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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유리창이라고 들으면 야릇하다. 베이징에 유리창문을 파는 곳인가. 그런데 관광지라니 이상하다. 지금이야 리여우리창(琉璃厂)이란 말을 들으면 금방 베이징 명물 관광지이면서 골동품을 파는 거리. 이렇게 생각이 들지만 말이다.

그런데, 원래 이곳은 황궁의 기와를 만들던 곳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니, 황성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것이다. 원나라 시대에 처음 만들어졌다고 하나 실제로는 명나라가 베이징으로 천도한 후 영락제 시대부터 활성화된 공장지대였던 셈이다. 그런데, 이곳은 기본적으로 황궁을 위한 곳이었기에 궁이 다 만들어지고 나서는 존재의 이유가 약해진 것이다. 황궁을 다시 짓지 않으면 말이다.

세월이 흘러 청나라 시대에 이르러 유리기와 공장은 거의 생산이 중단된다. 청나라는 강희, 건륭을 거치며 평화로운 시대가 됐다.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취미생활이 생기면서 도자기와 같은 골동품을 소장하거나 즐기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리고, 황궁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인 이곳을 중심으로 서서히 상가가 형성된 것이다.

건륭시대에는 골동품을 소장하는 게 유행이기조차 했다 한다. 왕족 뿐 아니라 일반평민까지 새로운 물건을 찾고 팔고 하는 곳이었다. 관료들 뿐 아니라 내시나 궁인들도 선물로 하사 받은 물건을 팔기도 하고 그랬으니 말이다. 한국의 한 여행사 사이트에는 시골에서 과거를 보러 온 선비가 낙방한 후 붓과 먹을 팔아 노자돈을 했다는 것은 맞긴 하겠지만, 그래서 형성된 거리는 분명 아니다. 과거는 연례행사에 가깝지 일상생활은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세월은 흘러 점차 청나라 역시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국력이 쇠진해지기 시작하고 특히, 아편전쟁이 발발하자 유리창은 완전 상권이 죽어버렸다. 동치중흥시대와 무술변법을 거쳐 외국 열강이 진입하자 다소 활기를 되찾긴 했으나, 다시 민국시대와 일제와의 전쟁을 거치면서 유리창의 부활도 멈추게 됐다. 바로 수많은 문화재들이 외국으로 흘러가 버렸기 때문이다.

1949년 이후 다시 평화가 도래해, 공사 합영으로 골동품 상가의 활기를 되찾으려 했으나 사회주의 건설의 기치 아래 유리창은 다시 무용지물이 돼 버렸다. 그러다가, 개혁개방의 시대가 되니 유리창이 다시 생기를 되찾고 회복된 것이다. 정부는 유리창 재건을 주도했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유리창에 오면 역사를 느낀다. 흥망성쇠를 거듭한 유리창은 중국 역사의 거울이기도 한 것이다. 지금은 비록 골동품도 아닌 것이 그 행세를 할 상황에 이르렀고, 공예품이나 도장, 차, 미술작품 등 잡다한 만물상으로 변해 특색이 예전에 미치지 못해 아쉽긴 하다. 그렇듯 서서히 관광지의 대명사로 전락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과거 역사의 향기를 품었으나 한두번 오고 나면 그만인 관광지로 말이다.

유리창은 좌우로 거리가 나누어진다. 방향으로 정확히 말하면 동서로 나눌 수 있다. 그 중심이 되는 거리가 바로 난씬화지에(南新华街)다. 북으로는 치엔먼씨따지에(前门西大街)와 연결되고 남으로는 쭈스커우씨따지에(珠市口西大街)에 이르는 길. 남북을 가르는 길 한 중심에 횡단보도 하나가 있고 그 오른쪽, 동편과 왼편 서편을 다 대체로 유리창이라 부른다. 그런데, 보다 정확히는 오른편이 본래의 유리창이라고 보면 된다.

오른편으로 들어서면 약간 넓은 광장이 나오고 한그루 나무가 버티고 섰다. 공안(경찰) 차량까지 포함해 대책 없이 마구 주차해 있고 차도 달리니 가끔 주의해야 한다. 저 골목을 따라 계속 끝까지 가다가 오른쪽으로 다시 돌아서 5분 정도 더 가면 바로 따자란 거리와 연결된다.

