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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일 '안후이'(安徽)성 성도(省都)인 '허페이'(合肥)에서 짧디짧은 반나절을 보냈다. 북경에서 밤기차로 왔으니, 조금 피곤하기도 했고 무더운 날씨로 호흡조차 곤란할 정도. 다음 목적지인 '루안'(六安, 원래 '리여우'라 읽는 줄 알았는데, 도로표지판으로도 지방말로 '루'라 하니)이라는 도시로 가려면 1시간을 더 서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역 광장에서 마중 나올 사람을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니 오전 10시35분. 동비천과 서비천이 만나는 곳이라 하여 이름 지어진 '합비'.

중국 역사 에서 청백리의 상징으로 추앙받는 포청천(包靑天)의 고향이기도 하고, 청나라 말기 정치가 이홍장(李鸿章)의 고가가 있는 곳. 삼국지에서 위나라 장수 장료(张辽)가 손권(孙权)의 오나라 10만 대군을 물리친 치열한 전투의 현장인 '샤오야오진'(逍遥津)이 바로 이곳이다. 

택시와 버스, 삼륜차가 역 앞에 다 모여서 사람들을 실어나르고 있다. 남방 더위가 장난이 아니라 하더니 정말 엄청 덥다. 기다리는 사람은 5분이면 도착한다더니 감감무소식이다. 중국에서 사람이 온다면 오겠거니 하고 기다리는 게 상책이다.

혼자 배낭 메고 기다리고 있으니, 아마도 20대 정도의 삼륜차 운전사가 물어봤나 보다. 탈거냐고. 처음엔 대꾸하다가 나중에는 그냥 모른 척했다. 정말 말도 못할 정도로 더웠기에. 10분이나 더 지나 까만 그랜저를 몰고 사람이 왔다. 바로 나를 중국 땅에 오도록 한 '웬수'다. 게다가 오자마자 하는 말이 '오늘 사우나 좀 해야겠다' '뭔 말이래요?' '어 며칠 전에 콩티아오가 고장인데 중국에 부속품 없는 거 알지?' '콩티아오'(空调)가 에어콘인거 아시지요?

아침도 못 먹었고, 덥기도 하거니와 그냥 '허페이'를 지나치기가 아쉬워, 은근히 쉬었다 가길 바랬다. 마중 나온 사람도 마음을 알았는지, '허페이'의 '빠오허'(包河) 공원에서 짧은 눈요기를 할 수 있었다.

'빠오허' 공원 주변에는 '빠오칭티엔'(包靑天)의 사당인 '빠오꽁츠'(包公祠)와 묘지인 '빠오쩡무'(包拯墓)가 있다. 포청천은 북송 시대의 유명한 판관으로 본명을 포증(빠오쩡)이라 하는데 그의 청렴결백을 기려 포공(빠오꽁)이라 높여 부른다. 그의 청백리로서의 삶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고 있는데, 한국에 소개된 드라마 '포청천'이나 '칠협오의' 등 드라마의 좋은 소재이기도 하다.

'칭펑거'(清风阁)는 그의 탄생 천년을 기념해 2000년 10월에 개장한 일종의 기념관인 셈이다. 시간이 없어 내부에 들어가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물론 그의 사당과 묘원도 바로 코앞인데 가지 못했으니 서운하기 이를 데 없다. 나중에 다시 날 잡아서 와야지 하는 마음만 점점 커진다.

공원에서 바라본 청풍각이다. 서민들을 위한 정치와 약자에 편에 선 재판, 평생 소박하고 지극한 효심으로 살다간 그의 공덕을 기리는 듯 높고도 높은 누각이다. 천년이나 지났음에도 잊혀지지 않는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존경심이 아닐런지.

잔잔한 호수는 늘 많은 것을 비춘다. '허페이'는 다운타운을 중심에 두고 작은 호수들이 사방을 둘러싼 형세이다. 그러니 한참 건설 중인 건물의 형상이 그대로 호숫물에 투영될 수 밖에 없다. '안후이'는 현 중국국가주석인 '후진타오'(胡锦涛)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래서 개발붐이 일어 성 곳곳이 한창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청백리의 이름을 딴 호수공원에 비친 건설붐이 진정 공평무사하길 기대해본다.

호수 가운데 '푸좡'(浮庄)이라는 작은 섬이 하나 있다. 그 입구가 꽤 분위기 있다. 종업원들이 교육을 받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것으로 봐서 식당이 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아니나다를까 멋진 건물이 나타났는데 바로 식당이란다. 호수도 이쁘지만 섬 가운데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 식당 역시 볼만하다. 건물 자체야 뭐 볼 게 있으랴. 자연 그 자체와 어울리니 그저 어떤 건물이라 해도, 누구라도 운치 백점이라 하겠다. 주변의 나무와 멀리 빌딩들만 아니라면 떠나가는 배처럼 봐도 손색이 없지 않은가. 여전히 호수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너무 인상적이라 좀 멀리 떨어져서 다시 봐도 참으로 가관이다. 호수에 비친 마음을 안주로 하얀 식당에서 한잔 술이라도 들어간다면 발길을 돌리긴 힘들 게다.

