과 비슷하지만 공예품으로도 팔린다. 공명관과 3가지 이상의 원통 나무가 서로 엉켜 있는 독특한 모양이다. 나무 결을 따라서 흘러나오는 청아한 소리가 단조 같은 미묘한 울림이 있다.

 

아가씨들이 모두 나와 춤 추면서 노래 부른다. <다디페이거(大地飛歌)>라는 제목, 먀오족의 대표적인 곡이다. 노래 제목보다 흥미로운 것은 페이거(飛歌)라는 말이 먀오족 노래의 대명사라는 것이다. 산과 산, 산 위와 아래로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기 위해 노래를 사용한 것이다. 소리만 냅다 질러서야 힘만 들고 많은 내용을 전달하기 어렵다. 그래서 잘 만들어진 곡조에 가사를 담은 것. ‘아빠 왔으니 산에서 내려와 밥 먹자거나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 ‘낯선 사람들이 나타났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니 아주 깨끗하면서도 고음이며 멀리 날아가는 소리이자 노래이다.

 

관객이 워낙 많아 뒷자리는 계속 발 딛고 서야 한다. 무대 앞쪽에서 보니 어처구니 없게도 무대 정면에 소위 VIP좌석이 있다. 의자 10여 개가 놓여있고 차까지 마시며 관람한다. 공연 중이라도 광장을 가로질러 가는 사람은 VIP 값을 치렀기 때문이다. 왼쪽 끄트머리에 쪼그려 앉은 할아버지는 빨간 봉지에 곰방대 옆구리 걸치고 최고로 편한 자세로 공연을 즐기고 있다. 어디서 어떻게 보고 듣느냐가 무얼 그리 중요할까. 공연보다 더 자연스러운 감동을 주는 할아버지의 흐뭇한 주름이야말로 그 이상의 인간적 교감은 없어 보인다.

 

나이 일흔이 넘은 먀오족 할아버지들의 민가 합창이 이어진다. 모자부터 윗옷, 바지, 신발까지 감청색으로 단일한 할아버지 예닐곱 분이 천천히 무대에 선다. 거칠고 어눌한 말투 같은 노래지만 연륜이 묻어나는 합창은 숙연하다. 흰 수염의 관우 같은 할아버지 한 분이 유독 눈길을 끈다. 가까이 가서 질문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길목을 막아선 관리인이 야속하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다시 큰길로 나섰다. 수십 명의 할머니들이 정장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아가씨들 못지 않은 화려한 장식이다. 머리에는 은 장신구 대신 꽃을 단 것과 검정치마를 입은 것이 아가씨들과 다르다. 평상시 검정 옷을 자주 입는다 해서 먀오족 중에서도 헤이먀오(黑苗)라 부른다는데 정말 화려한 검정의 진면목을 보는 듯하다. 자수로 만든 꽃신도 모두 다 다르지만 오히려 개성만점이다. 먀오족 여성은 평상시 머리에 비단으로 만든 꽃인 줸화()를 단다. ‘왜 이렇게 꽃을 머리에 다는가물었더니 그저 민족전통이라고 한다.

 

거리는 시장이자 아이들 놀이터이다. 대나무 광주리에 강아지를 담아놓고 팔기도 한다. 정말 작은 강아지는 비닐봉지나 편지봉투에도 들어있다. 대나무 멜대인 벤단(扁担)에 돼지고기를 메고 한 손에 닭 날개를 들고 어디론가 지나간다. 갑자기 돼지 한 마리가 거리에 나타나 사람들 시선을 사로잡는다. 뒷다리에 끈을 매달고 몽둥이로 이리저리 돼지를 몬다. 무슨 잔치가 있는 것인지 살이 통통 찐 돼지는 뒤뚱거리며 꽥꽥거린다.

