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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35회 후베이 삼국지 요새에서 학을 타고 날아간 사람

 


후베이 성은 둥팅후(洞庭湖) 북쪽에 위치하며 기원전부터 제후국인 악()나라가 존재했으며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영토이고 수나라 이래 악주라 불립니다. 지금 후베이 성의 약칭이 바로 ()’이다.

 

성 수도인 우한(武漢) 1927년 중화민국이 우창(武昌), 한커우(漢口), 한양(漢陽)을 합쳐 만들었다. 한커우는 당나라 이후 이름난 상업도시였으며 우창은 삼국시대 손권이 적벽 전쟁에서 승리한 후 건설한 도시다.

 

싼샤(三峽) 댐이 있는 이창(宜昌) 서쪽은 소수민족인 투자족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소수민족 생활터전과 세계 최대의 댐 그리고 창장을 바라보고 있는 멋진 누각으로 찾아가보자.

 

(1) 이창 宜昌 거대한 물줄기를 내뿜어 어디로 가는가

 

후베이 성 이창 시내에는 창장이 흐른다. ‘만리창장 제일공원(萬里長江第一園)’이라는 빈장공원(濱江公園)으로 갔다. 깨끗해 보이지는 않지만 강변에서 수영하고 데이트 즐기며 산책도 한다.

 

수영복 모자까지 쓰고 물살을 따라 내려가며 헤엄 치는 아이들이 많다. 부모들은 그런 아이들을 흐뭇한 듯 바라본다. 외국인들도 수영팬티만 입고 산책을 하고 있다.

 

화물선이 오고 가고 유람선도 지나간다. 충칭(重慶)과 이창을 오고 가면서 싼샤를 유람하는 배이다. 유람선에서 며칠 동안 숙박하면서 창장의 협곡을 비롯해 주변 역사체험도 하는 여행상품도 있다.

 

비록 황토가 섞인 강이긴 하지만 도도히 흐르는 강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한결 마음이 여유롭다.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오면 홍등이 켜진 강변 2층 찻집이 운치가 있다. 사람들이 광장에 나와 춤을 추고 있다. 창장을 끼고 있는 중국도시들은 모두 이런 낭만적인 강변공원이 일상생활이다.

 

다음날 싼샤 전용도로를 따라 약 한 시간을 가니 싼샤 댐에 다다르게 된다. 싼샤다바(三峽大)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탄즈링(罎子陵) 공원으로 올라가니 댐의 전경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엄청나게 큰 댐의 모습도 웅장해 보이지만 멀리서 보는데도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가 엄청나게 힘차다. 공원 한가운데에서 뿜어 나오는 분수도 시원하다. 공원을 소개하는 은색 빛깔의 돌로 만든 책도 보인다.

 

다시 185관징뎬(觀景點)으로 갔다. 댐과 좀더 가까운 곳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인공적으로 구축한 거대한 댐의 모습을 관람하는 외국 관광객들이 많다. 망원경으로 댐을 더 가깝게 보기도 한다. 가이드들은 댐 소개책자를 영어로 소개하고 있는데 판매하려는 것이다.

 

'185'는 댐 정상의 해발고도가 185m라는 말이다. 댐의 부피는 393억㎥, 정상 수위는 175m, 댐 길이 2309.5m, 연간 평균발전량이 846.8kWh에 이르는 세계 최대규모다. 우리나라 최대 저수량 29억㎥이라는 춘천 소양강댐과 비교해 무려 13배가 넘으니 크긴 크다.

 

다시 댐을 건너 반대편 작은 공원으로 갔다. 댐 한가운데 있는 섬이나 다름 없다. 댐 공사에 참여한 노동자 일꾼들의 조각상을 세워 놓았다. 공사 중에 발견된 기암괴석들을 전시하고 있다.

 

거저우바(葛洲) 측량공정원이란 회사가 세운 측정기구가 보인다. 이곳에서 무엇인가 측정한다기 보다는 댐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가 더 커 보인다. 거저우바는 창장에 건설된 최초의 댐이다.

 

댐 한가운데를 통통배가 지나가고 있다. 고기를 잡는 배는 아니며 댐 속의 수질 등을 관리하는 배인 듯하다. 넓은 댐을 가로질러 가는데 시간이 엄청 걸릴 듯 하다.