광장을 지나 길을 따라 들어가면 좁은 골목 길이 나오고 좌우가 다 가게들이다. 별의별 것을 다 파니 중국적 물건들에 관심이 많다면 아주 흥미진진하다. 9월 초가을, 아직 햇살이 따사롭고 화창해 푸른하늘과 더불어 산뜻한 느낌을 풍기는 유리창 거리를 만들어준다. 거리는 늘 깨끗하다. 쉴 새 없이 청소를 하니 그렇기도 하고, 그래도 외국인들이 왕래하는 곳은 알아서 깨끗한 중국사람들이 오곤 한다. 이제부터 유리창에는 요즘 무엇이 있는 지 들어가보자.

가게 안에 들어갔더니 좀 큰 모형 귀뚜라미를 마치 새우리처럼 생긴 통에 가두고 세 개를 연결했다. 이걸 누가 살까. 어디에 쓰지. 영 걱정이 앞선다. 까페나 식당 같은 곳에서 사서 걸어두면 손님들에게 좋든 나쁘든 인상을 주기 하겠다. 뭐 다해서 100위엔이면 살 수 있을 거 같긴 하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밝혀둘 것은 중국여행하면서 꼭 살 물건이 아니면 가격을 잘 안물어보는 습성이라는 점이다. 일단 물어보면 살 의사가 있는 것으로 보고 징그럽게 잡고 늘어지는 걸 많이 당해서이기도 하다. 몇년 전에는 아들과 함께 빠다링 만리장성에 갔다가 혼 난 적이 있다. 러시안 방한모자 하나를 집어 아들에게 쓰여주고 가격 물어보고 사진 찍고 했다가 사지 않는다고 무지하게 욕 먹었다. 10위엔짜리 모자 때문에 큰 곤혹을 치렀는데, 그래도 죽어도 안샀다. 웬만하면 살까도 했는데 '주인이 왕' 심리는 아무리 해도 용서가 안된다. 그래서 물건 값을 잘 안물어보는데 별로 좋은 습관은 아니다.

가끔 한국사람이 오면 같이 가이드 겸해서 가게에 갈 때도 반드시 물건을 살 생각이 있는지 먼저 물어보고 가격을 묻는다. 요즘은 가격을 알고 싶으면 말도 안되는 가격이면 사겠다고 하고 손을 뗀다. 좀 치사하긴 하지만 ...

꽤 정돈된 골동품 상점이다. 골동품의 범위가 어디까지 인지는 모르나, 가짜일지 진짜일지 몰라도 그렇게 부르면 그게 골동품일 터이고, 전문가가 아닌 다음에야 집에 장식 겸해서 놓고 감상하고 즐거우면 그게 그게 아닐까 싶다.

'TV 진품 명품'의 작가랑 친한데 요즘 한달에 한번 꼴로 중국에 들어온다고 한다. 잘 아는 사람과 골동품 여행 삼아 말이다. 그런데, 베이징에는 절대 오지 않는단다. 그야 진열대 앞으로 나올 만한 게 있지 않을테니 당연하다. 중국의 모 방송국에서도 한국 흉내를 내고 비슷한 방송포맷으로 중국식 '진품 명품'을 하긴 한다. 그러고 보면 중국도 경제생활 수준이 우리보다 훨씬 높은 사람들만 즐기는 것이 아닌 대중적인 가치를 지닌 아이템으로 서서히 변하고 있는 듯 싶다.

정말 특이한 점은 관광지마다 저 병마용 모형이 없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세계적 유산이기도 하고,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아이템인 것을 증명한다. 묻은 흙 먼지까지 얼핏 보면 놀라겠지만 전혀 그럴 필요없다. 뭐 그리 대단한 기술은 아니다. 온동네 방금 땅에서 파온 듯한 느낌을 주는 기술은 중국이 세계 최고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문 색깔이 밋밋하고 낡은 티가 나서일까. 가게 안 입구부터 아주 화려하다. 들어서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다. 저렇게 꾸며 놓은 것은 아마도 일종의 코디네이션일 게다. 식당이나 찻집 입구를 이렇게 꾸며보라는 뜻이니 ...

