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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베이징 역, 밤은 대낮처럼 밝다. 7월 마지막 날, 칠월칠석 날 밤, '안후이'(安徽)성 성도인 '허페이'(合肥)를 가기 위해 밤 기차를 탔다. 무려 11시간이나 걸리니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고 떠났다. 아마도, 70년대 서울에서 부산으로 기차여행을 한 이래 가장 긴 기차여행이 아닐까 생각한다.

밤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전국 각지로 가는 사람들의 발길로 인산인해. 산으로 바다로, 명승고적을 찾아 가는 여행객이야 쉽게 알 수 있으나, 고향을 찾는 것인지 일을 찾아 떠나는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역 광장은 기차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넘친다.

베이징 역은 1901년, 청나라 때 처음 만들어졌는데, 지금 현재의 자리는 아니고, 천안문광장 남측에 있는 '쩡양먼'(正阳门) 속칭 '치엔먼'(前门) 동쪽에 보면 그때 기차역의 흔적이 남아있다.

'베이징 짠'(北京站) 조명이 멀리서도 보이도록 높게 솟아있다. 입구는 혼잡하다. 중국은 기차 역도 짐 검사를 하니 더욱 복잡하다. 그런데, 빠르게 짐 검사가 진행되고 여권이나 신분증 검사는 없으니 비행기보다야 견딜만 하다.

베이징에는 천안문광장과 왕푸징과 가까운 본역 외에도 동,서,남,북 역이 다 있다. 기차표를 살 때 출발 역을 꼭 명심할 필요가 있다.

역에 들어서니 천정이 높고 조명도 밝다.

대합실을 '호우처스'(候车室)라 한다. 제2대합실 입구다.

대합실 모습이다. 즐거운 기차여행인데 왜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한가. 우리나라 대합실과 분위기가 다르다. 특히, 일단 시끄러워서 죽는다. 왜 그렇게 크게 떠드는 지 알 수 없으나, 소란 속에서도 참 잘도 잠잔다.

대합실 부근에는 가게가 죽 늘어서있다. 나도 긴 시간을 가야하니 맥주2캔과 '얼궈토우'(二锅头) 1병, 그리고 물 2병을 샀다. 기다리는 동안 저렇게 누워자는 게 가장 속편할 듯하다. 시끄러운 대합실보다야 이곳은 나름대로 조용하다.

기차가 출발하는 플랫폼을 '짠타이'(站台)라 한다. 10시30분에 출발하는 '청더'(承德)행 4413편 열차와 10시41분에 출발하는 '허페이' 행 T63편 열차가 현재 표 검사를 하고 있다. 'T'가 붙은 열차편은 '터콰이'(特快)라는 표시인데, 특급이란 의미다. 멀리 갈수록 '터콰이'를 타지 않으면 시간이 더 많이 걸릴 것이다.

중국 기차는 영문이니셜로 속도와 서비스 수준을 판가름할 수 있다. 가장 좋다는 '쯔다터콰이'(直达特快)는 'Z'가 붙어있는데, 이는 대도시와 대도시를 직통으로 가니 빠르고 상쾌하고 비싸다. 다음 수준이 바로 'T'가 붙은 '터콰이'이다.

'K'나 'N'이 붙은 것은 '터수'(特速)기차다. '터콰이'보다 정차하는 곳이 많으니 더 느린 편이다. 대도시가 아닌 지방을 가려면 타야한다.

영문이니셜이 없는 것은 '푸콰이'(普快)기차다. 에어콘이 있는 것도 있지만 없는 것도 있다. 아주 시골로 가려면 타야한다. 전에 '따통'에서 '타이위엔' 가면서 한번 탔는데, 실내에서 담배피는 사람들때문에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마지막으로는 'L'이 붙은 기차가 있는데 이는 '린스'(临时), 즉 임시열차편이다. 명절이나 휴가철에 자주 등장한다. 작년에 '친황다오'(秦皇岛) 부근 해수욕장인 '베이다이허'(北戴河)에 갈 때 타봤다.

왼쪽이 '허페이'가는 기차다. 밤 플랫폼이 사뭇 비장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11시간이나 가야 한다는 부담때문인지 모르겠다. 붉게 번진 조명때문이기도 하고, 혼자 기차를 타니 그런지도. 40시간 이상도 가는 중국 사람들이야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각 열차 칸 입구에 또다시 표 검사를 하는 승무원들이 있다. 손님을 기다리는 승무원의 자태가 단정해보인다.