이창 강변(왼쪽 위), 쌴샤 댐 공원(왼쪽 아래), 싼샤 댐(오른쪽) 


물막이 공사를 기념하는 제류(截流)공원도 있다. 깔끔하게 조성된 공원이지만 공사에 투입됐던 장비까지 전시해 놓아 공원이라기 보다는 공사장 같은 느낌을 받는다. 조그맣게 만든 인공하천 속에서 잉어들이 이리저리 다니고 있다. 잘 조성된 꽃과 나무들이 공원의 모습을 갖추긴 했지만 공사 현장의 모습도 그대로 자연스레 담았는데 부조화가 낯설다.

 

댐을 위에서, 옆에서 보고 왔는데 댐 아래쪽에서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댐에서 나오는 엄청난 양의 방류를 가깝게 볼 수 있다. 뿜어 나온다기 보다는 터져 나온다고 해야 할 듯하다. 댐에서 터져 나온 물줄기가 서서히, 차례차례 다시 강 아래로 물결 치며 떠 내려가는 모습이다. 수문이 겨우 몇 개만 열렸을 뿐인데도 장관이다. 모든 수문이 열려 물을 방류해야 할 정도가 되면 왠 만한 도시는 다 물에 잠길 지도 모르겠다.

 

(2) 쯔구이 그 옛날 바 왕국이 살던 나라에 가다

 

이창에서 창장을 따라 서북쪽 쯔구이 현에는 싼샤런자(三峽人家)라는 풍경구가 있다. 소수민족의 산속마을(山上人家), 수상마을(水上人家), 계곡마을(溪邊人家)을 합친 관광상품이다.

 

배를 타고 가는 길에 가이드가 마이크를 들고 애절한 노래를 부른다. '후리리리~ 후리리리~'하는 후렴구가 인상적이다. 노래는 뱃고동 소리와 어우러져 애잔하게 강물 위로 퍼져간다.

 

덩잉샤(燈影峽) 입구에서 내려 케이블카를 타고 창장 제일의 암석이라는 덩잉스(燈影石)에 올랐다. 덩잉스는 <서유기>에서 인도 불경을 가지고 오는 모습과 흡사한 모습이라고 하는데 이해가 될 듯 말 듯하다. 저녁 노을이 질 때면 마치 무대 위에서 등불이 빛나는 모양과 유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덩잉스에서 계곡 길을 타고 내려가면 산상 마을이 나타난다. 화장실도 있고 종이를 오려 만든 졘즈(剪紙)를 파는 상품가게도 있고 맷돌 같은 투자족 농기구를 비롯 생활도구들이 매우 친근하다. 옥수수가 걸려 있는 집도 보인다. 꼬마아이가 맷돌을 돌려보려고 애를 쓰는데 힘이 들어 보인다.

 

춘추전국시대 이전 독창적인 문화를 지니고 살아온 파()나라와 투자족은 연관이 있다. 이 산골짜기에 바왕궁(巴王)이 있을 줄 몰랐다. 궁이라고 할 정도로 크지는 않고 전시된 것도 옷가지나 간단한 생활 도구만 있을 뿐이다.

 

왕과 왕비의 침실도 있고 2층 구조의 목조 건물에는 사당도 있고 강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도 있다. 2층에서 내려보니 마당가운데에 태극문양이 보인다. 창장을 무대로 후난성과 후베이성에서 살던 투자족은 지금도 800여 만 명이 살아가는 꽤 큰 소수민족이다.

 

바왕궁 옆에는 시간터널(時光隧道)이라는 덩잉둥(燈影洞)이 있다. 1.5km에 이르는 신비한 동굴을 따라 내려오면 강변에 이르게 된다. 동굴 속에는 낙차 30m에 달하는 지하폭포가 시원한 물줄기를 뿜고 있으며 물이 아주 맑다.

 

강변에 관광객들을 위한 공연장이 있어서 들어가 봤다. 편종을 비롯 다양한 민속악기들이 총동원된 공연인데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사이사이 무용수도 등장해 연주에 맞춰 선녀 같은 춤을 추기도 한다. 30분 정도의 짧은 공연이지만 나름대로 짜임새 있고 골고루 많은 악기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싼샤런자 공연(왼쪽 위), 바왕궁(왼쪽 아래), 투자족 배 낚시(오른쪽 위), 매파와 신랑신부(오른쪽 아래)


강변 옆에 막 전쟁터로 진군할 듯한 자태로 나무 배 몇 척이 서 있다. 이곳이 수상마을인데 산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서로 만나 수량이 풍부하고 어종도 다양하다.