그리고 다시 서쪽으로 눈길을 돌리니 또하나 아담한 건물이 보인다. 나무에 가렸지만 호수와 하늘을 반으로 가르는 솜씨가 제법 격조가 있다. 하늘까지 특유의 본색을 드러냈다면 정말 이곳을 떠나가지 못했을 지 모른다.

배를 탈 수 있다. 정말 시간이 '웬수'다. 배를 타고 노닐면 호수에 담긴 온세상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도 남지 않겠는가.

아마 이곳도 정자가 있고 건물이 있는 것으로 봐서 식당일 듯 싶다. 꼭 다시 되돌아와서 한나절 풍덩 빠져볼 일이다.

호수를 따라 산책로가 길다. 푸른 나무와 숨결을 나누고 고요한 호수와 윙크하고 넓은 하늘과 포옹하며 걸어보는 기분, 정말 이루 말하기 힘들다. 오래 마냥 저 길을 걷고 싶었다.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남방 특유의 나무들이 줄지어 있다.

이날 따라 빈 벤치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사리사욕을 버리고 모든 이의 버팀목같은 자리이던 '빠오꽁'과 닮아있다. 주인 없는 자리는 모두가 주인이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비록 황제의 신하로서이긴 했지만 인간을 사랑하고 정의를 실천한 그의 사상으로 인해 '빠오허' 공원의 벤치는 더욱 그 빈자리가 커보인다.

호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다리를 편하게 해주는 벤치야말로 쉼터가 아닌가. 또한, '빠오꽁'의 호수라 하니 선한 사람들을 위한 안식처일 게다. 고요한 마음으로 호수와 교감하면 천년의 역사도 갈라놓지 못한 '정의'와도 공유할 것이니, 이처럼 풍부한 영양제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벤치와 조명등, 그리고 사이에 살짝 앉은 키작은 나무 한그루. 이들도 다 제각각 자기의 자리일 것이다. 벤치를 이해하니 빛을 밝히는 조명등도, 겸손한 나무 한그루도 다 사랑스럽다.

그래서 나도 자리를 차지해보고 싶었다. 벤치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많은 사람들의 희망이고도, 머리 숙인 소박함이고도 싶었을까. 이 잔잔한 자연 앞에서 너그러워 지는 건 위인에 대한 기억과 존경이 어우러진 소치일 것이리라. 세상과 화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벤치가 되기를 권한다.

사진을 찍고 나서 '사장님도 사진 찍으세요?' 하니 '난 인물사진 안 찍어!' 에구~ 빨리 가자는 이야기인가 보다.

다시 찜통 그랜저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빨리 달리면 창문으로 바람이 날아드니 시원하다. 달리지 못하면 더위를 잊으려고 연신 카메라로 거리를 담았다. 더위를 먹었는지 영 눈에 드는 모습과 만나지 못하고 그저 아쉬운 '허페이'를 떠나고 있다.

'허페이'에서 '루안'으로 가는 길. 고가를 타고 오르니 하늘이 갑자기 검게 변해 금방 비가 올 태세다. 아무리 중국에서 바쁘더라도 앞유리 좀 닦고 다니지 깨끗한 화면을 담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이곳 '허페이' 사람들은 중추절(中秋节)에 '위에삥'(月饼)외에 한가지 꼭 먹는 게 있다고 한다. 바로 '빠오허'에서 나는 연꽃뿌리(藕荷)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포청천이 말년에 황제가 '허페이'의 땅을 하사하려 하자 이를 거절했는데, 그 이유는 자손들이 '스스로 노력해 살아가길'(自食其力) 원했기 때문이다. 황제의 명을 더이상 따르지 않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성 외곽의 작은 '호수'를 받았다 한다.

당시에 연꽃뿌리가 아주 많았던지, 이를 근거로 후손들이 안락한 생활을 할 것을 염려한 그는 하나의 규정을 만들었다 한다. 그것은 바로 연꽃뿌리를 먹을 수는 있지만 판매할 수 없다는 것. 즉, 사리사욕이 생기는 것을 원천봉쇄했다는 뜻이다. 이후 '빠오허오우'(包河藕), '빠오호수의 연꽃뿌리'는 사심이 없다는 뜻과 동의어가 되었다 한다. 바로 '맑고 깨끗하고 사심이 없이'(冰心无私) 살아가고자 하는 이 지역 사람들의 풍속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그나마 '빠오허' 공원이라도 보지 않고 떠났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뻔했다. 꼭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또 생겼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