 

산에서 나는 야채나 벌꿀도 있고 과일도 많다. 흔히 보기 힘든 도토리가 있어서 맛을 봤다. 조금 까먹기 힘들지만 맛이 신선하고 고소하다. 1근에 10위엔 주고 사서 봉지에 담았더니 취재에 영 방해가 된다. 가방에 넣었다가 생각나면 먹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언제 어디로 버려졌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먀오족 찹쌀 술인 눠미쥬(糯米酒) 파는 항아리도 군데군데 보인다. 한 가게 앞에 먀오족샹옌(苗族香烟)이 있어 눈길을 끈다. 중국의 구이저우와 윈난을 잇는 윈구이고원(高原)은 아주 좋은 품질을 지닌 담배 농사 최적지이다. 1개비에 1위엔, 1개비 사서 피웠다. 풀로 엮은 필터가 있다고 했지만 풀 향기가 진하게 연기가 돼 뿜어 나온다. 마치 시가처럼 깊이 빨았다가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 좋겠다 싶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담배 맛을 본 이감독이 한 갑을 샀다. 한 갑은 10위엔이고 2개가 더 많은 12개비이다. 바람 없는 잔잔한 오후 담배 연기는 동그랗고 하얀 빛으로 얼굴부터 시작해 온몸을 포근하게 감싼다. 눈동자와 닮아 마치 눈빛이 살아나오는 모양인지 착각이 든다. 먀오족 마을에서 맛본 또 하나의 향연이 아닐 수 없다.

 

거리 끝자락에서 다시 산을 타고 마을 속으로 들어간다. 산 능선을 따라 생긴 좁은 길이 집집을 이어주고 있다. 한적한 골목길을 걷다가 한 집으로 들어가니 할아버지가 나와서 배시시 웃는다. 괜히 멋 적어 다시 나오는데 앞집 지붕 위 세 갈래 중심에 항아리 하나가 자리잡고 있다. 다른 지붕에는 없는 항아리이니 눈에 띌 수 밖에 없다. 용도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지붕 위 항아리라니 인상적이다.

 

산 중턱에 지은 집이라 아래에서 보면 가파른 절벽 같다. 3층 구조인 집집마다 옥수수가 주렁주렁 달린 채 햇빛에 말라 딱딱해지고 있다. 줄에 널린 빨래에도 사람냄새가 난다. 열린 창문을 통해 가족의 향기가 넘어오는 듯하다.

 

조금 넘은 골목길은 장터이다. 잡화 백화점이라 할만한데 옷 가게가 아주 많다. 눈동자가 크고 맑은 3살 아이가 옷 파는 엄마 옆에 앉아 마침 밥을 먹으려 한다. 수줍어하는 애 띤 얼굴이다. 너무 귀엽게 생겼다고 하니 여동생은 더 예쁘다고 자랑한다. 딸은 아빠랑 밖에 나갔다고 하는데 엄마를 닮았다면 정말 예쁠 듯하다.

 

산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할아버지 한 분과 사진을 찍었다. 반듯한 자세로 선 모습에서 인자한 마음씨가 묻어난다. 주름 진 얼굴에 선하고 고운 할아버지의 자태가 오래 기억되지 싶다. 외지인에게 말 한마디 없이 흐뭇한 미소까지 건넬 줄 아는 여유, 우리네 할아버지 같다. 할아버지가 내려온 길로 다시 능선 하나를 넘어간다.

 

배가 고픈 시간이라 2층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할머니에게 말을 건다. 집에서 먹는 반찬과 밥이면 좋으니 좀 줄 수 있는지, 돈은 주겠다고 간청했다. 가난해 먹거리가 마땅하지 않고 손자 손녀를 돌보는 중이라 난처하다며 머쓱해한다. 난간을 양손으로 잡고 아래를 보고 있는 아이의 까만 눈동자와 마주치니 더 간절히 애원하기 어려워졌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2층 베란다는 미인 기대 선 곳이라는 뜻으로 메이런카오(美人靠)라 부른다. 베란다에서 주로 아가씨들이 생활하며 얼굴도 다듬으며 직조도 하고 오가는 총각과 눈도 마주친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참으로 애교 섞인 말이지만 아래에서 밥 달라고 애절하게 부탁하고 있으니 좀 창피하다.

