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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26] 창리 갈석산과 친황다오 해변

새벽녘 탕산역 호텔에서 바라본 광장은 한산하다. 5월 20일 아침 8시 55분 친황다오[秦皇岛] 부근 창리[昌黎] 행 기차를 탔다. 아주 가까운 거리라 타자마자 내린 기분이다. 1시간 거리.

▲ 당산 역 새벽 모습
ⓒ 최종명

창리에는 갈석산(碣石山)이 있다. 한국에서 자료조사를 할 때부터 염두에 뒀던 곳이었다. 지난 4월 22일에는 산둥[山东] 룽청[荣成] 장보고기념관 공식개관식에서 만난 교수님 한 분이 갈석산에 가면 '조선(朝鮮)'이 있으니 찾아보라는 약간 애매모호한 주문을 했다.

창리역에서 삼륜 오토바이를 탔다. '지에스산 가자(去碣石山)'고 하니 3위엔이라고 한다. 생각보다 가깝다고 느꼈다. 5분이면 간다고 하니.

금방 도착한 곳은 산이 아니라 '지에스산 스창(市场)'이었다. 참 웃기는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지에스산' 가자고 하면 이 시장에 내려준다. 기차까지 타고 배낭 메고 온 여행객이 길거리 시장에 갈 일이 있을까. 당연히 '지에스산'에 가자는 것이겠구나, 라고 되묻거나 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약간 화가 났다. 배낭 메고 시장 오는 사람 봤나.

'지에스산 가려면 10위엔을 더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곳은 멀다는 것이다. 더 머니 더 비쌀 테니 수입이 많은데 시장에 데려다 준 걸 보면 순진한 사람이다. 그래 가자. 15분 정도를 비포장도로를 달리더니 더 못 들어간다며 내려준다. 도로가 뚫려 있고 택시도 들어가는데 삼륜차는 못 들어간다니 이상하다. 원래 기차 역에서 출발하면 10위엔이었다고 하니 아무 말 없이 받고는 휭 되돌아간다. 정말 시골 도시에서 아침부터 유쾌하지 못한 출발이다.

10분 정도 더 걸어 오르니 지에스산 입구가 나온다. 그런데 입구 주변에 삼륜차 몇 대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일부러 그 밑에 내려줬을 리는 없으니 아마도 입구까지 들어오는 차와 그렇지 못하는 차가 좀 차별이 있는 듯하다.

▲ 갈석산 입구
ⓒ 최종명

산 아래 사원인 수암사(水岩寺)는 완전 공사 중이다. 사원 건물도 새로 단장된 듯 깔끔해 보인다. 그래서 사원 뒤로 보이는 갈석산과 썩 잘 어울리지 않는 세련된 모습이 어색해 보인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니 등산지도를 하나 준다. A4 용지에 복사된 흐릿한 지도. 이제 이 지도를 따라 산을 올라보자. 그리고 '조선'을 찾아보자.

날씨는 매우 덥다. 매표소 아가씨가 2시간 걸린다 했으니 아마 생각보다 힘든 등산이 될 듯하다. 바로 코앞에 보이는 산 정상이건만 경사가 가파르니 말이다. 역시 중국 역사에서 명산으로 알려진 것처럼 산 초입부터 바위마다 서예 솜씨가 난무하다.

▲ 갈석산 암석에 그린 서예들
ⓒ 최종명

중국 역사학자들도 갈석산이 어디인지를 놓고 허베이[河北] 창리와 랴오닝[辽宁] 씽청[兴城]으로 의견이 갈리다가 1980년대 중반에 발견된 멍쟝먀오[孟姜苗]에서 나온 기록에 근거해 창리가 진정한 갈석산이라 결론이 났다고 한다.

멍쟝먀오에서 발견된 돌 비석 기록에 의하면 진시황이 전국을 순행하는 도중 다녀갔다 하고 한 무제 역시 기원전 110년에 '태산부터 바다를 따라 동진하다가 갈석에 이르렀다(行自泰山, 复东巡海上, 至碣石)'고 한다. 서기 207년 위 무제인 조조(曹操)가 지금의 차오양[朝阳] 지방을 정벌하고 돌아가는 길에 갈석산에 머물렀다는 기록도 있다. 당 태종 이세민(李世民) 또한 여러 번 갈석산 관창하이[观沧海]에 올랐다고 전해진다.

▲ 갈석
ⓒ 최종명

갈석산은 중원 땅을 중심으로 형성된 중국 역사에서 동북쪽 끝이고 경계를 상징하는 산이라 볼 수 있다. 많은 중국의 황제들이 갈석산에 올라 자신의 영토를 만끽하는 기분을 느끼던 그런 곳이라 보면 될 듯하다.
산 정말 가파르다. 막상 산을 오르니 생각보다 힘도 든다. 바위에 새겨진 글씨들을 유심히 보지 않지만 이번에는 '조선'을 찾아야 하니 좀 신경 써서 보고 또 보며 산을 오르다 보니 시간도 많이 걸린다. 산을 오를수록 전망은 점점 멋지게 변한다. 산 중턱에서 물을 판다. 물 2병에 5위엔. 목을 축이고 다시 산을 오르는데 점점 글씨들이 명산다운 메시지를 담고 있다.

