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9일 찾아간 웨이만정권 만주국 '황궁'은 이제 건물마다 전시관으로 변했습니다. 그중에도 '마지막황제' 부의의 일생을 그린 '황제에서 서민으로(从皇帝到公民)'이 흥미롭습니다. 3세에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황제로 등극한 그는 황궁을 쫓겨나는 청나라 '마지막 황제'가 됐으며, 일본 제국주의의 앞잡이 만주국 '황제'로 변모했습니다. 종전 후 러시아 전범재판에 회부됐고 유죄가 인정돼 수감됐으며 이후 모택동 정부의 '신중국 옹호' 구호를 거쳐 특별사면돼 베이징에서 여생을 마쳤습니다. 이 전시관의 메시지 중 '공민'이 된 부의의 신중국에서의 삶과 여생이 가장 강렬해 보이는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평생 자신의 정치적 자유를 한번도 보장 받지 못했던 인간 부의. '신중국'에서 여생을..
중국은 만주국을 웨이만(伪满) 정권이라 부릅니다. 가짜 정권이라는 것이지요. 5월 29일 장춘에서 만주국의 황제로 둔갑한 마지막황제 부의가 살던 곳을 찾았습니다. 마치 황궁처럼 꾸몄지만 이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거짓'을 감추기 위한 곳일 터. 이곳에 각 건물마다는 만주국에 대한 내용을 전시하고 있으며 특히, 부의와 그의 황비 완용의 아편 피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펐습니다. 청나라 마지막황비는 결국 아편으로 살아가는 신세가 됐으며 두번째 비인 문수는 역사상 최초로 황제와 공식적인 이혼을 하기도 했습니다. 부의에게는 이후에도 여러 부인이 있지만 완용과 문수만큼 드라마틱하지는 않습니다. 부의가 거주하던 곳을 비롯해 물론 그 당시의 것들이 아닌 장식이긴 하지만 방마다 예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려 노력한 흔적..
5월28일, 짱솨이푸(张帅府)를 찾았습니다. 장수부라 부르는 곳이 바로 장작림과 그의 본처 아들인 장학량의 고거입니다. 청나라말기 지방 군벌이 경쟁하던 시기 동북에는 북양정부 원세개 라인이던 장작림이 있었습니다. 장학량은 장개석을 체포한 '서안사변'의 주인공으로 세계 역사에 잘 알려진 인물로 세계사에 화려하게 등장했던 인물입니다. 참고 서안사변의 두 주연배우 장개석과 장학량 http://blog.daum.net/youyue/3855405 그의 옛집을 보면서 장학량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1901년에 태어나 2001년에 유명을 달리한 장학량. 심양에 가면 꼭 보려던 장수부에서 너무 시간을 많이 보냈던지 어두워지면서 천둥번개 치고 폭풍우가 쏟아지고 도시가 난리가 났습니다. 택시를 못잡아 버스 두번 갈..
션양 시내에 있는 장작림 장학량 부자의 역사를 배우러 간 곳 거리에서 물붓으로 글씨를 쓰는 한 아저씨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한국사람인 줄 대번에 알고 바닥에 '한국'을 쓰기도 합니다. 대만 사람들이 지나가니 '대만'도 씁니다. 작년에 한국 MBC에서 자신을 3일동안 취재했다고 자랑합니다. '용(龍)' 글자를 2,500평방미터의 공간에 썼다고 하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믿지 않으니 약간 실망한 듯합니다. 중국 공원에는 이렇게 물을 묻혀 붓글씨는 쓰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예전 2002년에는 이화원에서 오른손 왼손을 번갈아 가며 넓은 이화원을 하루종일 붓칠을 하는 사람을 보고 정말 고행이다 싶었습니다. 베이징 공원마다에도 자주 만나게 되고 하남성에서도 봤고 산동성에서도 봤습니다. 또 길거리 붓이야 하고 지나..
5월 27일 션양 시내에 있는 베이링(北陵)을 취재했습니다. 베이링의 본래 명칭은 자오링(昭陵)으로 청나라 태종인 황타이지(皇太极)의 무덤이 있는 곳입니다. 시내에 있다 보니 자오링은 공원화되어서 상업화된 관광지가 돼 버렸습니다. 마침 중국동포 조선족 가족들이 회갑연을 맞이 해 온 가족이 축하하는 장면을 보기도 했습니다. 자오링의 건물에는 만주어가 같이 적혀 있습니다. 중원을 장악하고 천하를 호령한 만주족 청나라를 일으킨 주역의 무덤이니 당연합니다. 무덤 위에 자라난 나무 한그루가 인상적입니다.
오녀산성의 신비한 자연 경관이 너무 마음에 듭니다. 5월26일 오녀산성의 하늘은 축복 그 자체였습니다. 오녀산성 곳곳에서 생활했던 고구려인들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자연이 주는 감흥만큼 역사로의 여행도 의미가 있습니다. 이씨엔티엔(一线天)은 정말 하늘과 닿아있는 줄인 줄 착각이 듭니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 좁게 난 틈이 바로 하늘로 향하는 길이라 생각하니 신비롭습니다. 정신없이 내달리다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오녀산성의 옛 성터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고구려 유리왕이 만든 오녀산성 터의 발자취 앞에서 우리 조상의 기상을 흔적처럼 밟아가는 취재여행은 즐겁기 그지 없습니다. 앗~ 중국정부는 자기네 땅의 어느 한 지방정권인 양 '고구려정권'이라고 표기한 입장권을 뒤늦게 보고 혼자 흥분하고, 말도 못하고 심장을 ..
5월26일 집안에서 만난 택시운전사와 함께 환인 오녀산성 취재에 나섰습니다. 환인(桓仁)에는 오녀산성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산성을 오르려면 차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하고 십팔반이라는 계단을 타고 끈기 있게 올라가야 합니다. 태산에서 만났던 지옥같은 십팔반 계단을 이곳에서 다시 만나니 감회도 새롭습니다. 오녀산성의 별미는 단연 나무입니다. 나무는 바람을 벗삼아 하늘을 향해 멋드러진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오한송(好汉松)은 절벽 위에 생명의 빛을 굳게 뿌리 박고 섰습니다. 마치 산 아래 세상을 지배하는 듯한 자태로 말입니다. 계곡을 이어주는 다리는 이름도 귀엽게 자매교입니다. 자매교 아래 좁은 바위 틈새로 하늘과 나무는 멋진 향연을 부립니다. 너무 감동이라 한동안 머무르며 최상의 여행이 이런 것이 아닐까, 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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