이렇게 유리 안에 그림이나 도자기, 접시 등을 진열해 놓으니 멋지지 않은가. 최근 베이징통계국 조사자료에 의하면 베이징에서 이사 가구 열집 중 한집 꼴로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대부분 새집을 장만해 옮긴 것일 터이니 인테리어 사업이 활황이다. 게다가 고풍스런 분위기를 살리려면 이런 진열도 멋질 듯 싶다. 그래서, 골동품으로 유명했던 거리 유리창에도 이런 조그만 변화가 온 것인 듯하다.

다양한 전통 악기를 파는 가게 앞이다. 손가락은 우리 일행 중 한명인데 아마 차이나TV 중국대표의 그것인 듯 싶다. 중국전통 악기도 참 그 수가 많을 듯 싶다.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니 문외한이다. 그런데, 나는 대학시절에 같이 자취하던 친구 어깨 너머로 기타를 배웠고, 혼자 시간 날때마다 연습해 기본기는 갖췄는데, 그때도 호기심의 발동이었다.

중국에 온 후 아주 작고 투박한 음색의 보잘 것 없는 현악기 얼후(二胡)를 알게 됐는데, 언젠가는 꼭 한번 배워봐야지 하는 속셈이 있다. 베이징에는 무료 또는 유료로 얼후를 가르쳐 주는 곳이 꽤 있다. 문제는 시간.  

골목의 골목 안에도 공간만 있으면 뭔가를 판다. 붓도 팔고 포스터(海报)도 판다. 저 구석에는 쯔인(治印)이라고 쓴 가게가 있는데, '治'라는 말은 '다스리다' '처리하다'란 의미이니 인장을 처리해주는 곳, 도장 파는 곳이다.

도장 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 위에 있다. 바로 이곳은 후통 입구이다. 그런데 후통 이름이 요강(姚江)이다. 야오쟝후통인데 야오(姚)는 '예쁘다'라는 의미인데 누가 덧칠을 하다가 말았는지 고의로 그랬는지 두 획만 그었다. 사다리까지 놓고 올라가야 했을텐데, 왜 그랬을까. 두 획이 선명하지 않아서 그랬을 지도 모른다. 보통 후통 입구마다 현대식 팻말을 다 붙여놓곤 해서 집 찾는 데는 편하고 선명하기는 해도 지루했는데, 이 후통 입구 표시는 참 이쁠 뻔 하다가 말았으니 안타깝다. 다른 세 글자는 간명하면서도 부드러웁기도 하고 드러나지 않은 듯 은은한 멋을 부리고 있었는데 말이다.  

차쥐(茶具)를 파는 가게다. 나름대로 아이디어 만점이다. 옹기종기 들어앉은 모양이 산뜻해보인다. 이곳에서 차 도구를 사려면 부르는 게 값이다. 외국인이라면 바가지 쓰기 딱 좋다.

베이징 씨얼환(西二环) 부근 마리엔다오(马莲道) 차예(茶叶) 시장에 가면 도매값으로 살 수 있다. 왠만한 도자기 차관(茶罐)도 5~60위엔이면 살 수 있다. 아주 잘 만든 제품이라도 말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아마 100위엔 이하로는 잘 팔지 않을 듯 싶다. 어쩌면 500위엔 이상이라고, 아주 좋은 제품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차관이야 개인적으로 여가나 휴식 문화의 도구이니 보통의 제품을 사서 오래 닳도록 쓰다보면 그게 정 들고 차 맛도 더 좋고 그런 거 아닐까.

유리창 거리의 가게를 들락날락 해도 안쪽보다는 바깥쪽이 더 시원하기도 하고 볼 것도 많다. 노인이 자전거를 끌고 지나고 있다.