 

계곡에서 한 어부가 나룻배를 타고 가서 고기를 낚을 준비를 하고 있다. 늙은 어부가 긴 줄을 느슨하게 늘어뜨리자 배보다 훨씬 넓고 큰 어망이 몸을 펼친 채 물 속에 잠긴다. 배를 중심 축으로 4개의 대나무로 걸친 거대한 그물이 펼쳐진다. 그물의 무게를 지렛대로 물 속으로 천천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온다. 대나무 2개를 끌어당기니 그물이 솟아오른다.

 

계곡 물 빛깔이 연녹색으로 푸릇푸릇하다. 물 위에 수초들과 나무 잎들이 떨어져 연출한 색깔이다. 청둥오리 몇 마리가 물에서 놀고 있다. 1급수보다 더 맑은 물을 따라 계속 계곡을 올라간다. 이름 모를 나비 한 쌍이 서로 펄럭이며 장난 치더니 풀잎 위에 다소곳하게 나란히 앉았다.

 

작은 다리를 지나 계곡마을로 들어서는데 꼬마아이가 한국에 대해 궁금한 게 아주 많은가 봅니다. '마마는 뭐라고 말해요?' '엄마'라고 한다고 알려주고 '아빠'도 알려줬다.

 

폭포에서 물줄기가 떨어져 이뤄진 연못도 보고 계곡 옆에 있는 가옥에 올라갔다. 사방이 뚫린 2층 목조건물인데 휑하니 아무런 장식이 없는 집이다. 2층에서 보니 폭포 물줄기가 정말 시원하다. 빠르게 쏟아지는 폭포가 계곡을 따라 창장으로 흘러가게 된다. 맑은 계곡물이 황토와 섞여 버린다고 생각하니 다소 아쉽다.

 

반대편 계곡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결혼의례가 벌어지고 있다. 투자족 아가씨와 남자관광객 중 한 명을 정해 혼례를 치른다.

 

꽃무늬 가마도 등장하고 징과 북으로 분위기를 돋우는 소리도 흥겹다. 하늘하늘 거리는 녹색과 연분홍색 옷을 걸친 생머리 아가씨들이 전통 춤을 춘다. 오른손을 올렸다가 휘젓더니 왼손도 올렸다가 휘젓고 뒷짐을 한 채로 어깨춤을 추면서 팔짝팔짝 뛰기도 한다.

 

2층으로 올라가니 총각은 어느덧 검은 모자를 쓰고 전통복장으로 갈아입었다. 신랑은 하늘색과 색동 비단 옷을 입고 머리와 어깨에는 빨간 리본을 매달았으며 신부는 붉은 비단 옷과 모자를 쓰고 나타난다. 신부는 들러리와 함께 노래 한 곡을 부르고 나서 신랑에게나랑 결혼할 생각이 있는지물어본다. 신랑이()’이라고 크게 외치니 혼례가 성사된 것입니다. 혼례를 주선한 매파가 여장남자다. 너무 예쁘게 생긴 아주머니라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남자다.

 

계곡을 따라 선착장으로 내려왔다. 선착장에서 보니 강변에서 살아가는 수상마을이 더 잘 보인다. 아쉽지만 싼샤런자를 떠나야 한다. 배를 타고 수상마을 앞을 지나 갑니다. 공연을 봤던 곳도 지나고 산봉우리 정자도 보인다. 지금은 관광지가 됐지만 산과 강물 그리고 계곡에서 살아가던 투자족 사람들의 정다운 생활모습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3) 우한 武漢 삼국지 요새에서 학을 타고 날아간 사람들

 

중국 3'찜통도시' 중 하나인 우한의 9월초, 정말 푹푹 찔 정도로 덥다. 수천 킬로미터를 흐르는 창장 지류 중 가장 길다는 한수이(漢水)와 만나는 곳이다. 한수이와 창장을 경계로 위, , 오 삼국이 자웅을 겨루던 경계이다.

