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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27] 선라도와 장성 동쪽 끝 산하이관

▲ 남대하 해변의 모래사장
ⓒ 최종명

눈을 뜨자마자 커튼을 열어젖혔다. 하늘이 새파랗다. 5월21일 하루를 아주 기분 좋게 시작할 듯하다.

파란 하늘과 어울리는 아침 바다는 정말 얼마만인가. 햇살이 다소 강하긴 해도 바닷바람, 파도소리는 마음을 들뜨게 할만하다. 1시간 가량 모래 위를 걸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주변환경과 익숙해지니 떠나고 싶지 않은 고향 같다.

선라도로 넘어가는 케이블카, 쑤어다오(索道)가 움직인다. 오후 늦게 섬으로 갔다가 노을이 지는 바다 위를 날아오는 것도 좋겠지만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바다를 날아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8시부터 운행을 시작한다. 왕복 35위안. 표를 끊고 잠시 기다리니 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먼저 타고 날아간다. 두세 명씩 줄을 섰다가 사뿐히 앉으면 잠시 멈추는 듯하다가 곧 쑥 빠져나간다. 아니 하늘로 솟구치는 듯하다.

▲ 선라도 케이블카
ⓒ 최종명

혼자 탔다. 일부러 눈치를 좀 보다가 혼자 타야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을 만끽할 듯했기에 말이다. 바쁜 시간이었다면 중국사람이랑 동행했을 것이다. 분명 '어디서 왔냐? 너 중국말 잘 하네. 여행 왔지? 혼자 왔어?' 질문에 답하다 보면 바다를 날아가는 감미로운 비행을 방해 받았을 것이다.

선라도는 인공섬이라고 한다. 신선과 조개가 있는 섬이라고 이름하니 멋지기도 하다. 정말 선라도를 향해가는 비행은 충분히 멋지다. 섬으로 다가갈수록 섬은 점점 돋보이게 드러나면서 번지점프, 유람선, 식당, 공사중인 노동자들이 서서히 페이드인 하듯 나타난다.

약 10분의 창공을 가르는 비행! 섬 곳곳은 그저 평범하다. 선녀 같은 몸매로 물을 뿜는 분수 속에서 달콤한 유혹을 선보이는 동상을 빼고 나면 특별히 볼만한 것이 없다. 160위안이나 하는 번지점프를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목숨을 걸면 모를까. 원래 선라도에서 아침부터 우아하게 밥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식사준비가 안됐다니 아쉽다.

되돌아가는 비행은 또 다른 맛이 있다. 멀리 떠났던 새가 육지로 되돌아오는 기분일지 모른다. 스스로 착각을 하면서 말이다. 적당히 불어오는 바람이 친황다오(秦皇岛) 난다이허(南戴河)의 아침나절을 오랫동안 기억에 남길 듯하다.

▲ 케이블카에서 본 선라도 전경
ⓒ 최종명

친황다오는 해변도 좋지만 유명한 관광지가 많다. 그 중에서도 단연 산하이관(山海关)이 으뜸이다. 기차역에 가면 아마 바로 가는 버스가 있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없다. 가깝지만 기차를 타자. 우줘(无座) 표로 채 1시간 안되니 산하이관 역 도착이다.

오후에 다음 행선지인 진저우(锦州)로 이동할 기차표를 미리 확보해두자. 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다. 20여분 기다리는데, 이제 두 명만 남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불쑥 창구 앞에 끼어든다. 틈만 나면 새치기를 하는 중국사람들을 많이 보는데 평소에는 그냥 상관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간혹 나도 모르게 화가 나는 경우가 있다. 아주 당당하게 떳떳하게 새치기를 하는 사람일수록 더 승부욕이 생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너 뭐 하는 거냐?(你干吗?)' 대뜸 말하며 어깨를 살짝 건드렸다. 그랬더니 빨간 수첩을 들더니 당당하게 내민다. '이건 뭔데?(这是什么?)' 공무 중이라며 보여준 수첩은 자세히 보니 공산당 당원증이다. 권위주의에 반대해 목숨도 걸었던 대한민국의 80년대 학번에게는 미국대통령도 껌 값인데 어디서 수첩이라고 내밀어?

그런데, 알고 보니 표 판매소 유리창에 노약자, 어린이, 군인과 경찰 등과 함께 공산당원은 신분증이 있으면 우선 판매한다고 써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정서에 안 맞는 일이 다 있나. 주의 깊게 보지 못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다른 지방에서는 본 기억이 없다. 그래서 약간 오기를 부리며 '난 그런 거 관심 없어, 몰라' 했더니 뒤에 있던 사람이 '원래 규정이야' 그런다. '그럼 그 규정 어디 있어?' 후후 여기까지만 해야 한다.

당당하게 표를 사더니 재빨리 사라진다. 무척 바쁜 모양이다. 세상에 공산당만 바쁜가. 나도 더워 죽겠다. 죽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하여간, 중국에서 중국사람들과 말다툼 할 필요는 없다. 나도 모르게 우리나라 공중도덕과 민주시민의식이 발동한 것 뿐이니 이 정도 하면 충분하다. 간혹 혈기를 부려 끝까지 가려는 사람들을 보는데 절대 그러지 마시길.

썩 기분이 좋지 않다. 게다가 자리도 없다. 버스터미널에 가서 표를 구하자. 터미널에 갔더니 오후에는 진저우 가는 버스가 없다고 한다. 맥이 빠진다. 다시 20kg의 배낭을 메고 걸어서 역으로 가자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일단, 천하제일관 앞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차량을 수배했다. 식당에 짐을 맡기고 택시를 하나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라오롱터우(老龙头)와 멍장먀오(孟姜苗) 두 군데를 가기로 하고 택시를 탔다. 그런데, 이 택시운전사에게 좀 당했다.