언젠가 신문을 보니 최근 베이징에 빠오주꽁(包租公)이 많다고 한다. 그들은 번화가나 주택가에 집을 사서 외국인이나 유학생들에게 세를 놓고 자신은 가족과 함께 유리창과 같은 사합원 전통 가옥에서 좁게 산다고 한다. 평균 월세 3천~5천위엔 정도를 받으면 세 식구가 생활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빠오주꽁은 유리창 부근에 거처하면서, 직업도 없이 매일 낮에는 친구들이랑 따파이(打牌) 장소에서 마작이나 하면서 지낸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유리창 골목마다 한가한 노인들이 많다.

유리창에 깔끔한 자전거를 끌고 나와서 5위엔짜리 장난감을 파는 사람들도 대체로 생계수단이 아닌 듯 보인다. 넘겨집는 게 아닌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치열한 돈벌이를 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좋고 안사도 좋고. 그저 소일하는데 치중하는 듯 보인다.

삥구짜이(屏古斋)라 하는 가게다. '과거를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인가 보다. 좁은 문이지만 안으로 길게 모두 골동품이나 공예품을 판다. 마네킹 위에 온갖 옛 물건들을 덮어놓고 치장을 했는데, 독특한 멋도 풍긴다.

인형을 줄로 연결해 표현하는 인형극. 표정들이 다 민간에서 유행하던 것 같다. 탈 쓴 모습이 인상적이다.

지극히 해학적인 조각상이다.  

사실 유리창 동편은 좀 세련된 가게들이 많다. 그래서 좀 지루한 면이 있다. 서편은 좀더 저렴하면서도 흥미를 끄는 물건들이 많은 편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다가 루쉰의 얼굴과 만났다. 존경하는 은사인 리영희 선생님이 영향을 많이 받았고 존경한다는 중국 20세기의 뛰어난 사상가이며 정치가, 그리고 문학가이면서 민족주의자인 루쉰(鲁迅). '영업중'이라는 팻말 아래 있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황색 바탕의 목관악기 부는 여자와 어울려 있으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1921년 루쉰의 중편 아큐쩡촨(阿Q正传)은 그가 '중국인들의 가장 약하디 약한 속성을 끄집어 뒤집고 중국인의 영혼을 되살리려는' 역작이다. 비록 중국을 배경으로 쓴 중국인의 '역설'이며 치열한 '계몽'이지만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섬뜩한 반성을 체험해본 사람은 이해가 되리라 믿는다. 아 그러고 보니 또 하나 욕심이 있다. 기회가 되면 중국어 원작으로 읽어볼 생각이다. 헉~ 욕심이 뭐 그리 많냐고 욕하지 마시라.

관복 그림과 조각상, 거울과 꽃 그리고 전화기와 카드기. 이제 중국도 어디를 가나 카드로 물건을 살 수 있다. 특히, 대도시 유명 관광지에는 틀림 없이 있다. 금융POS 시스템이 정착해 이런 단말( 终端) 장치가 더 대중화되려면 중국은 얼마나 더 시간이 걸릴까. 과연 신용사회가 제대로 정착할까.

4년전 처음 베이징에 왔을 때 그 답답하기조차 했던 호텔, 대형식당들이 이제는 너무도 자연스레 카드단말기를 사용하고 있다. 더 놀라운 건 체크아웃 시간이 30분에서 거의 3~5분 사이로 팍 줄었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느려'라고 불평하면 '그래도 이건 빠른거야' 또는 '중국이 이렇게 느릴 때 우리가 빨리 앞서가야 해' 그러던 이야기들이 생각난다. 불과 몇년전에 비해 놀라운 변화가 느껴지는 중국. 기술과 시스템보다 마인드의 변화가 더 무서운 중국이다.

낯익은 공예품들이다. 바닥에 흰바탕에 빨간 그림이 그려진 건 지엔즈(剪纸)이고 주인이 들고 있는 하얀 공예품은 피잉(皮影) 무오우(木偶,인형)이다. 소가죽으로 만들어진 그림자 인형극이라는 뜻의 피잉. 피잉은 짱이모 감독의 영화 '인생'(원제목 活着)을 이끌어 가는 핵심 소재이며 주제 그 자체이다.