 

버스를 타고 창장 남쪽 우창(武昌) 지구에 있는 황허러우(黃鶴樓)에 도착했다. 남쪽 문 옆에는 공예품 파는 골목이 하나 있다. '황학고사(黃鶴古肆)'라는 이름인데, ''는 다세(大寫) '()'를 뜻하지만 '가게'라는 뜻도 있다.

 

양 옆으로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데 연한 빛깔의 종이우산이 두 줄로 하늘을 향해 걸려 있다. 아래에서 바라보니 햇살을 받아 투명하면서도 은은한 색채를 띠고 있는 모습이 황홀하다.

 

강남3대 누각인 황허러우 문으로 들어서니 작고 아담한 연못인 '어츠(鵝池)'가 보인다. 명필 왕희지(王羲之)는 황허러우에 거위를 놓아준 적이 있는데 어느 날 서생들과 거위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거위는 '날짐승 중 호걸이며 눈처럼 희며 구슬처럼 깨끗하고 한 점 티끌도 없다'고 하며 땅 위에 한자로 '()'자를 썼다. 그런데 한 서생이 글자가 좋아 모사를 해 비를 세우고 연못을 만들었다. 지금도 연못 위에 거위 몇 마리 노닐고 있다.

 

거대한 암석 벽에 이백(李白)이 쓴 '장관(壯觀)'이 눈에 들어온다. 이백은 다퉁(大同)에 있는 절벽 위에 세운 불교사원 셴궁쓰(懸空寺)에 있는 '장관'이란 글자와 똑같이 ''자 옆 오른편에 점 하나를 더 찍었다. 잘못 쓴 것이 아니라 경관이 너무나 아름답다는 감탄의 의미인데 여기 이곳에도 있다. 아주 상습적인 듯 하다.


황허러우 우산(왼쪽), 장관(오른쪽 위), 누각 벽 학 문양(오른쪽 가운데), 정문(오른쪽 아래)


당나라 시대 문인이며 시인인 최호(崔顥)가 남긴 멋진 시문이 있는 부조가 있다. 시를 보고 이백이 절필까지 했다는 <최호제시도(崔顥題詩圖)>에는 구름 사이에서 긴 소매를 휘날리며 꼿꼿한 자세로 운필(運筆)하는 모습과 함께 연한 초록색을 머금어 더욱 생생한 느낌의 불후의 명시 <황학루(黃鶴樓)>가 새겨 있다.


    昔人已乘黃鶴去, 此地空余黃鶴樓。

    선인은 황학을 타고 날아가고, 이곳에는 황학루만 남았구나.

    黃鶴一去不復返, 白雲千載空悠悠。

    황학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흰구름만이 천 년 세월을 지키고 있네.

    晴川歷歷漢陽樹, 芳草萋萋鸚鵡洲。

    맑은 하늘은 한양의 나무를 비추고, 풀 향기가 앵무 섬에 가득하구나.

    日暮關何處是, 煙波江上使人愁。

    날이 저무는데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아련한 강 안개에 수심만 깊어지누나.

 

최호의 시에 등장하는 황학을 타고 날아간 선인은 누구일까요? 남북조 시대 소설가인 은은(殷芸)이 쓴 고사에 3사람의 소원이 나온다. '양주 관리가 되고 싶다'는 사람과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사람, '학을 타고 훨훨 날고 싶다'는 것이 각각의 소원. 3사람의 소원을 합쳐 '전대에 돈을 가득 넣고 학을 타고 양주로 가고 싶다(腰纏十萬貫, 騎鶴下揚州)'고 하는데 '양주의 학'은 바로 사자성어로 '이것저것 좋은 것을 다 누린다'라는 뜻이다.

 

뤄메이쉬엔(落梅軒) 2층 공연장으로 갔다. 무대 한가운데 편종이 있고 북과 피리, 구멍 뚫린 도자기 나팔인 쉰()과 생황도 보인다. 머리에 리본 장식을 아가씨가 현악기 구정(古箏) 독주를 합니다. '신데렐라'라는 뜻의 대중가요인 후이구냥(灰姑娘)을 연주한다.

 

이어 편종 소리가 "땡땡땡땡 때데데뎅" 울린다. 귀를 기울였더니 베토벤의 '합창'이다. 망치로 두드리는 종소리가 깊은 여운을 남기며 계속 이어진다. 편곡이 돼서 3분 동안의 연주지만 음의 파장이 긴 여운으로 한참 동안 귀속을 맴돌고 사라지지 않는다.