라오롱터우가 더 머니 멍장먀오에 먼저 내려서 보라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멍장먀오라고 내려준 곳은 라오롱터우 바로 옆에 붙은 전시관이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두 군데 가는 대신에 한 군데만 데려다 준 것이다. 당연히 속은 사람이 바보다.

창청치관위안(长城奇观园)도 그런대로 볼만하다. 창청에 동원된 사람들의 고단한 노역 장면이 인상적이다. 가는 곳마다 어두웠는데, 가는 곳마다 푸우위안(服务员)이 불을 켜주곤 한다.

▲ 후문에서 본 라오롱터우 장성
ⓒ 최종명

게다가, 라오롱터우도 후문 쪽에 내려주면서, 자기가 나서서 티켓팅까지 도와준다. 나중에 알았지만, 입장료에 배 타는 비용이 포함됐다. 그러니까 이것도 당한 것이다. 아무리 관광지라고 하지만 이렇게 완전히 두 번이나 속은 것은 산하이관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듯하다.

▲ 라오롱터우
ⓒ 최종명

라오롱터우는 만리장성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바다에서부터 쌓기 시작한 장성이 산하이관을 형성하고 길게 이어져 중국 서북쪽 쟈위관(嘉峪关)까지 연결되는 것이다.

▲ 중점문물보호대상인 산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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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롱터우는 푸른 하늘과 파란 바다 그 자체였다. 깃발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으며 장성의 시작답게 멋진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라오롱터우는 명나라 시대 건설됐다가 청나라 강희제와 건륭제 때 수건됐다. 그리고 가장 끝단에는 징루타이(靖卤台)가 있다. 만리장성의 시작 중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 라오롱터우의 정로대
ⓒ 최종명

▲ 산해관 라오롱터우의 휘날리는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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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리장성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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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이관은 요새처럼 꾸며진 관청답게 웅장했다. 이곳저곳 살펴보는데 무슨 행사가 있는 지 마이크 테스트를 하느라 주변이 아주 시끄러워졌다.

산하이관 라오롱터우에는 역대 산하이관을 지키던 장수들을 모신 사당인 빠종슈(把总署)가 있다. 산하이관 관청을 지키며 자기 임무를 다 하던 장수들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다.

중국 역사에서 산하이관이 차지하는 위치가 남달랐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관청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당시 관청의 훈련 장면부터 작전 회의, 선박도 있다.

마침 행사에 동원된 아이들이 즐겁게 재잘거리고 있다. 눈빛이 맑은 꼬마 하나가 눈에 들어와서 말을 붙였다. 수줍어하는 모습이 더 예쁘다. 가져간 선물을 주니 고맙다고 받는데 옆에 있던 한 개구쟁이 남자아이가 보자고 빼앗으려고 한다.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을 보니 즐거워졌다.

▲ 멋진 나무에 비친 산해관
ⓒ 최종명

아이들과 헤어져 라오롱터우를 나와서 다시 천하제일관으로 가서 짐을 찾았다. 그냥 조용히 나오려는데 왕지아따위안 보고 가라고 성화다. 소개한 택시운전사에게 당한 게 기분이 좋지 않은데 자꾸 성화니 짜증이 난다. 다른 어떤 관광지보다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곳이다.

친황다오(秦皇岛) 역으로 가서 진저우 행 기차를 탔다. 오후 5시 14분 출발, 우줘(无座). 자리가 넉넉하다. 저녁 7시 55분 정시에 도착이다. 드넓은 중국에서 기차나 버스 시간이 의외로 정확한 것에 가끔 놀란다.

내리자마자 갑자기 ATM을 찾았다. 지갑에 겨우 100위안 정도 있으니 호텔을 잡으려면 모자란다. 방 값이 100위안이라도 야진(押金)으로 300위안까지는 늘 현금을 가지고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기차 역 바로 건너편 공상은행 24시간 ATM이 보인다. 그런데, 중국사람 2명이 투덜거리며 어딘가 전화를 하고 있다. 500위안을 뽑았는데 돈이 안 나왔다고 한다. 에구, 큰일 날 뻔 했네. 내가 당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예전에 베이징에서 같이 공부하던 학생이 현금을 뽑았는데 나오지 않아 연락하고 난리를 하니 확인 절차 거쳐서 1~2주일 만에 돈을 찾은 경우가 있었다. 그 생각이 문득 났다.

다시 시내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은행 간판만 유심히 찾았다. 그런데 진짜 안 보인다. 30분 정도 걸어가니 다시 공상은행이 보인다. ATM도 있다. 그런데 작동 불능이다. 오늘 정말 운이 별로인가 보다. 청소하는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다시 조금 더 가란다.

진저우 쭝양따지에(中央大街)를 다 걸으니 드디어 몇 군데 ATM이 나타난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모기가 엄청 많다. 모기 소굴에 들어온 느낌이다. 참자. 빨리 돈 찾아 편하게 샤워하고 잠을 자자.

현금을 찾자마자 가장 가까운 호텔로 무조건 찾아 들어갔다. 그런데, 너무도 좋은 호텔을 찾았다. 가격도 싸고 인터넷도 되고 무엇보다도 침대가 너무 푹신하고 편하다. 호텔에 있는 훠궈(火锅) 식당에서 오랜만에 푸짐한 저녁도 먹었다.

아침부터 난다이허(南戴河)에서 선라도를 보고 베이다허(北戴河) 역에서 산하이관(山海关)으로 이동해, 라오롱터우를 둘러보고 다시 진저우(锦州)까지 바쁘게 움직인 날이다. 마음에 쏙 드는 침대에서 온갖 시름 다 잊고 푹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