 

무턱대고 올라가 아이도 안아보고 떼 한번 더 써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말 한 마리가 좁은 길모퉁이를 돌아서 후다닥 가까이 왔다. 산 아래에서부터 시멘트를 싣고 올라온 것이다. 이 동네에서는 차보다 훨씬 유용한 짐꾼이 말이다. 주인이 짐을 내려놓는 사이 킁킁 몇 번 호흡하더니 성큼성큼 다시 사라졌다.

 

골목을 내려가다 보니 벽에 커다란 거울이 걸린 집이 나온다. 식당과 숙식을 겸하는 농가이다. 안으로 들어서 2층 바깥으로 작은 정자처럼 꾸며진 식탁에 앉는다. 강에서 직접 잡은 물고기와 야채 요리, 그리고 밥을 주문했다. 마침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에 운치까지 선물하니 멀리서 온 손님으로서 고맙기 그지 없다. 밀주를 반주로 하기에 더 없이 좋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마을로 내려온다. 엄마 대신 잡화를 파는 여자아이와 말도 걸어본다. 수줍게 고개를 뒤로 돌린다. 뒤쪽 벽화에는 밭 가는 아주머니가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아버지가 아들 머리를 바리캉으로 깎아주고 있다. 아이는 고개를 푹 숙였지만 애써 귀찮은 표정조차 감추긴 어려워 보인다. 그들은 어떨지 모르나, 아무 말 없이 까만 머리카락을 털어내고 있는 부자 모습을 보니 둘 다 포근히 안아주고 싶다.

 

하루 종일 색다른 풍물 구경에 약간 피로했다. 숙소로 돌아와 창문 열고 해 지려는 마을의 전경을 시야에 그린다. 이 잔잔한 색깔, 싱그러운 소음을 언제 또 볼 수 있으리. 아래 층에서는 저녁 손님을 맞으려는 듯 루셩(蘆笙) 부는 소리가 시작됐다. 해 질 때까지 이불 덮고 옅은 잠을 청했다.

 

한참 잤는데도 루셩 소리는 여전하다. 창문을 여니 어느새 마을은 새 세상으로 변모했다. 거실로 나가니 마을 야경이 언제는 멋지지 않았냐는 듯 천연덕스럽다. 우리가 거닐던 골목길과 집마다 등이 켜졌고 강을 사이에 둔 랑챠오(廊橋), 회랑 다리 역시 조명이 밝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식당에는 이곳 특별요리인 쏸탕위(酸湯魚)를 먹고 있는 중국사람들이 있다. 맛을 물어보니 약간 새콤한 것만 빼면 매운탕과 거의 같다. 식당 아가씨 3명이 노래를 부르며 술을 권하고 존경스런 대접을 하는 모습도 재미있다. 손님 맞는 풍속을 그대로 응용한 것이다.

 

우리는 밤 거리로 나섰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고 조용해 이리저리 걷기 좋다. 갑자기 한국이란 글자가 보여 깜짝 놀랐다. 빙글빙글 돌아가며 굽는 기계인 군둥샤오카오(滾動燒)로 닭과 오리를 구워 판다. 진짜 한국산이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오리 한 마리를 주문하고 안쪽 다파이당(大排檔)으로 들어간다. 바로 노상 야시장이다.

 

고기, 야채, 해산물, 버섯 등 꽂을 수 있는 것은 다 있는 가게이다. 이것저것 먹을 만큼 시키니 익는 순서대로 나오고 상으로 올라올 때마다 술잔도 늘어간다. 맥주와 중국 술 곁들여 중국과 소수민족 그리고 취재 이야기를 섞는 이 밤은 폭탄이 터져도 나 몰라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