 

공연장을 나와 황허러우 제일 동쪽 끝에 있는 악비(岳飛)의 동상을 찾았다. 악비는 12세기 남송의 장수로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에 항거한 한족 영웅이다. 북송 수도인 카이펑(開封)을 내주고 남쪽으로 밀려난 한족이 여진족과 대치한 그의 삶을 높이 평가한다.

 

높이 8미터에 이르는 등 뒤에는 한 필의 말이 함께 조각돼 있다. 왼발을 내딛고 오른발을 힘껏 들어 내달리는 형상이다. 머리는 왼쪽을 향해 약간 숙인 모습이 강인해 보이며 휘감은 듯 날리는 꼬리까지 멋지다.

 

황허러우 방향으로 향하는 산길에는 패방인 악비공덕방(岳飛功德坊)이 있다. 높이 10.7미터, 너비 7미터 규모에 네 기둥과 다섯 들보가 어우러진 흰색 대리석 모습이 장엄하다. 기둥마다 양쪽으로는 두 마리씩 모두 여덟 마리의 돌 사자가 조각돼 있어 민족 영웅에 대한 배려가 느껴진다.

 

황허러우 자태가 등장하고 그 앞에 바오퉁딩(保銅頂)에는 천년길상(千年吉祥) 종이 있다. '천 년을 기다려 한번 친다'는 종을 치려면 돈을 내야 한다. 10위안은 3, 20위안은 6, 30위안은 9번 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종을 치는 회수만큼 그럴 듯한 덕담이 따라온다는 것이다. ()는 발음이 같은 '()'를 써서 '지구천장(地久天長)'의 복을 받게 된다.

 

삼국시대 손권은 서기 223년에 황허러우를 세우고 전초기지이자 요새로 삼았다. 창장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촉나라, 북쪽으로 위나라와 대치하고 있었으니 사방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군사적 목적의 누각을 세운 것이다.

 

손권은 악주를 전략적 요충지로 하면서 '무로써 나라를 다스려 번창한다(以武治國而昌)'는 뜻으로 이곳을 '우창(武昌)'이라 명명한다.

 

황허러우는 오랜 기간 여러 번의 참화를 거쳤고 1884년 큰불이 나서 누각의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다가 1985년에 이르러 50여 미터에 이르는 웅대한 모습으로 중건됐다. 1층 벽면에는 전설을 상상해 그린 듯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모습, 구름 속에 쌓인 황허러우 위로 날아가는 황학의 멋진 모습이 그려져 있다.

 

5층 높이 꼭대기에 올라가니 아래로 구비구비 흘러가는 창장의 모습이 훤하게 드러나고 마치 발아래 있는 듯하다. 사방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요새로 손색이 없다.

 

아래로 내려와 밖으로 나오니 학 한 쌍이 다정하게 서 있다. 바로 '황학귀래(黃鶴歸來)' 동상이다. 학 두 마리가 창장 쪽 정문을 향해 정답게 있는 모습이 보기 좋은데 모양이 예사롭지 않다. 거북이 위에 뱀이 똬리를 틀고 있고 그 위에 학이 있는 형상이다.

 

전설에 의하면 우왕(禹王)이 치수를 하니 옥황상제가 거북이와 뱀을 내려 보내 일을 도왔다고 한다. 이 모습을 굽어 보던 선학 두 마리가 감동 받아 환골탈태해 속세로 내려오니 모든 사람들이 함께 즐거워했다고 한다.

 

전설이 아니더라도 거북이와 학 모두 '천수를 누리는 영물'이고 상서로운 동물인데다가 뱀 역시 '영구'함을 상징하니 이보다 멋진 조합이 또 있을까 싶다.

 

대문 앞에는 원나라 시대 세운 백탑인 셩샹바오타(勝像寶塔)가 자리잡고 있다. 이 백탑은 다각형의 조화로 이뤄져 있어 오래 봐도 지겹지 않고 아름답다. 아래에는 둥근 받침대가 있고 그 위로 병()과 바퀴 살(), 우산덮개(傘蓋) 그리고 봉분(寶頂)까지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정문을 나와 뒤돌아보니 백탑과 패방, 누각이 서로 역사의 숨결을 달리하고 일직선으로 나란히 줄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람들이 문 앞에서 서서 기념사진을 찍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