거여우(葛优)는 도박으로 모든 걸 잃고 오로지 피잉으로 연명하고, 장제스와 마오쩌똥의 전쟁 속에서 피잉으로 살아남는다. 그리고, 중국 사회주의 건설의 와중에서도 피잉으로 살아가지만, 문혁을 거치며 피잉은 사라진다. 그리고, 피잉을 통해 부인 꽁리(巩俐)와 아들과 딸과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의 인생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는 영화였던 것이다. 1994년도 제작된 이 영화는 영화적 완성도가 높다고 국제적으로 인정되고 있는데, 현재 중국에서 상영금지 영화에 여전히 묶여있기도 하다.

 

손으로 목을 잡고 있는 형상의 조각상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바로 췐삐(拳笔)의 대가로 알려진 천시앙(陈翔)의 작품이 있는 곳이다. 맨손으로 그리는 슈화(书画)이다. 손으로 서예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신기하다. 주먹으로 서예를 멋드러지게 쓴다. 그리고 양 주먹으로 동시에 서로 다른 글씨를 쓰기도 한다. 게다가 화선지에 손바닥을 누른 후 그 위에 소 다섯마리를 그린 것으로 유명해져 그를 일명 우쯔녀우(五指牛)라 한다.

그는 1973년 생이니 아주 젊은 편인데 그렇다고 체계가 없이 그리는 게 아니라 손을 붓 대신으로 한 쓰리파(四力法)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최근 건국 55주년을 맞아 인민대회당에서 직접 <为祖国干杯>를 손으로 쓰는 모습을 선보여 갈채를 받은 사람이다.

오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보니 유리창인지 모르겠다. 그저 평범한 베이징 작은 거리와 비슷하다. 외국인 한쌍이 거리에 앉아서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저들도 좀 피곤했나 보다. 햇살의 그림자가 건물을 그려내고 있고 한가하게 거니는 사람들도 관광지답지 않다. 그만큼 유리창은 왠지 갈수록 시들해지는 분위기이다.

유리창 동편 거리를 거의 다 왔다. 사진 한장을 찍고 다시 되돌아 가서 서편도 마저 구경할 예정이다.

뿌연 유리창에 비친 유리창 모습과 하늘.

삐(笔,붓), 모(墨,먹), 쯔(纸,종이), 옌(砚,벼루)는 문방사우. 원팡쓰빠오(文房四宝)라며 파는 가게다. 밖이라 주로 붓이 걸려 있다. 안에 들어가면 여러 가지 문우들이 기다리고 있다.  

삐는 기원전 진나라 때 멍티엔(蒙恬)이 처음 사용했다고 전해지는데, 최근 출토된 갑골문자에 먹의 흔적이 있는 것으로 봐서 은나라, 상나라 때부터 사용하지 않았나 추측한다고 한다. 다만 멍티엔은 붓을 개량하고 대중화한 것으로 추정한다. 삐는 수많은 동물들의 털로 만든다. 그래서, 마오삐(毛笔)라 한다.

모는 삐보다 다소 나중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갑골문이나 죽간, 견직 등에서 그 원시적 형태가 보이고 있지만 문헌 상으로는 직접 인공적으로 만든 먹의 형태는 소나무를 재료로 한나라 때부터 나타난다 한다.

쯔는 나침판, 화약, 인쇄술과 함께 중국 고대의 4대 발명품 중 하나. 보통 종이는 후한(동한) 시대에 차이룬(蔡伦)이 발명한 것으로 돼 있으나 전한(서한) 시대의 유적지에서도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먹과 함께 종이를 사용한 흔적들이라 한다.

옌의 형태는 은나라 상나라 시대부터 사용된 것이나 초기에는 돌을 사용했으나 불편해 점차 동이나 철, 옥, 도자기, 벽돌 등으로 만들었다 한다.

문방사우 외에도 옛 선비들은 무려 40여종의 문방용품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삐통(笔筒), 옌띠(砚滴), 인짱(印章), 삐티엔(笔掭), 쩐쯔(镇纸) 등 옛부터 내려오던 것이 현대에서도 다양한 이름의 문구로 변했을 뿐이다.

동편을 다 구경하고 서편으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넜다. 자전거가 지나는 길이 난씬화지에(南新华街)다. 음료수와 신문 잡지를 파는 노점상.

이제 서편의 구경거리를 무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