▲ 갈석산 해탈령, 천문제일, 입승
ⓒ 최종명

거대한 바위를 계단으로 오르는 길에 해탈령(解脫嶺). 천문제일(天門第一), 입승(入勝)이 차례로 나타난다. 정말 신선이 되어 하늘을 오르는 듯하다. 고개 하나를 오를 때마다 새롭게 펼쳐지는 광경이 신비롭다. 물론 가파른 계단길이 나타나긴 하지만 산 오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 갈석산의 가파른 팔선대 바위
ⓒ 최종명

험준한 고갯길을 오르니, 산 중턱에 조그만 정자가 있고 그 약간 아래 황제들이 바다를 응시했다는 관창하이가 보인다. 황제가 다녀갔다고 보기에는 지극히 왜소하고 지저분하다. 관리도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게 이상하다. 이곳이 그 유명하다는 관창하이가 아니란 말인가. 하여간, 이곳 외에는 없으니 맞긴 한데, 바다는 보이지 않고 멀리 호수가 보이긴 한다.

대학생들 10여명이 떼지어 정자에서 모여있다. 그 중 몇 명이 산 정상까지 갔다가 내려오고 있다. 정상에서는 바다가 보이냐고 물었더니, 당연하다는 듯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만큼 올라온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관창하이를 봤으니 그만 내려갈까 하다가 아직 '조선'을 못 봤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 가보는 거야. 다시 산을 오르니 엄청나게 큰 암석이 나온다. 빠션타이[八台]. 사진을 찍으려고 글자 가까이에 가니 부는 바람에 휘청거리며 날아갈 듯하다. 잘못 하다가는 갈석산에서 비명횡사할지도 모르겠다. 황급히 벗어나면서, 역시 선녀가 여덟 명이나 내려왔다면 금남의 장소가 아닐는지도.

산 정상까지는 고역에 다름이 아니었다. 산불이 났었는지 온통 까맣고 전기 탑이 산의 분위기를 완전히 망쳐놓았을 뿐 아니라 온통 바위마다 '팡훠[防火]', 불조심이다. 쓰레기도 많고 화장실도 곳곳이고 길도 제대로 없으니 정말 이 길이 정상에 이르는 길인지 의심스럽다.

▲ 갈석산 정상
ⓒ 최종명

정상 고지를 정복하려면 경사 60도가 넘는 가파른 길을 올라야 한다. 그리고 두 평 남짓한 정상에서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한다. 세찬 바람 때문에 멀리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

▲ 갈석산 정상에서 바라본 전망
ⓒ 최종명

10분쯤 앉았다가 바로 내려왔다. 그 잠시 동안 동서남북 방향을 찾아 아 저쪽이 동북이고 이쪽이 서남이겠구나 살펴봤다. 아마 그 옛날 중원 땅과 북방 땅을 경계로 치열한 영토전쟁을 영상으로 떠올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갈석산 부근이 옛 고조선의 영토 경계일 지도 모른다는 책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사뭇 진지하게 정상에서 생각에 잠겼는데, 더 깊은 감성을 느끼지 못하고 내려와야 했다. 사실 혼자 있기에는 조금 무서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가파른 길을 따라 조심조심 내려왔다. 산 정상에도 없는 '조선'은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다시 관창하이에 이르러 볼펜으로 '朝鮮'이라 썼다. 서운해서 말이다.

그런데, 거의 산 아래 다 내려와서 길 옆에 조그만 바위 하나가 이상하게 기를 품고 시선을 끌어당겼다. 자세히 보니 낯이 익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지만 분명 두 글자의 모양이 어쩌면 '조선'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왔다. 아마 교수님이 이야기한 것이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려니 생각하니 마음이 다소 편해졌다. 종일 '조선'을 찾았으나 눈에 보이지 않아 허탈했기에 말이다. 아직 중국취재 중이라 전문가에게 물어보지 못했지만 '조선' 두 글자라 아직 믿고 있다. 그러니, '조선'을 찾긴 찾은 셈이다.

그래서 기분이 산뜻해졌다. 산 아래에서 삼륜차를 7위엔에 타고 기차 역으로 왔다. 역시 3위엔이 더 싸다. 아침나절의 일도 옛날 일인 양 잊었다. 역 부근 식당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맡겨둔 짐을 찾고 친황다오[秦皇岛] 행 버스를 탔다. 그리고 잠시 잠을 자고 일어나니 금방 도착이다.

▲ 진황도 남대하 해변
ⓒ 최종명

친황다오는 해변도시이며 베이다이허[北戴河]와 난다이허[南戴河]를 비롯해 길게 여름별장촌도 형성된 관광지이다. 이왕 바닷가에 왔으니 시내에서 숙소를 잡는 것보다는 해변이 낫겠다 싶었다. 그런데 교통편이 영 불편하다.

갈석산을 올랐더니 피곤이 엄습한다. 약간 지출이 심하긴 해도 택시를 타고 난다이허에 바다가 보이는 호텔을 잡았다. 간단히 씻고 저녁노을 지는 바다를 1시간 정도 바라보노라니 배가 고파진다.

신선한 해산물 천국이다. 이것저것 시켜서 삶거나 볶아달라고 했다. 맥주 한잔을 먹고 있는데 광어가 눈에 자꾸 밟힌다. 1㎏에 65위엔. 한 마리를 무게 재니 1.8㎏이다. 100위엔에 먹으라고 성화인데 고민이다. 일단 씻고 다시 나와서 먹어야지 했다.

막상 호텔에 들어가서 샤워하고 나니 졸음이 별처럼 마구 쏟아진다. 오늘 하루 만에 산과 바다를 다 봤으니 조용하면서도 진한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