내가 타야할 곳이다. 승무원에게 종이표를 보여주면 플라스틱 표로 바꿔준다. 다시 내릴때 종이표로 반환해준다. 이렇게 하면 빈 좌석을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보통 기차에는 침대칸과 일반칸이 있는데, 일반칸 여객이 원할 경우 기차 내에서 침대칸 표를 살 수 있다.  

기차표다. 13호 차량, 좌석번호 20호, '시아푸'(下铺) 즉 침대 제일 아래칸이다. '중(中)푸'와 '샹(上)푸'도 있는데 '시아푸'가 가장 편하니 당연히 비싸다. '콩티아오'(空调)는 에어콘이니 앞에 '씬'(新)이라 쓰인 것은 아마 최신이고 좋다는 뜻.

중국의 기차좌석은 크게 누워서 가는 것과 앉아서 가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가장 좋은 좌석은 '롼워'(软臥)로 누워서 가는 푹신한 침대칸인데 상하로 나뉜다. 비행기 값 수준이니 굳이 이걸 탈 이유가 없다. 다음으로는 조금 딱딱한 '잉워'(硬臥)로 누워 가고 상중하로 나뉜다. 내가 탄 좌석이다.

앉아서 가는 좌석도 '롼줘'(软座)와 '잉줘'(硬座)로 나뉘는데, 편안하게 갈 것인지 불편하게 갈 것인지에 따라 넓고 푹신한 좌석과 딱딱한 수직 좌석을 탈 지 정해야 한다.

명절 등에는 '우줘'(无座)도 있다. 소위 입석인데 죽음이다.

좁은 통로 오른편에 마주 보고 6개의 침대석이 있다. 왼편에 앉는 좌석은 별도 좌석이 아니라 침대에만 누워있으면 곤란하니 준비돼 있는 것이다.

밤 기차의 상중하 침대석이 나란히 비친다. 내 옆자리에 한 아줌마인지 아가씨인지 모를 여자가 누웠는데, 남자친구랑 전화통화로 싸우고 난리라 정신 사나워, 잽싸게 사가지고 간 술을 다 마시고 화장실 갔다가 잤다.

꼬마가 재주를 부리며 떠들썩해 일어났다.

자고난 자리다.

화장실이 생각보다 깨끗하다. 급해서 화장실에 갔더니 문이 잠겨 있었다. 승무원에게 물었더니 컥~ 정차 중에는 문을 잠그니 기다리란다. 5분이나 정차를 하다니, 진짜 큰일 날 뻔 했다. 화장실 옆에는 재떨이가 있고, 담배를 피워도 된다.

정차 중인 이름모를 역이다. 한 농부가 서서히 걸어오고 있다. 용변을 급한데 기차는 갈 생각이 없다.

기차의 공식 시속은 120킬로미터인가 보다. 기차 제일 뒷쪽에 보조차장 쯤인가.

화물차량도 자주 만나게 된다.

달리는 기차길 옆으로 주변 풍경이 낯설다. 아침 6시에 눈이 떠서 4시간 가까이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창밖을 보며 많은 사진을 찍었으나, 별로 인상적인 장면들이 눈에 띠지 않는다. 어서 빨리 도착하기만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중국기차가 연착을 잘 하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 이날따라 1시간 가량 연착도 했다.

드디어, '허페이'에 도착.

나올때도 표검사를 한다. 지하도를 따라 나오면 출구다.

263위엔으로 11시간 밤 기차여행, 잘 했다. 언제 중국에서 이렇게 기차로 여행을 하랴싶어 타고 오긴 했지만 학생도 아니고, 그런 호기를 부릴 나이도 아닌데 싶은 생각이 났다. 더구나, 혼자 기차를 타는 건 지루하기 그지 없다. 따지고 보면 비행기 값은 대략 800위엔 정도 하니 바쁜 일이 아닌 여행이라면 한두번쯤 기차를 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기도 하다. 기차여행을 하면서 만난 중국사람들과 대화도 하면서 그들의 서민적 정서와 만나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